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이학수 특별법'에 반대, 진보 금기 깨고 싶었다"

2015. 3. 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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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터뷰]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케이비금융 사외이사 후보에 재벌그룹의 현직 사장을 추천하고, 야당이 발의한 '이학수 특별법'에 반대하는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진보의 금기'에 도전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대표적인 개혁진보성향의 경제학자로서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지난 9일 <한겨레>와 만나 최근 경제개혁연대가 엘지그룹의 이병남 인화원장(사장)을 케이비금융지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고, 이학수 특별법(특정재산범죄수익 등의 환수법)에 반대하며 진보학계에서 함께 활동해온 전성인 홍익대 교수와 지상토론을 벌인 것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그는 "대단히 이례적이고 돌출적인 행동"이라고 자평하면서도, "진보의 금기를 깨지 못하면 (진보의) 미래가 없다"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김 소장은 복지-증세 문제와 관련해서도 "여당의 '증세 없는 복지' 주장과 마찬가지로, 야당이 '부자증세'나 '엠비(MB)감세 철회'만으로 복지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성인 교수와 '이학수법' 지면토론옳고 그름의 문제 아니라뭐가 더 최선이냐는 판단의 차이여 '증세 없는 복지' 주장이 거짓이듯야 '부자증세 만능론'도 거짓말진보 여전히 이분법적 틀 못벗어나타성 깨지 못하면 신뢰 못얻어관치 비판하며 금융 내부기득권 강화인적자원 개발에 결정적 걸림돌이 문제 해결하려 인사 전문가 찾아KB 사외이사에 대기업 사장 추천

-경제개혁연대가 사실상 추천한 2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케이비가 받아들인 게 화제다.

"금융시장 질서를 건전화·정상화하는 것은 재벌 지배구조 개선과 함께 한국 자본주의 미래를 위한 핵심과제다. 과거처럼 관치금융으로 산업자본을 지원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고 시장의 자유방임에 맡기는 신자유주의 방식도 곤란하다. (최고경영진 간에 내분이 일어난) 케이비 사태가 보여주듯 금융회사의 현 지배구조나 역량으로는 국민경제에 필요한 역할은커녕 자신의 문제도 해결 못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왜곡된 금융사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모멘텀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재벌그룹 현직 사장을 추천한 것은 의외다.

"한국 금융산업의 근본문제는 관치지만, 그것을 빌미로 금융회사 경영진과 노조가 암묵적 담합을 통해 내부 기득권을 강화하는 것도 경쟁력의 핵심인 인적자원을 키우는 데 결정적 장애가 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노사관계와 인사문제 전문가인 이병남 원장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재벌그룹 현직 사장을 추천한 것은 진보의 금기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지배 차단)라는 강박관념 때문에 산업계 출신의 전문가를 금융회사에 추천할 엄두를 못 내왔다. 하지만 엘지가 금융업을 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는 게 분명한 만큼, 엘지 출신 전문가를 추천해 경직된 사고를 깨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금융회사 사외이사는 지금처럼 퇴직관료와 교수들의 용돈벌이 수단으로 계속 남게 된다."

-케이비지주의 사장직 신설 여부를 놓고 외부 인사개입 논란이 있다.

"케이비 내부적으로 지주사 사장을 신설하되, 이사회의 정식 멤버가 아닌 비등기임원을 맡기로 결정한 것 같다. 원래 금융지주의 경영을 잘하려면 지주사 회장-지주사 사장-은행장 등 3명이 마치 한몸처럼 움직여야 하고, 이들 모두 이사회의 등기임원을 맡는 게 정상이다. 회장이 은행장을 겸하는 만큼 수석부행장이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지주회사 사장을 신설하면서 비등기임원을 맡기는 것은 이상하다. 은행의 자율적 결정이 아니라 감독당국의 외압에 의해 지주회사 사장을 임명하기로 하면서 일종의 절충이 이뤄진 것 같다."

-윤종규 회장이 추진한 최고경영자(CEO) 승계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감독당국이 제동을 걸고 있다.

