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 이재구의 활약, 시리즈로 안 될까요

2015. 2. 2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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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리뷰] SBS 특집극 '인생추적자 이재구', 사회 고질적 '갑을' 병폐 그리다

[오마이뉴스 이정희 기자]

SBS가 지난 21일과 22일에 방영한 3D특집 2부작 드라마 <인생추적자 이재구>는 인생 막장에 몰린 노무사 이재구(박용우 분)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드라마의 제목을 짓자면, 혹은 부제라도 붙여 보자면 '회사원 김태수(엄효섭 분) 씨의 억울한 죽음'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노무사 이재구의 드라마틱한 활약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 하루 아침에 회계 담당이었던 김태수가 영업사원으로 급락하고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버티다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되는 모습을 담은, 우리 사회 '을'의 슬픈 자화상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노무사 이재구가 맡은 김태수 사건

SBS <인생추적자 이재구> 포스터

ⓒ SBS

8년 동안 고시를 준비하다 실패를 거듭한 채 결국 노무사가 된 이재구.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노무사 생활은 여의치 않다. 오랜 고시 실패를 견디지 못한 아내 서주미(윤주희 분)는 3년 째 별거에 이혼을 신청 중이고, 병원에 장례식장을 전전하며 '목숨값을 받아드린다'고 명함을 돌리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분노한 유족이 쏟은 육개장 국물이다.

불법 영업으로 쫓기다 과거 그를 찾아왔던 김태수를 병원에서 다시 만난 이재구는 졸지에 김태수와 형 동생으로 의기 투합한다. 그리고 그날 밤 김태수의 집에까지 함께 하며 그의 사연을 헤아리게 된다.

김태수는 의료 기기를 파는 GB메디컬에서 회계 업무를 보던 직원이다. 하지만 20년 째 근무하던 회사는 하루 아침에 그를 사무직에서 영업직으로 발령낸다. 의료기기라는 걸 팔아본 적이 없는 그에게, 이미 기존 영업 사원들이 차지하고 남은 할당을 맡아 실적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처음 이재구의 충고대로 이 상황을 어떻게든 참고 견디고자 했던 김태수. 그러나 새벽부터 지방으로 영업을 돌던 그는 그만 계단에서 굴러 뇌에 출혈이 생기고, 이를 제때 치료하지 못한 채 밤 늦게까지 접대를 돈다. 결국 김태수는 다시 또 다른 지방 영업을 하기 위해 가던 중 교통사고를 내고 목숨을 잃는다.

김태수가 하던 일이 반품된 의료기기를 몰래 처분하는 일이었기에 회사 측에서는 그의 지방 행을 무단 결근으로 처리한다. 당연히 그의 사고는 그 개인의 사고일 뿐이다. 억울한 아내는 집까지 왔던 노무사 이재구를 찾아가고, 만류하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며 남편의 행적을 쫓는다.

극중 김태수는 입사 동기였던 GB메디컬 이사의 비리를 알게 되는 바람에, 그리고 그 비리에 동조한 또 다른 입사 동기의 비리를 폭로할 수 없어서 영업직으로 좌천된 뒤 갖은 수모를 겪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특정한' 사례를 통해 드러나는 건, 우리 사회 '을'들의 '보편적'인 사연들이다.

김태수라는 개인을 넘어선 우리 사회 보편적 '을'의 이야기

하루 아침에 자신이 일하던 부서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쫓겨나는 것은 말이 '전출'이지, 명예 퇴직 강권의 징조다. 한 통신사의 수많은 사원들이 그렇게 졸지에 전봇대에 올라갔고, 전단지를 돌리게 됐다. 증권맨이 하루 아침에 이 식당 저 식당에 명함을 모으러 다니는 일도 생긴다. 그들이 해오던 일이 아닌 만큼, 이를 잘 해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 그들에게, GB메디컬 박우석 이사(최종환 분)로 상징되는 '갑'들은 그건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말한다. 그렇게 코너에 몰린 '을'들은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려고 한다. 생전 들어보지 않은 무거운 기기를 들고, 생전 가보지 않은 곳에 가서 굽신거리며, 생전 해보지 않은 접대를 한다.

