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문재인, 노무현의 친구에서 제1야당 대표로

류호 기자 2015. 2. 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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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노무현과 인연 맺어..참여정부 비서실장 역임 2012년 총선으로 본격 정치 시작..대선서 48% 득표 석패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당대표에 문재인 후보(사진)가 선출됐다. 문 신임 새정치연합 대표는 부산 사상을 지역구로 둔 초선의원이다.

모두 알다시피 문 대표는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섰으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석패했다. 대선 패배의 아픔에도 문 대표는 여전히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된다.

'젠틀 재인'이라는 별명처럼 온화한 성품으로 당내 폭넓은 지지세력을 갖고 있다.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親盧·친노무현)계 수장으로 평가받지만, 이러한 점은 역설적으로 '노무현의 남자'라는 꼬리표를 갖게 만들었다.

◆ '노무현의 친구'에서 제1야당 대표로

'문재인=노무현'?

문 대표의 가장 큰 자산이자 그림자는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친노라는 두 글자는 그를 지난 대선 후보와 제1야당의 대표로 이끌었지만, 그의 가장 큰 약점으로도 거론된다.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1982년 시작됐다. 문 대표의 사시 동기인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소개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이후 두 사람은 부산에서 시국·노동 사건 변호에 전념하며 의기투합했다. 1988년 노 전 대통령은 총선 출마를 위해 사무실을 떠났고 문 대표는 부산에 남아 시국 사건 변호 활동을 이어갔다. 문 대표는 이후 1995년 법무법인 부산을 설립하며 부산 지역의 스타 변호사로 떠올랐다.

'문재인'이라는 이름은 2002년 세상에 알려졌다. 대선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의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으면서 '노무현의 친구'로 이름을 알렸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선거 유세 중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라고 문 대표를 소개한 건 유명한 일화다.

문 대표는 2003년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와 2007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2010년부터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문재인의 정치'는 2012년 부산 사상구에서 총선에 출마하면서 시작됐다. 55%의 득표율로 당선되며 정치권에 본격 입문한 그는, 같은 해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지만 48%의 득표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석패했다.

◆ 문재인의 특이한 사연…유치장서 사법고사 합격 소식 들어

문 대표는 1953년 1월 피란민들이 모여살던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그의 부모는 1950년 피란길에 나섰다. 문 대표는 영화 국제시장을 첫 장면인 '흥남 철수'를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문 대표가 초등학교 들어설 무렵 그의 가족은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가난했다. 어린 시절 문 대표가 직접 연탄배달을 하고 성당에서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가난했다. 그는 자서전 '운명'에서 "연탄 검댕을 묻히며 리어카를 끄는 일이 창피해 툴툴거려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일쑤였다"고 썼다.

학창시절엔 '문제아'였다. 술·담배로 정학을 4번이나 맞았다. 그래도 머리는 좋았다.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서울대 상과대학에 응시했지만 떨어졌고, 재수 끝에 1972년 경희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문제아 기질은 대학 생활에도 이어졌다. 1~2학년 밥 먹듯 수업을 빼먹던 그는 대학 3학년 때인 1974년 교내 첫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이듬해 4월 유신독재 화형식을 이끌다 결국 구속됐다. 석방과 함께 강제징집돼 특전사에 입대했다.

인생의 전환점을 1978년 맞는다. 그는 제대와 동시에 부친을 잃었다. 문 대표는 이후 부친이 바라던 사법시험에 매진해 1979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한다. 하지만 1980년 '서울의 봄' 시위에 나서 다시 경찰에 체포됐다. 문 대표는 유치장 안에서 사법시험 2차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를 축하하기 위해 동창들이 유치장을 찾아 유치장에서 소주 파티가 열렸다고 한다.

문 대표는 1980년 학교 후배인 김정숙씨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이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우수한 성적을 거둬 판사를 지망했지만 시위 전력 탓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1953년 경남 거제 출생 ▲경남중·고 ▲경희대 법학과 ▲1980년 22회 사법시험 합격 ▲1983년 사법연수원 12기 수료(법무부장관상) ▲법무법인 부산 대표 변호사 ▲2003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7년 대통령비서실장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위원회 및 상임집행위원장 ▲2010년 재단법인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2012년 19대 국회의원 ▲18대 대통령선거 민주통합당 후보 ▲민주통합당 대표대행 ▲2015년 새정치연합 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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