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멋따라> 산길에 사연 덧그린 괴산 '산막이 옛길'

입력 2015. 2. 21. 11:02 수정 2015. 2. 2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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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호 산허리 따라 4km..산·호수 어우러진 한 폭의 동양화

괴산호 산허리 따라 4㎞…산·호수 어우러진 한 폭의 동양화

(괴산=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괴산읍내 장을 보기 위해 산나물과 약초를 한짐 싸들고 집을 나선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산막이 마을의 한 촌부(村夫)가 호수 위의 산허리를 감도는 벼랑길을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아 자칫 발을 헛디디면 호수로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길을 따라 10리는 족히 걸어야 '신작로'를 만날 수 있다.

촌부는 한참을 걷다 담배를 빼물고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광을 감상하면서 어렸을 때 마을을 떠올린다.

산막이 마을은 말 그대로 산이 장막처럼 둘러싼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유배지였을 정도로 첩첩산중이었다.

달천과 어우러진 기암괴석, 깎아지른 벼랑이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조선후기 선비 노성도가 이곳의 풍경에 반해 연하구곡(煙霞九曲)이라 부르며 "신선의 별장"이라고 극찬했다는 기록도 있다.

1957년 순수한 우리 기술로 괴산댐을 건설하면서 개울이 호수로 변하고 유일한 육로인 산길도 사라졌다. 주민들은 이때부터 산허리를 둘러 가는 비탈길로 통행했다.

이후 주민들이 하나 둘 마을을 떠나면서 산막이 마을과 이 길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서서히 잊혔다.

촌부가 걷던 이 길은 수십년 후 전국적으로 둘레길 열풍이 불던 2008년 8월부터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산길에 나무데크를 놓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이듬해부터 관광객들이 찾았다.

당시 인근 4개 마을 주민들이 권역별 농촌마을종합개발을 추진했고, 이때 사은리 출신인 임각수 군수가 "옛길과 옛 사연으로 엮은 둘레길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기억을 되살려 사은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막이 마을까지 이어지는 4㎞ 구간에 둘레길을 만들고 '산막이 옛길'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정식 개장한 2011년 첫해에 88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산막이 옛길은 '대박'을 터트렸다.

지난해에는 관광객이 150만 명을 웃돌 정도로 전국의 대표적인 둘레길로 자리를 잡았다.

무엇보다 경사가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나 어렵지 않게 걸으며 발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괴산호의 빼어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산막이 옛길은 괴산호를 내려보며 산허리를 따라 걷는 구간 전체를 친환경 나무데크로 꾸몄다. 옛길을 따라 펼쳐지는 산과 물, 숲이 어우러진 자연미를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걷다 보면 어렸을 때 할아버지·할머니가 들려준 옛날이야기의 소재를 연상케 하는 장소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 걷는 재미를 더한다.

여름철 무더위를 식힌 서당의 야외 학습장이었던 '고인돌 쉼터', 1968년까지 호랑이가 살았다는 '호랑이 굴', 여우비나 여름 무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간 '여우비 바위굴', 앉은뱅이가 물을 마신 후 걸었다는 '앉은뱅이 약수', 한여름에도 서늘한 '얼음 바위골', 산짐승이 목을 축인 '노루샘'이 이어진다.

나무꾼이 톱을 대자 '웅웅' 소리를 냈다는 '신령 참나무',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을 한 '정사목', 아름다운 여인이 옷을 벗고 엉덩이를 보이며 꼬고 앉은 듯한 '옷 벗은 미녀 참나무', 나무 두 그루가 하나로 합쳐진 '연리지'도 볼 수 있다.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은 매의 형상을 한 '매바위', 괴산의 산(山) 형상을 한 '괴산 바위', 느티나무 위에서 호수의 운치를 감상할 수 있는 '괴음정', 40개 계단을 오르면 호수와 바위의 절경이 펼쳐지는 '마흔 고개', 진달래가 소나무 숲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 동산'은 걷는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게 한다.

등산을 하고 싶으면 산막이 옛길의 초입에서 시작되는 등잔봉을 오르면 된다.

옛날에 과거를 보러 간 아들을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기도를 올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450m의 가파르고 험한 이 산을 오르다 보면 산으로 둘러싸여 있던 옛 산막이 마을의 정취를 온전히 맛볼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맞은편 군자산 자락과 호수가 어우러진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지고, 산자락에서 뻗어나온 마을을 호수가 한반도 지형처럼 감싼 풍경을 감상하는 또 다른 재미를 던져준다.

이렇게 산막이 마을에 도착하면 걷기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황포돛배와 유람선이 기다린다.

이 배를 타고 출발했던 사오랑 마을로 돌아올 수 있다.

둘레길과 등잔봉을 번갈아 걷는 것도 산막이 옛길을 두 배로 즐기는 방법이다.

이렇게 2∼4시간의 여행을 마치고 나면 흐릿하게 남아 있는 옛길이 주는 아늑함을 한껏 가슴에 담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괴산군 관계자는 "산막이 옛길은 아름다운 자연과 옛길을 둘러싼 이야기가 더해진 푸근함이 있다"며 "인근에 조성한 양반길과 함께 이 일대를 전국 최고의 둘레길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bw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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