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멋따라> '탁류의 무대' 군산에서 근대를 만나다

2015. 2. 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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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역사 간직한 근대문화유산의 보고..옛도심 복원 재조명

시린 역사 간직한 근대문화유산의 보고…옛도심 복원 재조명

(군산=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작가 채만식(1902∼1950)이 193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탁류(濁流)'는 전북 군산 이야기로 시작한다.

근대 군산의 모습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탁류'라는 말에 앞설 단어가 없을 듯하다. 탁한 흐름, 일제강점기의 사회 부조리와 수탈을 은유한 것이라 하겠다.

1899년 5월 1일 개항한 군산은 일본 제국주의의 필요에 종속돼 왜곡된 성장을 겪었다. 일제강점기 군산은 조계지(租界地·외국인거주지)를 원형으로 해서 확장했다.

본정통(혼마찌)을 중심으로 관공서와 은행, 회사 등이 들어선 상업·업무지구가 형성됐고, 동남부의 군산역 부근에는 정미업을 중심으로 하는 공업지역이 형성됐다.

그러나 도로와 건물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군산항에 운반된 쌀의 하역작업을 했던 조선인들의 거주지는 조계지 밖의 둔율동, 개복동의 산기슭이었다.

이런 도시 공간의 이중구조는 일본인을 위한 사회간접자본 정비와 더불어 민족·계층적으로 심화했다. 군산 시가지는 지배와 피지배, 개발과 소외라는 이중성을 가지며 성장했다.

장사치 흥정소리와 생선 비린내가 전부였던 포구는 개항과 한일병합을 거치면서 인구 10만명이 넘는 무역항으로 거듭났다.

일본은 조선 강점 이후 쌀과 자원을 수탈해가는 출구로 군산을 선택했다. 군산 앞바다는 미곡과 광물을 실어가는 일본 선박으로 항상 북적거렸다. 도시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길이 나고 일본식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일제는 지금의 내항에서 월명동에 이르는 거리에 일본인 마을까지 조성했다. 갈대밭 천지였던 곳을 메우고 일본식 마치(町) 체계로 신도시를 만들었다. 본정통(해망로)·전주통(영화동)·명치정(중앙로1가)·강호정(중앙로2가)이 이때 생겼다.

'군산 속의 일본'이 만들어져 개항 당시 77명이던 거주 일본인이 1936년에는 1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아직도 장미동과 월명동 등 군산 내항 주변에는 독특한 건축양식의 관공서 건물이 남아 있다. 대부분 건물은 '쌀 수탈 전진 기지'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두가 위치한 곳은 '쌀 곳간'을 의미하는 장미동(藏米洞)으로 불렸다. 호남과 충청도의 곡창지대에서 수탈한 쌀을 저장했던 창고가 즐비해 붙은 이름이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군산 내항 사진에는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쌀가마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장미동의 옛 군산세관 건물(전북도 지방기념물 제87호)은 1908년 붉은 벽돌과 화강암으로 지어졌고,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섞은 일본식 건축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독일인이 설계한 이 건물은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을 수입해 유럽 양식으로 건축했는데 한국은행 본점건물과 같은 양식이다. 바깥벽은 붉은 벽돌이지만 내부는 목조로 건축했으며 슬레이트와 동판으로 지붕을 올리고 그 위에 세 개의 뾰족한 탑을 세웠다. 이 건물은 건축사적 의미 외에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에서 쌀 등을 빼앗아 가던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역사의 교훈을 주고 있다.

2011년 개관한 장미동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옆에는 옛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국가 등록문화재 제372호)이 자리잡고 있다. 이 은행은 일본 나가사키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일본 지방은행으로 조선에서는 1890년 처음 문을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전국에 지점을 개설했는데 군산은 1907년에 조선에서는 일곱 번째 지점으로 건립됐다. 일본인들이 고리대금업으로 농민들의 토지를 갈취하는 자금줄 역할을 했다. 일본인들은 은행에서 싼 이자로 대출을 받아 농민들에게 토지를 담보로 고리대금을 일삼았다. 농민들은 결국 소작농으로 전락했고 은행은 일본인들의 배를 불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지금은 군산근대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바로 옆에는 옛 조선은행 건물(국가등록문화재 제374호)이 들어서 있다. 식민지 지배를 위한 대표적인 금융시설로 1922년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상인들에게 각종 특혜를 제공해 군산과 강경의 상권을 장악하는 데 초석을 놓았다. 설계자는 나카무라 요시헤이이고 2층 건물로, 지붕은 함석판으로 이은 모임지붕으로 지어졌다.

1909년 설립된 대한제국의 국책은행인 옛 한국은행은 일제강점기 총독부에 의해 조선은행으로 개칭됐고 조선총독부의 직속 금융기관 역할을 했다. 소설 '탁류'에도 등장했고 지금은 군산근대건축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월명공원 근처에 있는 해망굴(국가등록문화재 제184호)은 수산물의 중심인 해망동과 시내를 연결하고자 만들어진 반원형의 터널로 1926년에 개통됐다. 한국전쟁 중에는 인민군 부대 지휘소로 사용해 연합군의 공격을 받기도 했으며 현재는 자동차의 출입을 막아 행인만 통과할 수 있다. 해망굴·해망로는 군산 8경의 제3경 해망추월(海望秋月·해망령 전망대의 소나무 위로 떠오른 가을 달의 모습)에서 따왔다고 한다.

인근 신흥동 일본식 가옥(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은 눈에 확 띄는 건물이다. 일명 '히로쓰 가옥'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포목점과 농장을 운영했던 히로쓰 게쯔샤브로가 지은 전통 일본식 2층 목조가옥이다. 'ㄱ'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이 두 채 있고 일본식 정원에는 큼직한 석등이 있다. 일식 다다미방과 도코노마 등이 있어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동국사는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제 사찰이다. 한일병합 1년 전인 1909년 6월에 창건됐다. 일본 조동종 승려 우찌다 스님이 일조통에서 '금강선사'란 이름으로 포교소로 개창했고, 1913년 현 위치로 옮겨와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했다. 1945년 해방을 맞아 정부로 이관됐다가 1955년 불교전북교당이 인수했다. 당시 전북종무원장 김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개명했다. 1970년 조계종 24교구 선운사에 증여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군산 출신의 고은 시인은 이곳에서 불가에 입문했다.

해망로와 맞닿은 군산 내항에는 당시 3천t급 기선을 댈 수 있었던 부잔교(뜬다리부두)가 아픈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다. 부잔교는 밀물 때 다리가 수면에 떠오르며 썰물 때 수면만큼 내려가는 수위에 따라 다리의 높이가 자동조절되는 선박 접안 시설물이다. 군산항 개항 이후 3천t급 배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었고 이 다리를 통해 쌀 등이 일본으로 반출됐다. 현재 전체 4기 중 3기만 남아 있다. 부잔교 준공식에 참가한 사이토 총독은 '오, 고메노 군산(쌀의 군산)'이라고 경탄했다고 한다. 근대 군산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산의 20세기를 압축해 본다면 '개항 = 일제강점 = 쌀 수탈 = 농민 피폐 = 한(恨)의 역사'로 도식화할 수 있겠다.

군산시는 2000년대 들어 침묵의 역사로 존재해 왔던 근대 역사의 아픔을 들어내기 위해 장미동과 월명동 등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며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아픔과 그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근대문화유산도시, 군산. 3·1절을 앞두고 시린 역사의 현장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은 어떨까. 잊혀질 수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sollens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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