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3·1운동을 배후에서 이끈 박인호(1854∼1940)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선생은 1883년 동학에 입도해 1894년 제2차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었다. 1908년 천도교 대도주에 임명된 후 보성학교와 동덕여학교 등을 설립해 민족의식을 갖춘 인재를 양성했다. 1919년 천도교 전국 대교구에 등사 인쇄기를 배치토록 해 독립선언서 제작을 지원했다.
선생은 천도교 대교당 건축 명목으로 특별 성미를 거둬 3·1운동 자금으로 사용토록 했다. 3·1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고자 조선독립신문을 발간하는 등 배후에서 만세운동도 지휘했다.
선생은 일제로부터 기소되어 1년 9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상하이와 베이징의 천도교 전교실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했다.
1936년 지방에서 상경한 천도교 지도자들과 일제의 패망을 재촉하는 기도를 올린 것이 밝혀져 1938년 일제로부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