하지만 동료들의 눈은 차갑고, 회사는 그런 그들을 더 몰아가기만 한다. 심지어 극중 김태수처럼 업무 중에 다치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그의 죽음값조차 아까워 갖은 편법을 통해 개인의 죽음을 온전히 개인의 과실로 밀어붙이고자 한다.

SBS <인생추적자 이재구>의 한 장면

ⓒ SBS

물론 김태수는 이혼을 하고 아이까지 잃게 된 노무사 이재구가 '배수진'의 심정으로 사건에 매달리고, 아내 송연희(유선 분)가 남편에 대한 중상 모략은 물론 갖은 회유와 협박, 심지어 집에 빨간 딱지가 붙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남편의 죽음을 밝히고자 하는 의연함을 보였기에 죽음값 대신 '인생의 값'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김태수라는 사람의 사고, 그리고 죽음을 무마하기 위해 사측이 가족들을 두고 그를 무능력한 사람에서 비리 사원으로까지 몰고 가며 회유하고 협박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 한 사람의 '을'이 그 죽음의 과정에서조차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게 얼마나 버거운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 드라마는 주인공을 노무사로 삼음으로써 '을'이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 을이 을로써 설 수 있기 위해 도와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제 몫을 해내는지에도 주목한다.

주인공 이재구는 명함 속 '목숨값을 받아드린다'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처음 김태수 사건 났을 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송연희에게 사측과의 협상을 권유한다. 그간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것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를 몸소 체험한 결과다.

그도 그럴 것이, 산재 보상 위원회 위원장은 GB메디컬의 회유에 손쉽게 넘어간다. 공적인 위치에 있는 개인이 자신의 일을 사적 이익에 희생할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인생추적자 이재구>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재구가 노무사로서 자신의 본령에 섰을 때 결국 김태수의 인생을 보상받을 수 있었듯이, 공적인 일을 하는 이들이 사리사욕을 넘어 제대로 할 일만 한다면 '갑'의 횡포를 얼마든지 막을 수도 있다고도 강조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덧붙인다. 결국 증거도 없이 GB메디컬을 몰아가야 하는 이재구의 편에 김태수의 입사 동기였던 이성식 과장(이기영 분)이 선 것을 통해, 누가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는가를 말이다.

김태수는 자신이 영업 사원으로 몰리는 상황에서도 동료였던 이성식 과장을 보호하기 위해 박 이사의 비리에 눈을 감았다. 김태수가 죽은 뒤에도 이성식 과장은 자기 안위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이재구는 한 회사원의 산재 보상은 결국 동료 직원의 도움이 없이는 받기 힘들다며 이 과장을 설득한다. 그리고 결국 이 과장은 보상 위원회에 선다.

이는 그저 드라마틱한 결말을 위한 극적 장치일 뿐이 아니다. '을'의 정당한 댓가, 정당한 대우는 결국 또 다른 '을'과의 연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드라마가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우리 사회 '을'의 억울한 위치와, 그들을 돕기 위한 공공직 노무사의 직업 윤리를 돌아본 드라마 <인생추적자 이재구>. 극중 노무법인 공수래의 활약은 어쩐지 단 한 번의 특집 드라마로만 보기엔 좀 아깝단 생각이 든다. 공익적 차원에서 시청률은 차치하고 시리즈로, 아니 그게 어렵다면 시즌제로라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영국의 <셜록>처럼 1년에 한 번이라도 말이다. 우리 사회 억울한 '을'들의 사정이야, 차고 넘치니 이야기가 고갈될 이유는 없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이 기사를 응원하는 방법!☞ 자발적 유료 구독 [ 10만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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