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인생무대에서 난 어떤 DJ일까

2015. 1.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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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5일 일요일 비. DJ에게.
#142 Avicii 'Hey Brother'(2013년)

[동아일보]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DJ 아비치.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어제는 DJ인 C를 만났다. DJ란 디스크자키(disc jockey)의 약자다. 세상엔 두 가지 DJ가 있다. 서로 다른 음악을 비빔밥처럼 섞거나 이어 붙여 사람들을 춤추게 만드는 클럽 DJ. 그리고 음악을 골라 틀고 청취자를 상대로 이야기를 하는 라디오 DJ. C는 말하자면 클럽 DJ 출신의 라디오 DJ로서 DJ의 두 가지 정의를 자신의 프로그램 안에 섞어내는, DJ의 DJ다.

적잖은 나이의 그는 여전히 해외 최신 댄스음악을 발 빠르게 체득해 소화하면서 중장년층이 좋아하는 트로트도 신나게 믹스해낸다. 어제 만난 한 택시기사는 "C 덕분에 최신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까지 알게 됐다"면서 고마워했다.

최근 몇 년 새 아비치,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이상 스웨덴), 다비드 게타(프랑스), 데드마우스(Deadmau5·캐나다), 스크릴렉스(미국) 같은 이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DJ는 컴컴한 지하 클럽에서 '쿵짝'대는 음악이나 틀어대는 괴팍한 판돌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대중적인 스타로 거듭났다.

울트라뮤직페스티벌 같은 축제의 거대한 야외공연 무대에서 DJ는 헤드폰을 쓴 채 무대 가운데서 홀로 조명을 받는다. 양손 끝으로 음향기기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수만 관객의 아드레날린 분비를 조절하는 야속한 독재자다.

조명 뒤, 무대 아래에는 조그만 작업실에서 '믹스'를 위해 하얗게 밤을 새우는 그들의 외로움과 노고가 있다. C도 주말 방송을 위해 여러 음악을 듣고 섞어 방송 분량을 맞춰내는 데 일주일을 거의 통째로 할애한다고 했다.

C와 한잔 하고 귀가하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한강, 그 길게 이어진 줄기는 레코드의 홈처럼 올림픽대로 곁을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차는 음반 위 바늘같이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졌고 시속 80km 속도로 서울의 밤을 연주했다. 직선처럼 보이는 이 곡선은 언젠가 날 트랙의 끝에 데려다 줄 것이다. 운명의 무거운 닻은 지금 이 소란한 순간에도 우주의 소리가 모두 잠든 영원한 침묵의 항구를 그리고 있을 테니까.

어쩌면 인생이란 짧은 여행이 라디오 생방송이자 여러 가지 댄스음악의 믹스일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닿자 궁금해졌다. 벌건 대낮의 무대 위에서 지금껏 난 무슨 낯 뜨거운 막춤을 춰왔나. 60억 청취자 앞에서 결국 난 어떤 실없는 클로징 멘트를 전하게 될까. '죄송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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