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언처럼 남긴..삼성 협력업체 '백혈병' 직원의 일기

입력 2015. 3. 4. 08:40 수정 2015. 3. 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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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반도체 라인 설치때 화공약품·노출가스 있는지도 모른채 상주"

"내가 잘못되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찾아가라"던 아버지의 말을 좇아 손성배(26)씨는 2012년 9월 삼우제가 끝나자마자 반올림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딸 황유미씨의 일기장을 바탕으로 8년 전 처음으로 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제기한 황상기씨처럼, 손씨도 아버지가 다음 비공개 카페에 남긴 일기장을 근거로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손씨의 아버지 고 손경주(사망 당시 53살)씨는 2003년 3월부터 삼성전자반도체 화성·기흥 공장의 생산설비 유지·보수 업무(PM)를 맡은 협력업체에서 일했다. 그러나 2009년 5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골수이식 뒤 회복하는 듯해 2010년 8월 복직했지만 2012년 1월 재발해 7개월 뒤 숨졌다. 그는 2009년 12월부터 숨지기 전까지 카페에 일기를 썼다. 처음엔 가족·회사 얘기 등 일상을 적었지만, 2010년 8월 복직 이후엔 '조직도', '삼성 안전 협의체 회의 소집', '작업환경측정' 등 업무 자료와 '이건희 회장 백혈병 긴급회의', '권오현 삼성전자 사장 "발암물질 절대 안 써"' 등의 기사도 모았다. 2012년 3월12일엔 자신의 작업 환경을 자세하게 적어놨다.

그는 삼성반도체 화성·기흥 공장 신설라인 설치 과정을 가장 미심쩍어했다. 손씨는 협력업체 관리소장이었지만 반도체를 만드는 클린룸에 머물며 일했다. "(화성공장) 12라인 초기 셋업(설치) 시에는 품질 향상을 위하여 협력사 대표는 물론 관리소장도 현장에서 8시간 이상씩 매일 상주하면서 관리함." "기존 라인에 비해 좋다고는 하였지만 대부분 화공약품과 노출되는 가스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진행되었다", "3, 4개월의 설비 셋업 기간 동안에는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일기엔 원청인 삼성반도체가 협력업체 직원을 지휘·명령한 듯한 정황도 적혀 있다. "(화성공장에서) 설비 유지보수는 삼성의 현업 직원과 대부분 같이 수행하다가 노동부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업무 영역을 엄격히 구분하려고 노력은 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음." "(2004년 기흥공장 신규라인 설치 상황과 관련해) 현대자동차가 본사 직원과 협력사 직원 간에 오른쪽 바퀴 셋업은 현업이, 왼쪽은 협력사 직원이 하듯 삼성반도체 제조 공정도 마찬가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2012년 투병 끝에 사망한 손경주씨화성·기흥공장 설비 작업 내용 담아"유해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삼성 본사 직원과 같은 업무 수행"삼성, 산재 보상에 협력사는 제외손씨 아들 "아빠도 삼성서 일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 수원지사는 지난해 10월 관리직인 손경주씨가 현장에서 일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유해화학물질의 노출 수준이 낮다"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손성배씨는 지난 1월 근로복지공단에 재심을 청구했다. 2일 만난 손씨는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원인 규명을) 계속하라는 마음으로 일기를 남겨둔 것 같아 끝까지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손경주씨는 '협력업체 직원'이라는 또다른 산도 넘어야 한다. 황유미씨 등 삼성반도체 정규직 노동자 5명으로 시작한 산재 신청은 지난 8년간 64명으로 늘며 반도체에서 엘시디,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산재가 인정된 이는 8명뿐이고, 그 가운데 협력업체 직원은 한명도 없다. 삼성은 지난 1월16일 백혈병 등 삼성반도체·엘시디 직업병 피해자 문제를 논의하는 조정위원회에서 "협력사 직원은 도의적·법률적 책임이 고용한 해당 업체에 있다"며 선을 그었다.

손성배씨는 4일 오후 2시 금속노조에서 열리는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에 아버지의 일기와 함께 참석한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다면 어떤 말을 할까요? '삼성이 만든 작업 환경에서 삼성 직원과 같이 일했는데 나는 왜 보상 범위에 포함되지 않느냐'고 하지 않을까요?"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전문] 삼성 협력업체 '백혈병' 직원의 일기 ① - 2010년 9월1일

[전문] 삼성 협력업체 '백혈병' 직원의 일기 ② - 2012년 3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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