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2013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특별사면권에 따라 앨런 튜링(1912~1954)이 공식적으로 무죄가 됐다. 그의 사후 59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당시 크리스 그레일링 법무장관은 "그의 전쟁에 대한 지대한 공헌과 과학 유산은 기억되고 인정받을만하지만, 그의 후반 인생은 동성애에 대한 유죄판결로 빛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스티븐 호킹을 비롯해 전세계 과학자들이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 청원을 쏟아낸 것이 다소나마 효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하지만 앨런 튜링이 받아야할 것은 사면이 아니라 '사과'가 아닐까. 천재적 두뇌를 가졌던 그는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정작 영국 정부는 그의 업적을 오랜 시간 동안 비밀에 부쳤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성적 취향을 문제 삼아 약물투입 등 화학적 거세를 강제했다. 튜링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2년 뒤인 1954년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을 묻힌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9년에서야 당시 고든 브라운 총리가 "그가 받았던 끔찍한 처우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지만, 그의 무죄가 공식 확정되기까지는 그로부터 4년이 더 지나야 했다. 이 같은 국가적 폭력만 없었더라도 '컴퓨터의 시조'인 앨런 튜링을 우리는 일찌감치 위인전에서 만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앤드루 호지스의 책에서는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가 어떻게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한다. 독일군은 문장을 이해할 수 없는 글자 배열로 바꾸어 무한대에 가까운 암호 조합인 '에니그마'를 만들어냈는데, 이 모든 설정을 확인하려면 거의 2000만년이 걸린다고 한다. 만약 튜링이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이 암호를 풀지 못했다면 유럽이 나치의 손에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그의 업적은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30년 동안 비밀에 부쳐졌다. 무신론자이면서 동성애자, 괴짜에 마라톤을 즐기는 천재 수학자, 무엇보다 컴퓨터의 개념을 창안하고 현재 컴퓨터의 탄생에 기여한 앨런 튜링의 암호같은 인생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 앤드루 호지스 지음 / 김희주 한지원 옮김 / 동아시아 / 3만6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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