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언더그라운드 가수, 60년대 극장쇼의 슈퍼스타 정원

윤상길 기자 입력 2015. 3. 3. 16:50 수정 2015. 3. 3. 16: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티브이데일리 민덕기의 스타예찬] "지금 막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들의 스타 000를 소개합니다~~!" 무대 위 사회자가 큰 소리로 외치면 반짝이 의상의 가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뛰어나온다. 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쏟아진다. 60~70년대 극장쇼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었다.

동남아는 동남아시아를 말하는데 인도차이나반도와 그 남동쪽에 위치한 말레이제도로 구성된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당시에는 미얀마로 불렸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등이 여기에 속하다.

당시 우리 연예인들이 정말 동남아 지역으로 순회공연을 다녔을까? 그때 쇼 관계자들의 증언은 한마디로 "아니다"이다. 냉전시대여서 몇 곳에 미군 주둔지역이 있어, 한국의 미8군과 연관된 연예회사에 의해 필리핀 등에 가끔 미군 위문공연을 다녀온 게 고작이었다.

여기에는 베트남전쟁이 큰 몫을 했다. 베트남전쟁 당시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8년 5개월동안 총 32만여명을 파병하였다. 이 참전 병사들을 위해 연예인들이 베트남으로 위문공연을 다녀오곤 했는데, 이 걸음을 동남아 순회공연으로 포장해 쇼 관계자들이 써먹은 탓이다.

막 돌아온 동남아 순회공연 가수로 첫손 꼽힌 가수가 지난 1일 새벽 급성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정원이다. 그는 1960년대 극장 쇼의 슈퍼스타로 기억된다. 그는 방송이 아닌 라이브 무대와 음반만으로 정상의 인기를 누린 특이한 가수였다.

지금도 올드팬들의 노래방 애창곡인 대표곡 '허무한 마음', '미워하지 않으리', '내 청춘' 등을 비롯해 그가 남긴 600여곡(번안가요 포함) 가운데 방송 인기가요 차트에 올랐던 노래가 단 한곡도 없는 희안한 가수다. 이름보다는 노래로 더 알려진 그는 원조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불릴만 하다. 그는 영원한 가요계의 마이너리거였다.

본명은 황정원. 1941년 지금은 북한 지역인 강원도 고성에서 출생했다. 그러나 호적상은 1943년이다. 올해 우리나이로 75살. 100세 시대인데 아주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4일(1.4후퇴) 11살 나이에 남쪽으로 피난 내려와 부산에 잠시 머물다가 전남 여수에 정착한다. 여기서 여수중학교를 거쳐 여수수산고에 진학한다. 고교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했고, 실력을 인정받아 서울의 한양공고 축구부로 스카우트된다.

하지만 그는 축구선수로 성공하기보다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축구 틈틈이 고교생 신분으로 여러 가요콩쿠르에 출전, 이름을 날렸다. 그가 가수로서 대중 앞에 처음 선 것은 우리나라 서커스단의 원조인 동춘서커스 무대를 통해서였다. 1962년 경이다. 무작정 서커스단장을 찾아가 요즘으로 말하자면 오디션을 자청하고 막간에 출연하는 기회를 잡는다. 그리고 한동안 동춘서커스를 따라 전국을 돌며 서커스 단원으로 노래를 부른다.

본격 가수생활은 미8군 연예무대를 통해 이뤄졌다. '미8군쇼 공급회사'였던 '화양주식회사'의 오디션에 합격해 미8군쇼단의 일원이 돼 주로 미군캠프 안의 클럽에서 팝송을 불렀다. 당시 가수들에게 있어 '미8군쇼단'은 꿈의 무대이자 스타의 산실이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중앙의 가요무대에 처음 선 때는 1966년.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서울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무대이었다. 그것도 당시 최고의 가수인 이미자가 메인인 무대였다. 무명가수인 정원은 이 무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어느 정도 무명이었는가 하면 연주를 맡았던 최창권(뮤지컬협회 초대 회장 역임, 2008년 작고) 악단이 반주를 거부할 정도였다. 오기가 발동한 정원은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얼굴에 검은 색칠을 하고, 도리구찌(헌팅캡)를 쓰고, 와이셔츠를 밖으로 빼 묶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스타일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스리가 불러 히트시킨 '하운드 독'을 열창했다. 노래가 끝나자 메인 가수도 아닌 그에게 무려 4번의 앙코르가 쏟아져 나왔다.