"경영자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경우 연임이 당연한데, 이를 현직 최고경영자의 '연임 우선권 보장'이라고 막는 것은 (감독당국이) 윤종규 회장을 흔들려는 의도라고 봐야 한다. 윤 회장은 주주 제안 등에 의한 사외이사 후보 추천을 수용한 데서 볼 수 있듯이 은행 지배구조 개선 의지가 강하다. 현직 금융 종사자 중에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이론과 실무 양면에서 가장 준비가 잘된 분인 것 같다. 윤 회장이 성공한 경영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벌써부터 외압이 가해지는 것을 보면 3년 임기를 제대로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삼성에스디에스 상장에 따른 천문학적 부당이득을 환수하기 위한 취지로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영선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른바 '이학수 특별법'을 반대하는 글을 신문에 실으며, 역시 진보적 경제학자인 전성인 홍익대 교수와 공개 지면토론을 벌였다.

"'이학수법'에 대해서는 전 교수와 수많은 토론을 통해 생각이 같은 부분과 다른 부분을 정리했다. 재벌의 배임횡령을 통한 부당이득에 대해 영미의 민사적 몰수 방식을 도입하자는 의견(전성인 교수안)과 현행 형사적 몰수 방식을 강화하자는 의견(김상조 교수안)으로 갈리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 어느 것이 더 최선이냐는 주관적 판단의 차이 때문이다. 진보진영에서는 지금까지 이런 판단의 차이가 있어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타성이 있었다."

-공개 지면토론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진지한 토론이 이뤄지기를 기대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학수법에 반대하는 보수진영이나 삼성에서 반응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야당이나 진보진영에서도 반응이 없어 나도 놀랐다. 찬반 의견 중에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뒤로는 '재벌 저격수인 김상조가 삼성에 동조할 수 있느냐'는 비난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동안 진보는 사회 기득권층을 향한 비판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을 두려워해왔다. 그런 말을 하면 '변절자'나 '(재벌의) 약을 먹었다'는 비난을 들을까 걱정한다. 이런 진보의 금기와 타성을 깨지 못하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평소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패배한 원인은 선명성 부족이 아니라 대중의 신뢰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해왔다.

"1987년 체제 이후 3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진보는 여전히 '민주-반민주'라는 이분법적 성공 공식에 멈춰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진보는 시장의 폭력을 막기 위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정작 국가를 믿지 못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제는 국가가 사회진보를 위해 해야 할 일만 강조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가 어떻게 합리적 방법으로 이를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좀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최근 연말정산 파동 때 부자증세나 부자감세 철회만으로는 보편적 복지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비판을 한 것으로 안다.

"여당의 '증세 없는 복지' 주장이 거짓말인 것처럼, 야당이 부자증세나 엠비감세 철회만으로 복지가 가능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사회복지분야의 진보학자들 대부분은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만으로는 보편적 복지가 불가능하고, 결국 소비세(부가세)를 올려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야당도 증세가 선거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부자감세 철회만 강조한다. 정부의 간접증세로 인해 소득세 실효세율은 이미 2007년 이전 수준보다 더 높아졌다. 또 법인세의 최고구간(1000억원 이상)을 신설해 현행 22%보다 높은 25%의 세율을 적용해도, 세수증대 효과는 1조~2조원에 그친다. 결국 부가세를 현행 10%에서 12% 정도로 올려서 복지재원으로 사용해야 한다. 다만 국민들이 이런 방식을 신뢰하도록 만들려면 법인세와 소득세를 먼저 올려야 한다. 야당은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독일과 같은 '중복지-중부담 사회'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말을 못하는 진보의 타성과 금기가 진보의 전진을 막는다."

-박근혜 정부는 공약인 경제민주화를 버리고, 최경환 부총리 등장 이후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최저임금 인상 논란에 불을 지폈다.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 성장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대기업이 만든 경제성과를 국민경제 전체로 확산되게 만드는) '톱다운 트랙'(낙수효과)이고, 소득주도 성장은 (근로자들의 실질임금 증가를 통해 내수진작을 하는) '보텀업 트랙'(분수효과)인데, 이 둘을 장기적으로 병행추진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

-박근혜 정부 2년간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은 실패했다고 보는가?

"과거에 재벌을 만나면, (시민단체가) 아무리 떠들어야 (재벌이) 정부나 국회 상대로 로비하면 다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과거 방식으로는 (재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사례처럼) 법을 어기거나 다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면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직 미흡하지만 2012년 이전과는 재벌들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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