[주목 이 사람]세월호 실종자 가족 박은미씨 "딸 못 찾아 숨 쉬는 것도 미안해요"

2015. 3. 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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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1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 이날 기온은 섭씨 영하 3도였다. 맹추위는 아니지만 스산한 기운이 광장을 뒤덮고 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박은미씨(46)는 두꺼운 점퍼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했다. 그래도 추운지 박씨의 두 다리는 연신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박씨는 세월호 실종 학생인 단원고 2학년 허다윤양의 엄마다.

박씨의 둘째 딸인 다윤이는 지난해 4월 15일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갇혀 있다. 남성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고, 애완견을 사랑하며, 몰래 언니 옷을 입고 친구를 만나러 다녔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다윤이는 집안의 애교 덩어리였어요. 껌딱지처럼 엄마 아빠한테 딱 붙어 있던 아이였죠."

지난해 11월, 세월호 수색이 중단된 뒤 박씨 부부는 진도 팽목항을 떠나 안산 자택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딸을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부부를 괴롭혔다. "다윤이를 찾지 못하고 돌아온 뒤 잠을 자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미안했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가 왜 살고 있나'라며 안 좋은 생각이 올라왔어요. 내가 사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어요. 딸을 찾기 위해서…."

3월 11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 박은미씨가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백철 기자

설날 연휴 직전인 2월 14일, 박씨와 다른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를 찾았다. 이날 박씨는 맹골수도를 보다가 그만 정신을 잃었다. "그냥 다윤이를 만나고 싶었어요. 저 물에 빠지면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다가…."

맹골수도를 다녀온 뒤 박씨는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나섰다.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박씨의 몸 상태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말렸지만, 박씨의 뜻을 꺾을 순 없었다. 박씨는 세월호 참사 전부터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에 종양이 생기는 무서운 병이다. 참사 이후 병이 깊어져 박씨의 뇌와 귀에까지 종양이 퍼졌다. 뇌종양 때문인지 바닥이 일렁이는 것처럼 어지러워 혼자 걸어다닐 수가 없다. 오른쪽 청력은 잃어버린 지 오래됐다. 남편 허흥환씨(50)가 박씨의 곁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1인 시위를 하다 보면 부부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실종자들을 다 건져낸 줄로만 알았다"는 사람, "천안함 유가족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내 딸을 찾아달라며 피켓을 드는 게 끔찍한 일이지만 그래도 찾아야 하니까… 참아야지요."

박씨의 청와대 1인 시위가 처음으로 언론에 나온 날, 인터넷에는 '왜 세월호 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만 붙잡고 늘어지냐'라는 내용의 댓글들이 올라왔다. 박씨도 그 댓글들을 봤다. "왜 청와대로 왔냐고요? 박근혜 대통령께서 해경 해체 발표 뒤에 분명히 말씀하셨잖아요. 마지막 실종자 한 명까지 찾겠다고 하셨잖아요. 그 약속을 꼭 지켜달라고, 세월호를 뭍으로 올려 내 딸과 다른 실종자들을 꼭 찾아달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인터뷰를 마친 박씨는 남편과 팔짱을 낀 채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농성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읖조리듯 내뱉은 그녀의 마지막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참 힘드네요."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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