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래 세금 낼래'..독일의 '싱글세'

2015. 3. 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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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비중 높은 유럽은 '사실혼 지원'..아시아는 주택·중매 지원 중점

"제 친구는 월 600만 원을 버는데 그중 300만 원을 세금으로 냅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23일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독일 출신의 다니엘이 소개한 '싱글세'다. 현재 독일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은 1.39명 수준이다. 저출산·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한 결혼 장려 정책인 셈이다. 다니엘은 "독일은 가구 형태에 따라 세금이 달라지는데 책임질 가족이 없는 싱글이 50% 정도로 가장 많은 세금을 낸다"며 "세금을 덜 내려고 결혼하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까지 언급될 정도로 '저출산·고령화' 이슈는 세계 각국의 '해묵은 골칫거리' 중 하나다. 한국과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나라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 정부에서 청춘 남녀의 미팅을 주선하는 것은 물론 화끈한 사실혼 지원 제도까지, 세계 각국의 '다양한 결혼 장려책'을 살펴봤다.

프랑스·스웨덴…결혼·동거 차별 없다

저출산을 극복한 사례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 중 하나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1990년 전후로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1997년 스웨덴의 합계 출산율은 1.5명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며 2012년 기준으로 스웨덴의 합계 출산율은 1.91명으로 유럽 최상위권이다.

스웨덴이 이처럼 '반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스웨덴 출신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군나르 뮈르달의 역할이 컸다. 현재 스웨덴뿐만 아니라 유럽 내 저출산 정책의 기틀을 잡은 것으로 평가되는 그의 핵심 정책은 이른바 '국가 양육론'이다. 필요하다면 국가가 개입해 가족이 아이를 양육하는 데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줄이거나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스웨덴은 1930년대 이후 지금까지 주택 보조금·건강보험·무상급식·교육수당 등 출산과 육아에 아낌없는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스웨덴의 신혼부부들은 주거비의 약 40%에 가까운 비용을 주거 보조금으로 지원받고 있다. 자녀가 있는 가족에게는 가족 주택 보조금(ALF), 자녀가 없는 경우에는 사회적 주거 보조금(ALS)이 지급된다. 학생 부부에게는 공공 임대주택, 학생 기숙사 비용의 일부를 지원한다. 여기에 신혼부부들의 주거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1920년대부터 '임대료 인상 억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세입자 단체와 집 소유주 단체가 협상을 통해 임대료를 책정하는 제도다. 상대적으로 집 소유자가 폭리를 취하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강력한 지원책이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닌 '미혼모'나 '사실혼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스웨덴의 젊은이들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남녀가 동거하는 형태가 일반화되면서 혼외 출생률이 50% 이상을 넘어설 만큼 높다. 스웨덴 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혼외 출생아에게도 출산 급여, 부모 보험, 자녀 수당 등 법적 혼인과 다름없는 혜택을 주고 있다. 이를 위해 아예 혼외 자녀를 의미하는 일리지터머시(illegitimacy) 개념 자체를 폐기했다. 굳이 결혼이라는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사실혼이든, 여성 혼자 자녀를 출산하든 혹은 동성 부부가 입양하든 '국가가 출산·양육·교육을 모두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프랑스나 영국 등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1999년 '팍스(PACS:시민연대협약)'라는 이른바 '동거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동거 남녀는 결혼한 부부에 준하는 현금 지원, 주거비, 보육 지원 등의 혜택을 받는다. 실제로 팍스 제정 당시 1.79명이던 프랑스의 합계 출산율은 이듬해 1.87명으로 껑충 뛰었고 2014년에는 2.08명으로 유럽 내 출산율 1위다. 영국 역시 2001년 합계 출산율이 1.63명까지 내려가며 대대적인 저출산 대책을 마련했다. 그 중심이 되는 것이 동거와 같은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고 혼외 출산아도 차별하지 않고 동일한 보육 혜택을 주는 것이다. 현재 영국의 출산율은 1.9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유럽의 '사실혼 지원 정책'을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관념과 문화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혼외 출산율이 50%를 넘어서는 유럽권 국가와 달리 현재 한국의 혼외 출산율은 2% 정도에 불과하다. 그만큼 혼외 출생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히 높다는 의미다. 강준 보건복지부 인구정책과 사무관은 "장기적으로는 혼외 출생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낮추고 이들에게도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법적 혼인이 출산의 전제 조건이 되는 우리의 결혼 문화에서 유럽식 모델은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국과 비슷한 결혼 문화를 가진 나라들은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을까. 일본·싱가포르 등이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일본은 1990년 이후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현재까지 20년 정도 저출산 정책을 이어 오고 있다. 1994년 '에인젤 플랜'을 시작으로 보육 지원, 일과 육아 양립 정책, 의식 개혁 운동까지 온갖 대책을 쏟아내며 출산율 제고에 힘을 쏟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의 합계 출산율은 1.4명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싱가포르…국가에서 미팅 주선

따라서 일본 정부는 2013년을 기점으로 저출산 정책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꿨다. 기존의 저출산 정책이 '육아 지원'과 '일·육아 양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후에는 '결혼·임신·출산 지원'을 강화한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조성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혼 인구에 대한 정책으로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일본이 미혼 인구와 신혼 세대에 대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라며 "최근에는 일본 지자체를 중심으로 청춘 남녀의 미팅을 주선하고 연애 특강을 실시하는 등 결혼 장려책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도쿄 남쪽에 있는 미야케 섬에서는 2012년부터 매년 대규모 미팅을 열고 있다. 미야케 섬의 남성들과 도쿄의 여성들이 만나기 위한 자리다. 현재까지 두 쌍의 커플이 이 행사를 통해 결혼에 성공, 미야케 섬에서 신혼살림을 꾸렸다. 가가와현은 고교생과 대학생을 상대로 연애 강좌를 열고 있다. 부모 세대들도 초대해 자녀를 결혼시키는 노하우를 강연한다. 고치현은 연애 심리학자의 강좌를 듣게 한 뒤 곧바로 맞선 형식의 결혼 이벤트를 연다.

이와 함께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 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오사카시에서는 민간 임대주택에 거주하고자 하는 신혼부부에게 임대료를 지원해 준다. 해마다 약 7000~8000가구가 이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다.

합계 출산율 1.2명으로 한국과 비슷한 '초저출산 국가'인 싱가포르는 일본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청춘 남녀의 연애 사업에 나서고 있다. 아예 국가가 직접 결혼 중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SDN(Social Development Network)이 그것이다. SDN은 미혼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정부 조직으로 크루즈 미팅, 차 마시는 모임, 컴퓨터를 통한 매칭 등 다양한 방식의 데이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는 이와 같은 데이팅 산업을 개발하고 규제하며 데이팅 업체를 인가하고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여기에 민간 데이팅 기구가 참여해 실질적인 매칭 업무를 진행한다. 그러나 정작 싱가포르 내에서는 이 같은 정책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국가가 지나치게 국민의 사생활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싱가포르 역시 신혼부부를 위한 적극적인 주거 지원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1987년부터 저출산 해결을 위한 종합 지원 정책인 '결혼·가족 꾸러미 정책(Marriage and parenthood packages)'을 운영 중이다. 그중 HDB(Housing & Development Board)는 생애 최초 주택 청약자들에게 공공 주택 공급량의 최소 85~95% 정도 더 많은 청약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이다. 신혼부부뿐만 아니라 예비부부들도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동거 커플들에게도 HDB 주택 청약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 밖에 주택 보조금을 받았던 미혼자가 결혼하면 추가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생애 최초로 주택을 청약하고자 하는 커플들에게는 HDB 청약을 위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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