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낯선 동네 걷기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 손에 끌려 작년 가을부터 주말에 걷는 모임에 참가했다. 시간이 잘 맞지 않아 비록 몇 번 하지는 못했어도 어릴 적 친구 네 명이 주말 오후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서너 시간 동안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이 모임을 주도한 친구는 주말이 아니라도 매일 두세 시간은 걷는다고 한다. 재계에서 알아주는 큰 중견업체를 경영하는 성공한 경영자인 이 친구는 낮에도 회사의 중역이나 직원들과 함께 한두 시간을 걸으면서 회사 얘기와 개인적인 얘기 등을 나눈다고 한다. 그러면 회사 내 사무실에 앉아서 딱딱하게 보고받는 것보다 훨씬 소통도 잘 되고 실제 업무 실적도 올라가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우리 넷이 걷기 위해서 만나는 곳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이번에는 연희동, 다음은 성북동 하는 식으로 마음 가는 대로 정해 걷는 식이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후에 생전 처음 가 보는 낯선 동네 주택가의 조용한 뒷골목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한 여유로움, 동네 어귀에 살그머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작은 상점과 옷 가게들이 주는 따뜻한 정겨움, 좋은 친구들과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걷는 행복함이 어우러지는 멋진 시간이다. 그리고 이 걷기 모임은 동네 골목에 있는 작은 국숫집에서 따뜻한 국수 한 그릇 하면서 뻐근해진 다리를 푸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몇 시간 동안 걸으면서 옛날 얘기도 하고 서로의 얘기도 들어주면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풀려서 정신 건강에 그만이다. 게다가 이렇게 걷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이 몸에 좋다.

걷기는 생활 속에서 가장 쉽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이다. 대략 1주일에 5일, 하루 30분씩 분당 100보 정도 걷는 중간 강도의 운동을 하면 평균 수명이 3년 이상 연장되는 확실한 운동효과가 생긴다. 중간 강도는 걸으면서 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고 노래하기에는 숨이 찬 정도이다. 또 70㎏인 성인이 1시간을 보통 속도로 걸으면 250kcal가 소모되니 세 시간쯤 걸으면 하루 한 끼 분의 칼로리는 태워버리는 효과가 나온다. 나이 들면서 생기는 골다공증이나 관절 계통의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고, 야외에서 걸으면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만 근무하는 회사원들에게 흔히 부족한 비타민D도 보충할 수 있다.

올해는 시간이 되는대로 더 열심히 걸어야겠다. 걷는 만큼 몸과 마음의 찌꺼기가 사라진다. “친구야, 다음엔 어느 동네를 걸을까?”

송재훈 < 삼성서울병원 원장 smc.song@sams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