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눈물' 닦고 다시 무대 선 '수현이의 친구들'

조형국 기자 2015. 3. 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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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박수현군 밴드 'ADHD' 사고 300여일 만에 공연
친구가 아끼던 기타 들고 남은 멤버 3명 한 달 '맹연습'
노란리본 달고 온 관객들 "잊지 않을게" 추모 속 환호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트랜스픽션이 공연을 마치자 아쉬운 탄성을 내뱉었고, 크라잉넛이 드럼을 두드리자 환호성을 질렀다. 여느 공연과 다른 점은 관객들이 저마다 휴대전화, 가방, 옷 단추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는 점이다. 무대에 오른 뮤지션들도 해골이 그려진 민소매 티셔츠와 검은 가죽 재킷, 기타 어깨끈에 '세월호를 잊지 않겠습니다' 배지를 달았다.

김재성군(18)은 300일 넘게 놓았던 기타를 다시 들었다. 세월호에서 숨진 친구 박수현군이 살아생전 가장 아끼던 기타였다. 나기훈군(17)은 베이스를, 김재강군(18)은 드럼 스틱을 다시 잡았다. 박군이 만들고 끌어온 밴드 'ADHD'가 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롤링홀에서 열린 '열일곱살의 버킷리스트' 공연에 참가해 수현이에게 바치는 곡을 연주했다. 단원고 김건우군, 박수현군, 오경미양, 이재욱군, 홍순영군이 ADHD의 멤버였지만 이제 3명만 남았다.

안산 단원고를 다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박수현군이 멤버로 있던 밴드 ADHD가 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롤링홀에서 공연 리허설을 하고 있다. 박군의 친구인 김재성군(맨 오른쪽)이 기타, 김재강군(뒤쪽 가운데)이 드럼, 나기훈군이 베이스(맨 왼쪽)를 연주하고 있다. | 세월호 304 잊지 않을게 제공

지난 1월 수현이 생일에 집을 찾은 아이들은 수현이가 버킷리스트에 'ADHD 공연 20번 뛰기'라고 써둔 것을 발견했다. "친구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아이들은 지난달부터 공연을 준비했다. 준비 기간이 짧아 막바지엔 잠을 줄였다. 학교를 마친 뒤 안산에서 서울 홍익대 인근 합주실에 도착하면 오후 7시. 4시간 연습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안산에 되돌아오면 오전 1시였다. 버스가 없어 걸어서 집에 가면 오전 2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신시사이저를 맡았던 리더 수현이의 빈자리는 컸다. 나군은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친구였다. 베이스를 처음 잡았을 때, 악보를 알려주고 줄을 갈아주고 음을 잡아준 게 모두 수현이였다"면서 "연습을 하며 곡이 완성되고 각자의 소리가 하나로 점점 모일수록 수현이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고 했다.

김재성군은 "무대 한편에 놓인 신시사이저를 볼 때나 팀원들과 웃고 떠들 때 문득 수현이가 생각난다"고 했다. 옥탑방에 방음이 되는 합주실을 만들기 위해 계란판, 스티로폼을 줍던 일, "지방에 땅을 사고 컨테이너를 마련해 합주실로 쓰자"며 웃던 일을 떠올리며 수현이를 기억했다.

지난해 4월16일 직전까지 아이들은 합주 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림을 정말 잘 그렸던" 홍순영군이 캐리커처를 그려 홈페이지를 꾸며주기로 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ADHD는 악기를 들지 않았다. 이날 ADHD는 윤도현 밴드의 '박하사탕', 국카스텐의 '거울',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 등 3곡을 연주했다. '거울'과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수현이가 가장 좋아하던 곡이다.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를 묻자 나군은 고개를 숙였다. 한참 말이 없던 나군은 "'내 친구들이 아니겠지' 외면하고 도망쳤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세월호를 마주할 수 있었다"며 "아직 힘들어하는 많은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고 얘길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재성군은 "다른 모든 친구들을 잊지 않기 위해, 또 수현이가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공연하려 한다"고 했다. 이날 공연은 시작과 함께 300여명 관객이 가득 들어찼고 티켓은 현장 매진됐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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