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이 떡국 끓어주며 설 보냈죠"

2015. 2. 1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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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민아빠 김영오씨 "유가족은 차례라도 지내는데 실종자는…"

[미디어오늘 이하늬 기자]

설 아침, 아빠는 떡국을 끓였다. 새해 첫 떡국의 첫 그릇은 큰 딸 몫이다. '유민아빠' 김영오(48)씨는 첫 그릇을 떠서 방 한 편에 놓인 유민이 영정 사진 앞에 놓았다. 떡국 옆으로는 작은 케이크과 초콜릿을 놓았다. 그 앞으로는 배, 사과, 홍시, 곶감도 놓았다. 유민이 영정 옆으로는 둘째 딸 유나와 김씨가 안고 있는 신문광고가 붙어있다.

"한 달 전에 유민이 생일이어서 미역국을 끓였는데 또 금방 애가 좋아하는 설이 됐네." 김씨가 쓸쓸하게 말했다. 한 달 전 유민이 19번째 생일에는 '뽀로로' 케이크와 미역국, 흰쌀밥, 김치를 놓았다. 그리고 유민이에게 주는 선물로 금연을 하기로 했다. 담배를 끊겠다는 약속은 여전히 잘 지키고 있다.

오전 10시, 떡국을 먹은 김씨는 바쁘게 안산 합동분향소로 이동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모여 '합동 차례'를 지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걸 차례라고 표현해야 하나. 그냥 애들 좋아하는 거, 맛있는 거 차려주는 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딸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가끔 믿기지 않는 그에게 딸을 기리는 차례는 낯설다.

이날 엄마아빠들은 아이들이 좋아했던 음식으로 차례 상을 차렸다. 피자와 치킨, 떡볶이 등이 합동분향소 곳곳에 놓였다. 자식의 영정 앞에 서서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가족도 있었다. 19일 생일을 맞은 이들도 있다. 단원고 2학년 6반 고 이영만 학생과 고 황민우 학생이다. 두 학생의 영정 앞에는 국화와 케이크가 나란히 올랐다.

▲ 민족최대 명절인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및 시민들이 합동차례를 올리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유가족은 차례라도 지내는데 실종자는…"

합동분향소에서 합동 차례를 끝낸 가족들은 희생자들이 안치된 화성 효원납골공원, 평택 서호추모공원, 안산 하늘공원을 방문한 뒤 오후에는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한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합동 차례와 음식 나눠먹기 행사가 준비돼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거라도 하는데…" 김씨가 말했다. 실종자 가족을 염려하는 말이었다.

지난 14일은 세월호 참사 3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유가족들은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도보행진을 했고 김씨도 팽목항을 찾았다. "그 분들이 얼마나 힘들겠나. '힘내세요'는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가족을 못찾았는데 뭘로 힘을 내겠나." 현재 남은 실종자는 단원고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학생과 양승진 교사, 고창석 교사. 일반인 승객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씨 등 9명이다.

"유민이는 8일 만에 물에서 나왔다. 나는 그날까지도 유민이가 살아 있을 거라고 믿었다. 사고 첫 날 어선들이 구해서 여기저기 섬으로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부가 태워서 섬에 가 있겠지. 가족이라면 그런 생각을 안 가질 수 없다. 지금 실종자 가족들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반드시 배 안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 못찾고 있을 뿐이지."

그러면서 김씨는 "설령 실종자가 세월호 안에 없다해도 세월호는 반드시 인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눈으로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진상규명을 위해서도 인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단식을 시작했던 지난 해 여름이나 해가 바뀐 지금이나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왜 죽었는지, 왜 죽어야만 했는지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300일이 지나도록 제대로 밝혀진 건 없다. 가족들이 의문을 가졌던 건 유언비어로 취급되기 일쑤이고 국가의 책임도 세월호 참사 당일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 123정 정장에 국한 돼 인정됐다. 지난 해 11월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올해 1월 출범 예정이었던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위)는 지금 상황이라면 빨라야 4월에 출범할 수 있다.

▲ 유민아빠 김영오씨. 사진=이하늬 기자

새누리당에 무릎꿇은 아빠 "무릎이라도…"

가족들은 가장 큰 걸림돌을 새누리당의 '방해'로 꼽았다.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세월호 특위를 두고 '세금도둑'이라 하는가 하면 세누리당 추천 특위 위원들도 어깃장을 놓는다는 주장이다. 실제 황전원 위원은 특위 준비단이 명분이 없다며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으며 지난 13일 새누리당 추천 특위 위원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자 유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진짜 너무하더라. 한 사람 한 사람씩 총 다섯 명이 회의 중에 자리를 떠났다. 한 사람 나갈 때마다 가족들은 미친다. 그걸 보면서 속이 어땠겠나. 하지만 유가족이 큰소리를 내면 우리 때문에 회의가 미뤄진 거라고 이야기가 나올까봐 울분을 삭히면서 참았다." 김씨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화가 나도 화조차 못내는 상황이다.

김씨는 최근에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앞에서 무릎까지 꿇고 말했다. "제가 대통령께 하고 싶었던 것, 이 자리에서 부탁드리겠습니다. 꼭 좀 약속 좀 지켜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우리를 정치세력으로 몰아가지 마시고요. 제발 부탁인데 엄마아빠로서, 이 나라를 중립에 서서 안전한 나라 만들어주시길."

김씨는 "나한테는 돈도 없고 권력도 없으니까 할 수 있는 게 굶는 것,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 그리고 비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으면 해야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몸 버리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하고 싶다. 그래야 하늘나라에 애들 보러갈 때 조금이라도 떳떳한 아빠로 가지"라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쓸쓸한 설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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