시민회관 공연 이후 그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고, 덩달아 당시 청바지에 청재킷을 즐겨 입었던 자니리(78)와 트위스트김(2010년 작고)과 함께 팝송 3총사로 주목받았다. 단정하지 못한 무대의상을 입고 마구 흔들어대는 서양 댄스곡을 부르는 이들을 묶어 대중은 '양아치클럽'이라고 불렀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그해에 그의 첫 앨범이 발표된다. 그를 눈여겨본 킹레코드사의 박성배 대표('킹박'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당시 음반계의 실력자)의 주선으로 최고 히트 작곡가 오민우와 작사가 전우를 만나 데뷔곡 '허무한 마음'을 내놓았다.

평소 나긋나긋한 트로트 선율이 귀에 익었던 당시 대중들에게 짙은 허스키 음색에서 터져 나오는 그의 쇠를 긁는 듯한 창법은 생소했지만 특별했다. '허무한 마음'은 발매와 동시에 전국 레코드 가게에서 매진 기록을 이어갔다.

빅 히트곡이 된 '허무한 마음'은 당시 '히트곡의 영화화' 추세에 따라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정창화 감독이 신성일 문희를 주인공으로 한 동명의 영화 '허무한 마음'을 옴니버스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정원의 노래 '허무한 마음'이 영화의 타이틀 음악으로 사용됐다.

지금도 이 영화는 케이블 채널을 통해 안방극장에 소개되고 있다. 또 지난 2003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정창화 감독 회고전'을 마련하고 이 영화를 상영해 올드팬 뿐 아니라 영화전공 대학생들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정원이 '허무한 마음'에 이어 발표한 '미워하지 않으리'도 판매 차트 1위에 오르며 1966년 연말 그에게 MBC 10대 가수상을 안겨준다. 방송을 거의 타지 않고도 10대 가수에 명단을 올린 유일무이한 가수이다.

가수상 수상 여세를 몰아 1967년에는 영화 '금송아지'의 주제가와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 등을 많이 불렀다. 또한 배우로도 활약했다. 희극영화의 거장 심우섭 감독의 음악 영화 '청춘은 즐거워'에 트위스트김, 남석훈, 김세레나 등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1968년에는 '무작정 걷고 싶어', '내 청춘' 등을 발표, 짙은 호소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의 흑인 시각장애 가수 레이 찰스(2004년 작고)의 흐느끼는 창법을 구사한 '내 청춘'이 창법 저속으로 금지곡이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70년대 초까지 정원의 가수활동은 이어졌고, 인기도 여전히 좋았다. 그런 정원이 어느 날 갑자기 일선 무대에서 사라진다. 1971년 당시 동양방송(TBC)과의 불화가 있은 직후였다. 당시의 방송국은 가수들에게 있어서는 '슈퍼 갑'이었는데, '가수상' 선정과 관련한 일로 성격이 불같던 그가 방송국 간부와 다투는 바람에 '방송정지'가 된 것이다.

방송가요계에 환멸을 느낀 그는 이때 그동안 수상한 트로피와 음반까지 모두 부셔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연예계를 뒤로 한 채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다. 80년대 초까지는 부동산업에 종사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7년 동안 술집을 경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대중에게 점점 잊힌 사람이 되었다.

1991년 후배인 가수 나훈아의 도움으로 신보 '인생은 본전'을 발표했으나 빛을 보지는 못했다. 10여년이 지난 2004년에도 앨범을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음반도 거의 사장되다시피 했다.

최근까지 그는 서울 변두리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간간이 동료들의 하우스 콘서트에서 노래를 불렀다. 지역 행사에도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복고클럽(福GO클럽) 콘서트'에 참여한 것은 물론 최근에는 종편과 케이블방송에 출연, 근황을 전하기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기 때문에 그의 작별은 팬들에게 더한 슬픔으로 다가오고 있다.

정원은 최근 한 지인에게 "이제는 인기보다는 자존심을 지키며 시골에서 직접 상추 등을 재배하면서 조그만 카페를 만들어 부르고 싶은 노래를 하며 조용하게 살고 싶다"라는 소망을 털어놓았다.

한때 남진 나훈아를 능가하고 영화배우 신성일에 버금가는 세금을 냈던 인기가수 정원. 허스키한 목소리와 전신으로 노래한 가수 정원, 그는 메이저리그를 뒤흔든 영원한 마이너리거이다.

[티브이데일리 민덕기의 스타예찬 news@tvdaily.co.kr / 사진=티브이데일리DB]

극장쇼| 스타| 정원

[ Copyright ⓒ * 세계속에 新한류를 * 연예전문 온라인미디어 티브이데일리 (www.tvdaily.co.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Copyright © 티브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