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희롱 교수 제보자 색출 나선 무개념 대학 징계위

장재진 2015. 2. 25.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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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립여대, 피해자들에 으름장… 가해자 징계·재발 방지책은 뒷전

"물적 증거 왜 없냐… 증언 적다" 사건 특수성 이해 못한 안이함도

해당 교수 1학기 수업 배정까지 4개월 넘게 피해자들 고통 가중

소속 교수가 수년간 제자와 동료 여교수들을 성희롱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서울의 한 사립여대(본보 1월 16일자 12면)가 가해자 징계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이면서 사건을 외부로 알린 내부고발자 색출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교수들의 잇단 성추행ㆍ성희롱 사건을 계기로 대학 사회가 적극적으로 사건을 공론화하고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대비돼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24일 해당 대학과 성희롱 피해자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대학 측은 13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중어중문학과 A교수와 성희롱 피해자 5명을 불러 조사했다. 지난해 11~12월 이뤄진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을 종합해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징계위원으로는 재단이사 2명과 교수 4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선 최종 결론이 나지 않았다. 대신 일부 징계위원들은 대외 이미지 실추에 따른 사건 유출 경위를 파악하는 데 열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B징계위원은 "(성희롱 사건이) 어떻게 (외부로) 유출된 것이냐. 그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언론 유출에 대해서는 일이 끝나고 학과 차원에서 강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 같은 발언을 접한 한 피해자는 "나를 포함해 성희롱 사건을 제보한 사람들에게 상당한 심적 부담이 됐다"며 "피해자 보호는 고사하고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힌 대학의 행태에 기가 막힌다"고 성토했다.

성희롱 사건의 특수성을 외면한 언급도 나왔다. C징계위원은 "처벌을 위해서는 물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A 교수의 성적 폭언에) 하루 이틀 당해온 것도 아닌데 왜 휴대폰 증거(녹음)라도 마련하지 못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D징계위원은 "언어 폭력이 많았다면 피해 학생들의 증언이 더 많이 나와야 하지 않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이고, 외부 공개를 꺼리는 사건 특성상 피해자 수가 실제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한 발언이다.

게다가 대학 측은 가해 교수에게 올해 1학기 강의(전공과목 3개와 교양과목 1개)도 배정하는 등 피해자와의 즉각적인 격리 조치도 외면하고 있다. 같은 사립여대인 덕성여대가 성추행 피해 접수 일주일 만에 조사를 끝마치는 동시에 해당 교수를 직위해제 및 고발 조치하고, 서울대가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경영대 교수에 대해 진상조사 착수와 함께 강의에서 즉시 배제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지난해 10월 중순 상담센터에 진정서를 접수한 피해자들은 "대학의 늑장 대응으로 벌써 4개월이나 지났다"며 "그간 A교수와 학교에서 아무렇지 않게 다시 만나야 했던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토로했다.

대학 측은 '제보자 색출' 발언에 대해 "징계위원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을 리 없다"고 일축했다. 재단 관계자는 "지금까지 여섯 번 징계위가 열렸고 최근 징계 수위가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사회가 징계위로부터 결과를 통보 받으면 인사위원회를 열어 수업 배제 여부 등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경찰청은 4~6월을 대학 내 성범죄 근절을 위한 집중 신고기간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또 학교 내 학생상담센터 110개가 참여하는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와 실무협의회를 구성, 성범죄 정보 교류 및 사건 처리에 관해 협조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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