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 가도 못하는 푸드트럭의 운명

송지혜 기자 2015. 2. 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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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전공한 최병석씨(27)가 대기업 식품 업체에 입사하면서 마주한 현실은 무참했다. 퇴직을 앞둔 한 선배는 정년을 1년 연장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벌벌 떨었다. '내 미래도 다르지 않겠구나.' 그때부터였다. 2013년 2월, 맨땅에 헤딩하더라도 내 가게를 꾸려야겠다고 나섰다.

남의 식당을 전전하며 모은 800만원이 최씨가 손에 쥔 전부였다.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그는 회사원이 술 한잔 걸친 후 포장마차에서 일본식 라면을 먹으며 해장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 푸드트럭은 그의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적은 자본으로 창업 가능한 아이템이었다.

중고 사이트에서 2002년식 0.5t 트럭을 250만원에 구입했다. 직접 나무를 구입해 간이 테이블을 만들고, 트럭 내 가스설비를 마련했다. 한 평(3.3㎡)이 채 되지 않는 공간에 육수통, 면 삶는 통, 작업대, 냉장고까지 들여놨다. 그해 5월8일 밤 11시 서울 종각, 회사원이 지나다니는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두 달 만에 완성된 트럭 내 '주방'에 쪼그려 앉아 손님을 기다렸다. 개시 첫날, 손님은 한 명이었다. '맛은 어떠냐' '어떻게 오셨나' 손님과 '아기자기'한 대화를 나누는 건 최씨가 '라멘(일본 라면) 트럭'을 꾸리며 그린 꿈이기도 했다.

하지만 경비원에게 쫓기고, 단속에 걸리는 푸드트럭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 극동방송국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3년 5월 당시, 극동방송국 건물이 세워지던 중이라 영업을 막는 사람은 없었지만 언제 단속에 걸릴지 알 수 없는 처지였다. 단속에 대비하고 영업지를 옮겨 다니면서 SNS에 '위치 안내'를 시작했다.

단속을 피해 밤 11시께 문을 열고 새벽 5시에 마감했다. 한 그릇이던 판매량이 여섯 그릇, 열다섯 그릇으로 늘었다. 20그릇 한정 판매하던 수량을 3개월 만에 40그릇으로 늘렸다. 극동방송국 앞에 자리를 잡은 이후 그의 페이스북에는 '오늘은 조기 마감합니다' '40그릇 매진했습니다. 하늘이 도운 것 같습니다. 비 온다더니 비도 안 오고ㅠㅠ' 따위 글이 늘어났다. 그해 12월, 수량은 60그릇으로 늘었다.

장사가 잘될수록 시샘을 받았다. 근처에 있는 비슷한 업종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새벽 장사를 했지만, 불법 영업으로 신고당하는 횟수가 늘었다. 2014년 5월, 극동방송국이 완성된 이후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당인리발전소 후문과 정문, 서강초등학교 담벼락을 오갔고 그때마다 SNS에 위치를 알렸지만, 이를 본 누군가가 또 민원을 넣었다. 단속을 나오는 구청 직원이 '이러지 말고 가게를 차리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가게를 차린 건 그간 떠밀려 다닌 영향이 컸다. 지난해 8월15일, 그는 이런 글을 남겼다. '제 위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불법으로 장사하며 탈세에 위법에 주변 피해까지 끼쳐가며 제 목표와 욕심을 채우며 장사하고 있는 제가… 밑바닥이라 볼 수 있는 트럭 장사 또한 세련되고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우스운 포부를 신념으로 삼고 시작했습니다만… 많이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해 10월13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5평(16.5㎡) 남짓한 공간 '라멘 포장마차'를 마련했다. 문을 연 지 3개월째인 현재, 손님과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거나 조기 마감하는 '짜릿함'은 없지만 직원 세 명을 두고도 부산을 떨어야 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 그가 자신을 '푸드트럭의 성공 사례'로 꼽는 데 고개를 저었다. 최씨가 경험한 푸드트럭은 생계 이상의 수익을 만들 수 있는 창업이 아니다. 게다가 거듭 단속에 걸리다 보면 위축되다 아예 손을 놓게 되기도 한다.

2014년 3월20일 박근혜 대통령이 민·관 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푸드트럭 허용을 촉구하는 민원을 챙기면서, 규제 완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표 정책으로 푸드트럭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국무조정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부처는 신속하게 푸드트럭 영업을 가로막는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 지난해 10월22일, 푸드트럭 영업이 사실상 합법화됐다.

허가받은 푸드트럭이 움직이면 '영업지 이탈'

그러나 법은 현실에 적용되지 않았다.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푸드트럭 업무 매뉴얼에 따르면, 지자체나 민간 사업소에서 모집 공고를 내고 푸드트럭 영업자는 모집 공고에 따라 관련 서류를 제출해 입찰을 받는 식이다. 영업지를 확보한 푸드트럭 영업자가 시·군·구 식품위생 담당부서에서 영업신고증을 발급받는 절차를 거친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1월8일 홈페이지를 통해 '푸드트럭 영업이 가능한 전국 도시공원 목록'을 공개했다. 서울 485곳, 부산 130곳 등 전국의 도시공원 3222곳이다.

애초에 지자체나 민간 사업소에서 푸드트럭 모집 공고를 하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영업할 길이 없다. 공개된 목록 대부분이 이미 매점을 운영하고 있거나 푸드트럭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다. 어린이대공원 측은 '기존 매점이 있어서 추가로 푸드트럭을 설치할 계획이 없다'라고 밝혔다. 창덕궁 측은 '문화재보호구역 내부에는 차량 진입이 불가능하고, 밖은 종로구청 관할이라 단속 대상이 된다'라고 말했다. 국무조정실 규제혁신기획관실 관계자는 '민간 업체나 지자체에서 주변 상권, 안전 문제 등을 토대로 사업성을 검토한 후 푸드트럭 영업을 허용하겠다는 판단이다. 푸드트럭이 강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지자체가 협조적인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기존 상권과의 마찰을 이유로 푸드트럭 영업 허가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17일 국무조정실이 파악한 영업신고된 푸드트럭은 3대에 그쳤다. 그나마 2대는 현재 폐점 위기에 처해 있다.

충북 제천시 의림지에서 감자튀김 등을 판매하는 권 아무개씨는 1t과 0.5t 트럭 두 대를 개조하고 LPG 이용 검사, 위생교육 및 건강검진 등 푸드트럭 영업에 필요한 각종 허가를 받는 데 2000만원을 넘게 썼다. 겨울을 지나며 손을 놓을 정도로 급격하게 매출이 줄어들었지만, 장소를 이동해 영업할 수 없다. 기동성이 좋은 푸드트럭의 특성을 살리면 영업지를 이탈하게 돼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단속에 걸리고 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 푸드트럭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서울 신림동에서 분식 트럭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는 '푸드트럭을 합법화하면서 단속만 더 심해졌다'라고 말했다. '라멘 포장마차' 사장 최병석씨는 '오히려 합법이 된 게 우려스럽다. 정부가 전국 수만 개 푸드트럭에 대한 관리를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존 노점이나 점포와의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분란만 더 부채질하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올해 2000대의 푸드트럭이 생겨 6000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내다보았다.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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