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친절한 TV가이드] '응답하라 1988'..미리보는 그때 그 시절

2015. 1. 2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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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에 빠진 TV를 구하라'

TV 속 위기에 당면한 출연진 혹은 프로그램을 향해 유쾌하면서도 현실적인 해결법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그에 따른 결과는 책임질 수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편집자 주>

[MBN스타 금빛나 기자] 1월11일,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좋아하던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1997년도와 1994년도에 이어 더 과거로 돌아간 '응답하라 1988'이 제작준비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은 온라인을 빠르게 움직였고, 이를 접한 여론은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도였으면 좋았을 텐데" "1988년도면 내가 태어났던 시기인데,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다" "1988년이면 당연 서울올림픽이지" 등의 다양한 의견으로 뜨거운 관심을 표했다.

이에 대해 CJ E&M은 "아직 확정된 바 없으며 '응답하라 1988'은 논의 중인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라며 "아직 여러 방안을 놓고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 아직 결정한 것이 없다.'응답하라 1998' 제작이 가시화 됐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중은 '응답하라'가 제작을 기획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열광하고 있다. 1988년도라는 숫자에 대중은 우려와 기대를 한꺼번에 표하고 있다. 이른바 '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 성시원(정은지 분)의 부모까지는 못 되도 이모세대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1988년도 고등학교와 대학교 문화를 누렸던 그 시대의 청춘(靑春)들은 어느덧 마흔을 넘어들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가 이 시대의 청춘을 논할 만큼 시간이 흘러버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1988년의 문화를 다룬다면 이를 기억하고 공감하는 세대의 연령대는 훌쩍 올라가 버린다. 1988년생들이 현재 28살이 된 만큼, '응답하라 1988'이 이뤄진다면 부모 세대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몰랐던 부모님들의 문화와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다.

'응답하라1997'이 H.O.T와 젝스키스와 양분됐던 팬덤문화와 2000년대로 넘어갈 무렵을, '응답하라 1994'는 그 당시 뜨거운 인기를 끌었던 농구대잔치와 하숙문화를 다루며 신드롬과 같은 사랑을 받았다. 1988년은 대한민국에 있어 '88 서울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이벤트가 펼쳐졌던 해였다. 복고열풍의 주역이 된 '응답하라' 시리즈, '응답하라 1988'이 만들어 진다면 어떤 내용들이 다뤄질까.

◇ 홍콩 느와르 영화의 전성시대

"매케한 최루탄 냄새가 학교 전체를 일 년 내내 뒤엎던 시절, 홍콩 느와르 영화를 보며 로망을 꿈꿨던 시기가 있었죠."

불어로 '검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느와르는 80년대 대한민국영화계를 강타했다. 홍콩 느와르영화의 인기를 선도한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1986)은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인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당시 '영웅본색'의 주인공이었던 주윤발을 따라 트렌치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쓴 뒤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다녀 본 적이 없는 남자들이 없을 정도였다.

이 같은 홍콩영화의 인기는 이듬해 개봉한 '천녀유혼'(1987)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청순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겸비한 귀신 왕조현은 80년대 청춘들의 최고 워너비이자 이상형이었으며,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가지 했다.

'영웅본색'과 '천녀유혼' 두 작품 모두 출연하면서 한국이 사랑하는 배우가 된 장국영은 '영운본색2'에도 출연하며 인기의 정점을 찍기에 이른다. 피를 흘리며 전화부스에서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막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붙여주는 장면은 아직도 회자되는 명장면 중 하나. 이후 장국영은 이선희와 함께 'J에게'를 열창하고 초콜렛 광고를 찍는 등 뭇 여성들의 심장을 설레게 하기도 했다.

◇ 호돌이와 굴렁쇠 소년의 추억…88 서울올림픽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1988는 매우 중요한 해이다. 바로 세계 최고(最古)이자 최대의 국제스포츠 행사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된 것이다.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16일간에 걸쳐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주요도시에서 개최된 '88서울올림픽'은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가장 잘 상징하는 행사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88서울올림픽'은 16년 만에 동서양 진영 선수단이 모두 참가하여 동서의 이념분쟁·인종차별로 인한 갈등과 불화를 해소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12년 만에 IOC 회원국 중 대부분인 160개국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올림픽이었던 '88서울올림픽'은 '최다의 참가'를 통한 '최상의 화합'을 실증한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비록 운영이 미숙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올림픽 사상 최고의 시설을 갖추었다는 극찬을 들기도 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88서울올림픽'의 공식 주제곡이었던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는 현재까지도 불릴 정도로 큰 인기fmf 끌었다. 대회 마스코트인 상모를 쓴 아기 호랑이 호돌와 개회식 당시 출연한 ′굴렁쇠 소년′도 빼 놓을 수 없는 요소.

'88서울올림픽'의 개최국은 한국은 종합 4위를 차지했하며 스포츠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 투쟁하는 청춘들

"내가 기억하는 1988년은 데모와 최루탄뿐이었다"(온라인 게시판)

많은 이벤트와 행사 문화를 담고 있는 1988년도이지만, 사실 빼 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한 가지 바로 '투쟁하는 청춘들'이다. 1988년도 대학가를 기억하는 이들은 "1988년을 기억하는 냄새는 바로 최루탄"이라고 말할 정도로 잘못된 사회에 통감하며 그 시대 지성이라고 불리던 학생들은 거리로 나서며 항쟁을 나섰었다.

1979년 10월 부마사태로 박정희정권이 몰락한 뒤 권력의 공백과정에서 등장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세력은 집권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을 불러일으켰다. 전두환정권이 수립된 뒤 몇 년간 학생운동은 소강상태로 있다가 1985년 2월 총선거를 전후하여 활성화되어 갔다.

1980년대의 학생운동은 이전 시기의 학생운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기반과 대중적 지향을 보였다. 이 시기 학생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숫자가 수십만 명에 이르렀던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학생운동은 신군부의 전반적인 탄압으로 잠복되어 있던 노동운동의 활성화와 함께 노동자학생연대투쟁으로 전개되어 갔다.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화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출판문화계에도 이러한 운동이 퍼져 나갔다.

1986년 말부터 시작된 개헌논쟁과 인권탄압 사례가 폭로되면서 학생운동은 열기를 더해 갔고, 1987년 급기야 '6·10평화대행진'이라는 국민적 저항운동을 주도하여 정부·여당으로 하여금 6·29선언의 형태로 국민적 의사를 수용하게 하였다. 그 뒤 대통령직선제를 비롯한 제반 민주화조치가 취해지고, 1988년 국민 직선에 의한 제6공화정이 시작됐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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