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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역대 가장 뻔한 시상식·백인 중심 잔치…‘소신 발언이 살렸다’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역대 가장 뻔한 시상식이었다. 예상을 빗나가는 결과는 없었다. 특히 작품상과 감독상, 남녀 주연상과 조연상 등 주요 부문의 수상작과 수상자는 영화계 관계자들의 예상이 적중했다. 미국 빅데이터 분석 업체와 베팅 사이트 등이 내놓은 전망과도 100% 일치했다.

지난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작품상 수상이 유력했던 ‘그래비티’를 제치고 ‘노예 12년’이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85회 시상식에서도 스티븐 스필버그(‘링컨’)가 유력한 감독상 후보로 거론됐으나, 아카데미는 이안(‘라이프 오브 파이’)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가 66회 시상식에선 ‘피아노’의 안나 파킨이 11세의 어린 나이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는 반전 수상 결과가 주는 즐거움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백인 중심의 잔치’라는 오명도 털어내지 못했다. 대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현장의 관계자들은 물론, 영화상을 지켜본 전 세계 시청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왼쪽부터) J.K.시몬스, 패트리샤 아퀘트, 줄리안 무어, 에디 레드메인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주요 부문 수상, 이변 없었다=2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엔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진행됐다. 최다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버드맨’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각각 4개 트로피를 가져갔다. ‘버드맨’은 앞서 골든글로브 2개 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이날 작품상과 감독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미술상·분장상·의상상에 이어, (올해 시상식에서 그나마 의외였던) 음악상까지 거머쥐며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로 인정 받았다. ‘위플래쉬’가 남우조연상과 기술상 2개 부문(음향상·편집상)을 차지하며 3관왕 타이틀을 챙겼다.

남녀주연상 유력 수상자로 지목됐던 에디 레드메인(‘사랑에 대한 모든 것’)과 줄리안 무어(‘스틸 앨리스’)는 예상대로 ‘오스카의 꽃’이 됐다. 독보적인 존재감의 J.K. 시몬스(‘위플래쉬’)와 패트리샤 아퀘트(‘보이후드’)는 남녀조연상 수상이 일찌감치 확실시됐다.작품상과 감독상을 ‘버드맨’과 ‘보이후드’가 나눠가지지 않을까 하는 시나리오도 나왔던 것을 제외하면, 올해 수상 결과는 영화 관계자들과 국내외 언론, 베팅 사이트 등이 내놓은 전망과 부합했다. 반전은 없었던 것이다.

올해 시상식 결과와 관련해 정지욱 평론가는 “확실히 작년에 비해 보수화됐다”며 “‘버드맨’은 브로드웨이가 배경이라는 점에서 아카데미상과 맥락이 닿아있다. 다른 영화에 비해 미국 영화인들의 근원으로 회귀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백인 중심의 잔치’ 오명, 올해도?=아카데미 시상식을 따라다니는 보수성 논란은 여전했다. 지난 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노예 12년’에 작품상과 여우조연상이 주어지면서 이 오명을 씻는 듯했다. 하지만 올해 주요 부문 후보에 흑인 감독의 영화와 흑인 배우들이 배제되면서 또 다시 ‘백인 중심의 잔치’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남녀주연상과 조연상 등의 후보에 오른 20명의 배우 중 유색인종 배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특히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실화를 담은 ‘셀마’가 작품상 후보에 올랐지만, 주연인 흑인 배우 데이비드 오예로워는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흑인 감독인 에바 두버네이 역시 감독상 후보에서 제외됐다. 흑인 출신의 남녀주연상 수상자는 2002년 덴젤 워싱턴과 할리 베리 이후 지금까지 없다.

다만,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올해 오스카 트로피를 세 개나 들어올린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히스패닉계 감독으로선 첫 작품상 수상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지난 해엔 멕시코 출신의 또 다른 거장 알폰소 쿠아론(‘그래비티’)이 감독상을 받으며, 백인 수상자가 주류인 시상식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사회적 약자 호명한 수상소감 ‘뭉클’=여성과 성적 소수자, 흑인, 희귀병 환자 등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무대에 오른 수상자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지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여우조연상을 받은 패트리샤 아퀘트(‘보이후드’)는 수상 소감 말미에 “모든 이의 평등권을 위해 우리는 함께 싸웠다. 평등이야말로 모든 이, 특히 여성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각본상을 받은 그레이엄 무어는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해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따스한 격려를 전해 주위를 뭉클하게 했다.

‘셀마’로 주제가상을 받은 로니 린은 “자유를 위한 우리의 고군분투는 계속될 것이다. 많은 흑인들이 여전히 핍박을 받고 있다. 우리는 ‘셀마’의 노래를 부르며 같이 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객석의 배우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또 에디 레드메인은 “이 상의 영광을 루게릭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환자들에게 돌리겠다”고, 줄리안 무어는 “고립됐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스틸 앨리스’를 통해 조명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영화인들의 소신 발언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공유됐고, 이들이 입은 드레스보다 더 큰 화제를 모았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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