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심장이 쿵쾅쿵쾅, 악기들의 미친 군무

2015. 3. 1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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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5일 일요일 맑음. 매직아이와 악기들의 군무.
#149 Brad Mehldau & Mark Guiliana 'Hungry Ghost'(2014년)

[동아일보]

초인적인 연주를 해낸 미국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왼쪽)와 드러머 마크 줄리아나. 브래드 멜다우 홈페이지

때로 음악을 집중해 듣는 행위는 엑소 멤버 10명의 화려한 군무를 담은 풀숏 영상을 매직아이 책 들여다보듯 멍한 눈으로 응시하는 것과 비슷하다.

드럼, 베이스기타, 기타, 건반, 보컬이 제각각 추는 춤은 2차원. 초점거리를 하나의 악기에 맞추고 다른 악기에도 귀를 열면 원근법이 적용된 3차원의 정갈한 그림이 열린다. 그 다음. 조리개를 활짝 열고 모든 악기의 춤에 초점을 두고 집중한다. 수많은 음표의 점이 겹치고 엇갈리며 들끓다 이따금 4차원처럼 시공을 찢고 나와 도드라진다.

이런 감상은 수많은 모니터를 앞에 둔 외환 딜러의 직무 같다. 가빠 오는 호흡, 터질 듯한 심장의 달리기 선수처럼 도취감을 느낀다.

어젯밤(14일) 서울 올림픽공원에 나가 뛰었다. 아니, 멜리아나(Mehliana) 내한 콘서트를 봤다.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와 드러머 마크 줄리아나가 조직한 실험적인 듀오의 이름.

무대 왼쪽엔 멜다우, 오른쪽엔 줄리아나가 버텼다. 멜다우는 'ㄱ'자로 자신을 둘러싼 네 대의 건반으로, 줄리아나 역시 주위를 감싼 심벌즈와 북, 전자장비로 무장했다. 어쿠스틱과 전자피아노, 아날로그 신시사이저 2대를 오가는 멜다우의 손가락은 10개뿐이었다. 오른손으로 신시사이저 코드를 짚은 뒤 페달을 밟아 연장시켜 놓고, 그 오른손을 밑단의 전자피아노로 재빨리 미끄러뜨려 캐러멜처럼 끈끈한 음색의 솔로를 했다. 물론 왼손은 제3의 건반으로 베이스 기타처럼 저음 라인을 쉴 새 없이 연주하며.

벌새의 날갯짓처럼 빠르고 섬세한 줄리아나의 연타 역시 고단한 춤이었다. 때로 전자패드와 카오스패드(화면 터치 방식의 전자음 조절기)로 직관적인 소음까지 만들어냈다.

재즈 공연보다, 노래 없는 프로그레시브 록 콘서트에 가까웠다. 고풍스러운 신시사이저 음색, 급박한 5박과 7박이 난무하는 복잡한 솔로들 때문인지 로버트 모그 박사(1934∼2005·모그 신시사이저 개발자)의 환영이 러시, 핑크 플로이드, 에머슨 레이크 앤드 파머,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를 끌고 진군하는 듯했다.

기진맥진해 공연장을 나왔다. 수많은 인파가 덮쳤다. 인근 경기장에서 마침 끝난 엑소 콘서트 관객의 큰 파도. 사람 홍수는 올림픽공원역 승강장까지 이어졌다.

숨을 몰아쉬며 '엑소 팬과 난 결국 하나'라는 동질감으로 버텼다. 괜찮아, 노트. 우린 모두 춤 중독자들이니까. 미친 군무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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