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뉴욕총영사관은 민간 행사에 참석 못한다?

박태서 2015. 3. 1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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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당시 목숨을 잃은 단원고 교사 최혜정 씨와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 씨. 마지막까지 침몰하는 배에 남아 학생들을 구한 두 사람의 희생정신, 그 깊은 울림은 참사 1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죠.

3월 8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두 명의 '세월호 영웅'을 기리는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포채플린스 메모리얼'이라는 공익재단의 메달수여식이었습니다.

'포채플린스(이하 명칭통일)'는 2차대전 당시 침몰하는 군함에 끝까지 남아 수백 명의 병사를 구한 군종장교 네 명을 추모하는 단체입니다. 모두 자원자였던 이들 네 명의 군종장교는 침몰하는 배와 함께 수장됐습니다.

최혜정, 박지영 두 사람에게 골드메달을 주기로 한 것은 두 사람의 희생정신이 '포채플린스 '의 설립 취지와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재단 측은 설명했습니다.

백발의 재단 이사장은 시상식 연설에서 "72년 전 참사(1943년 2월 미 군함 침몰사고-탑승자 9백여 명 가운데 672명 사망) 때 군종장교들의 영웅적 행동은 세월호 참사 때 최혜정 박지영의 그것과 똑같다"고 강조했습니다.

먼저 보낸 딸을 대신해 메달을 받은 유족들은 흐느끼며 자식들을 높이 평가해준데 거듭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이번 시상식은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여느 추모행사와 다를 게 별로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솔직히 '휴일(행사는 현지시각 일요일 낮이었습니다)에 열리는 행사를 취재하러 뉴욕에서 필라델피아까지 출장 취재하러 가야 하나'하는 이기심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펜실베니아주 주지사실에서 관계자가 나오는 등 정관계 인사들이 여럿 보였고 현지 언론들도 취재진을 파견하는 등 꽤 규모 있는 행사였습니다. 무엇보다 고 최혜정 교사 부모, 그리고 고 박지영 승무원 어머니와 이모부가 직접 참석한 점이 큰 의미였습니다. 쓸만한 기사에 늘 목말라 있는 저로서는 취재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행사장에 현지 우리 공관 사람들은 한 명도 볼 수 없었습니다. 필라델피아(펜실베니아주)를 관할하는 공관은 뉴욕총영사관입니다. 뉴욕총영사관은 시상식장에 왜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을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저간을 설명해 드리죠. 지난 1월말 고인들이 수상자로 결정된 직후 뉴욕총영사관이 내세웠던 시상식 불참 이유는 이랬습니다. 민간재단 주관 행사에 정부 쪽에서 참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을 받아야 할 유족들의 시상식 참석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공관이 수상식에 참석하거나, 나아가 유족들을 대신해 대리 수상하는 것도 어렵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도 그렇게 직접 들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유족들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정부가 시상식에 참석하거나 대신 상 받겠다고 나서는 게 모양이 이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달 말 유족들이 참석 의사를 확정한 뒤 '민간재단'을 더 이상 불참 이유로 내세우긴 힘든 분위기가 됐습니다. 유족들이 직접 참석한다면 행사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었겠죠. 그런데도 뉴욕총영사관은 계속 '민간 재단주관'을 불참 이유로 들이댔습니다. 그리곤 안 나왔습니다.

사실 '민간재단 주관행사'를 내세워 참석하지 않는다는 부분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물론 '포채플린스'가 민간재단인 것은 맞습니다. (공익재단입니다) 이 말대로라면 뉴욕총영사관은 관내 그 어떤 민간재단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는 게 타당하겠죠.

하지만 그동안 뉴욕총영사관이 참석하거나 안팎으로 후원한 민간행사? 뉴욕 특파원 재직 1년 8개월 동안 제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셀 수 없습니다. 총영사관은 '재단의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구실도 내세웠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재단의 공신력에 대해 저 역시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포채플린스'는 과거 레이건 등 미국의 전직 대통령 네 명에 직접 상을 줬다고 합니다. 수상자 가운데엔 코미디언 밥 호프 같은 유명인도 많다네요. 그럼에도 국내는 물론 펜실베니아주 안에서도 이 재단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재단 공신력에 대한 의문으로 헷갈리는 제게 현지 재단관계자 등이 털어놓은 얘기는 뉴욕총영사관이 시상식에 불참한 진짜 이유를 짐작게 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통해 들은 얘기는 총영사관 측 설명과 달랐습니다. 속사정이 있었더군요. 시상식 참석을 요청한 재단 측 사람에게 총영사관 관계자는 이랬다고 합니다. "시상식 참석이 곤란하다. 예민한 상황이니 이해해달라. 다음에 개인자격으로 방문하겠다"고 말입니다.

어떤 게 곤란했고, 또 무엇이 예민했을까요. 사실 이번 시상식과 관련해 이런저런 풍문이 나돌았습니다. '유가족들을 대신해 다른 유가족이 대리수상을 하러 온다', '미주 지역에서 활동 중인 일부 단체들이 시상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등의 얘기입니다.

추정컨대, 뉴욕총영사관 측은 두 번째 관측이 현실화될 경우를 무척 부담스러워한 것 같습니다. 즉, 세월호에 비판적인 일부 단체들이 수상식에 참석할 경우, 혹시 불미스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했다는 것입니다. 시상식장에서 시위나 소란, 반정부 회견 등이 벌어질 경우 그 책임을 상당 부분 떠안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문제의 '일부 단체' 사람들은 행사장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숙하고 경건한 추모 분위기 속에 시상식은 끝이 났습니다. 재단 측은 진한 아쉬움을 표시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너무 몸을 사린 게 아니냐는 불만이었습니다. 비록 크게 기대한 것도 없었지만 이번 행사와 관련해 정부 차원의 지원은 물론 아무런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유가족 네 명의 이번 미국행에 정부는 물론 외부 지원도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미국행 항공편은 유족들이 직접 끊었다네요. 또 필라델피아 현지 체류 비용과 귀국 항공편은 교민들이 십시일반 마련했다고 합니다)

자식 잃고 슬픔에 여전히 잠겨있는 유족들, 이역만리 미 동부 필라델피아까지 날아와 낯선 교회(시상식장은 교회건물이었습니다) 한가운데 가로놓인 두 딸의 영정 앞에 선 이분들 보기도 무척 불편하더군요. 공관의 행사불참을 놓고 심란해 있는 제게 유족 한 분이 던진 한 마디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저희가 무슨 자랑이라고 여기에 소문내고 오겠어요? 그냥 조용히 왔다 가고 싶었어요"

요란스럽게 상 받는 게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하지만 이분들, 경축할 일로 미국 온 것도 아닌 데다, 한국과 13시간이나 나는 시차로 바뀐 밤낮 때문에 더욱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 이분들을 만약에 우리 공관 사람들이 조용히, 또 따뜻하게 챙겨줬더라면… 이번 행사장 '그림'은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세월호에 언제까지고 매여있을 수는 없다는데, 세월호를 딛고 나아가자는데, 이른바 '세월호 콤플렉스'는 정부 스스로 악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 바로가기 <뉴스광장> '세월호의 두 영웅' 미국서도 칭송

박태서기자 (tspar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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