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악몽같은 삶이라도 당신만 있으면

입력 2015. 2. 23. 03:05 수정 2015. 2.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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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15년 2월 22일 일요일 흐림. 리셋.Corinne Bailey Rae 'I'd Do It All Again'(2010년)

설은 민족 최대의 (무기력감을 주는) 명절이다. 뉴스의 둘째 꼭지는 대개 쓸쓸한 죽음을 맞은 노인과 가족의 안타까운 이야기로 어둡게 장식된다.

그들은 죽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D는 생각했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빌 케이지 소령처럼 완벽한 하루, 또는 1년을 맞을 때까지 죽도록 삶을 반복하고 싶다는 열망의 불꽃에 그들이 잠깐 사로잡힌 거라고. 지하철에서 별 볼 일 없는 모바일 게임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마 D는 리셋에 대해 생각했을 거다.

영국 가수 코린 베일리 래가 2010년 낸 2집 '더 시(바다)'의 첫 곡은 떠나간 사람을 그리는 노래 '아 유 히어(당신 여�나요)'다. 래가 몇 년 전 한국에 온다고 했을 때, D는 푯말 하나 준비해갈까 생각했었다. '아이 앰 히어(나 여기 있어요)'라고 쓴. 만약 그걸 실행에 옮겼다면 래는 수많은 관객 속에서 유령을 보듯 D의 얼굴을 마주쳤을지도 몰랐다.

래는 둘째 곡 '아이드 두 잇 올 어게인'을 남편과 심하게 다툰 날, 기타를 들고 주저앉아 휘갈겨 썼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존심보다 소중한 거지/고통보다도 더/그리고 슬픔을 모두 다 합친 것보다도 더….' 지긋지긋한 다툼에 지쳐가면서도 이 사람 없는 삶을 상상할 수도 없는 지독한 감정으로.

라디오헤드의 '저스트', 콜드플레이의 '더 사이언티스트'로 유명한 제이미 스레이브스 감독이 연출한 뮤직비디오는 '저스트'처럼 신비롭고, 공허하다. 영상은 래가 아침에 일어나 화장을 하고 재킷을 걸친 뒤 공원을 산책한 다음, 쇼핑을 하고 어두운 지하도를 건너 계단을 마주 내려오는 인파를 뚫고 다시 지상으로 나가는 시퀀스를 딱 세 차례 반복하고 끝난다.

셋 중 두 번째 것만 좀 길다. 외투를 벗어던지고 차도 위를 헤매다 어두운 골목에서 숨을 고르는 장면까지, 래는 여기서만 한 번 자각몽처럼 도달한다. 음악 역시 이때 한 번뿐인 절정을 지난다. '모두다 다시 할 거야/모두다 다시 할 거야/모두다 다시 할 거야….' 래는 침대 위에서 거듭 깨어난다. 필름이 엉킨 영화 같다.

절정을 꿰뚫는 절창은 만약 똑같이 악몽 같은 삶이 되풀이된다고 해도 당신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다짐이다. 이 노래가 만들어지고 두 달 뒤, 래의 남편은 약물 과용으로 사망했다. 노래란 이름의 꿈만이 계속된다.

'당신은 뭔가를 찾고 있지만/난 알아. 그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어.'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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