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스민은 '너네 나라로 돌아갈 필리핀 여자'가 아니다

2015. 3. 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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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담배절도 의혹에 인종주의 비난까지… 이자스민 앞에서 하나되는 일베와 오유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

"진짜 이자스민 사라졌으면 좋겠다. 다문화 진짜 극혐이다. 게다가 아들담배ㅋㅋㅋㅋ"

"미친 지네나라로 꺼져라 제발!"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 아들이 편의점에서 담배를 절도했다는 의혹에 제기된 직후 각각 '일간베스트'와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글이다. 이자스민 의원은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보수, 진보 커뮤니티 모두로부터 비판받는 정치인이 됐다. 이는 어쩌면 한국 최초의 '다문화' 비례대표 국회의원, 더욱이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의원이 지닌 숙명일지도 모른다.

지난 2일 언론을 통해 현역 새누리당 의원의 아들이 담배 200값을 절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 마포구의 한 편의점의 2월초 재고 조사 과정에서 담배 200여 갑이 사라졌고, 이를 두고 담배가 없어진 시기의 근무자 이모씨(19)를 경찰이 조사 중인데, 이모씨가 새누리당 의원의 아들이라는 보도였다. 그리고 MBN의 방송 실수로 이 의원이 이자스민 의원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그러자 인터넷 공간은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으로 도배됐다. '자식 교육 잘못 시켰다'는 비판 정도야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나올 수 있는 비판이다. 문제는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왜 필리핀 여자를 국회의원 시켰냐'는 식의 인종주의적인 반응이다.

게다가 이자스민 의원의 아들이 담배를 훔쳤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담배가 '시스템 상' 사라졌고, 이를 두고 경찰이 절도 혐의를 조사 중이라는 것이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해당 편의점은 이모씨가 근무한 기간에 담배가 분실된 사실은 있지만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시스템 상으로 담배가 사라지는 이유는 보통 손님이 특정 상품을 결제한 뒤 다른 상품으로 바꾸거나 결제 방법 변경하는 경우, 계산 실수 등 다양하다.

이자스민 의원의 아들이 담배를 절도한 게 아니라는 문제제기는 일베에서 등장했다. 한 일베 유저는 '현직 편돌이(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서 알려준다. 이자스민 아들 200갑 절도했을 확률 거의 없음'이라는 글에서 "일단 본사에서 담배 재고조사 수시로 나오고 지점에서 자체적으로도 근무 설 때마다 한번씩 체크하고 보통 종류당 2~3보루 쌓아놔서 점주들 발주할 때 1보루만 비어도 금방 알아챈다"며 "그런데 200갑 재고조사에서 점장이 몰랐던 마이너스가 뜰 수가 없다"고 밝혔다.

▲ 일간베스트 갈무리.

물론 정치인은 언론과 여론의 비판 대상이다. 당연히 이자스민 의원도 잘못을 했으면 비판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비판의 방향이다. '자식교육 잘 못 시켰다'는 비판 정도야 한국사회에서 흔한 비판이니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이미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실수에도 아버지 조양호 회장이 고개를 숙이는 나라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자스민 의원 이야기만 나오면 인터넷 댓글이 인종주의로 도배되는 현상이다.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과도한 비난의 대표 사례는 '이자스민법' 논란이다. 지난 12월 3일 오유에는 '이자스민의 xx법'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자스민 의원이 불법체류자를 보호하는 법안을 발의했다는 내용이었다. 게시 글에 따르면 이 법은 불법체류자 자녀들은 교육, 육아, 의료복지를 제공하는 법안이며, 불법체류자 아동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가족 모두 강제추방을 면할 수 있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 글은 여기저기 퍼지며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글 내용은 제목부터 허위사실이었다. 12월 5일 SBS 취재파일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오유에 올라온 '아동복지법 일부 개정안'은 이자스민 의원이 아니라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9명이 발의한 법안이었고 불법체류자들이 강제추방을 면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 오늘의유머 게시글. SBS 취재파일에서 재인용

이후 오유에는 '이자스민이 발의한 법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다'며 사실관계를 정정하는 글이 올라왔으나 그 밑에는 "허나 이자스민이란 자가 그렇게 국민들에게 달갑진 않지요" "애초에 필리핀녀가 국회의원된 것 자체가 문제"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미디어오늘이 지난해 1월 이자스민 의원과 새누리당 길정우 의원이 위안부 기림비 설치에 반대했다는 보도를 했을 때도 '필리핀으로 가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자스민의 모국인 필리핀이 일본으로부터 대규모 원조를 받아 친일 성향' '일본이 필리핀 2위 교역대상국'이라는 황당한 반응까지 나왔다.

인터넷 언론들은 검색어 장사를 하며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 애초에 '담배 분실'을 '담배 절도'인 것처럼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일베 유저가 품은 의심조차 품지 않았다. 또한 MBN의 방송실수로 당사자가 이자스민 의원이라는 점이 알려지자 언론은 이 같은 사실을 일제히 받아썼다. 이자스민 의원이 검색어로 오르자 '위안부 기림비 적극 찬성하지 않은 이유는' '과거 공약 보니 내국인 차별 공약?' 등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자스민 의원은 '필리핀 여자'가 아니라 필리핀 계 한국인이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지만 이자스민 의원의 국적은 한국이다. 그와 우리가 다른 점은 그가 필리핀에서 먼저 태어났다는 것뿐이다. 다문화 계층을 대변하는 게 문제라고? 한국사회에 '다문화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이자스민 의원은 그런 현실을 고려해 비례대표로 선출됐다. 다문화 계층을 대변하는 게 이자스민 의원이 할 일이다. 나아가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대중의 분노를 부추기는 게 아니라 팩트와 팩트 아닌 것을 선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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