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있는 그대로의 세상vs원하는 세상

이병관 문화레저부장 2015. 1.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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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뮤지컬 '킹키부츠'를 봤다. 부도 위기에 처한 구두 공장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한 젊은이가 틈새시장인 게이용 부츠를 만들어 성공한다는 얘기다. 성공 가도에는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 갈등에 이은 공감·화합의 장면들이 펼쳐진다. 화해로 가는 전기는 주위의 따돌림에 시달리는 게이 롤라가 마초남 돈에게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부탁하는 대목이다.

있는 그대로 봐달라. 다시 말하면 실체적이고 온전한 진실을 봐달라는 말이다. 우리가 곡해받을 때 일상에서 후렴구처럼 하는 말이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얼마나 실행하기 힘든 말인가.

각자의 성장 환경, 경험에 기반해 세계관·가치관이 정해지고 서로 다른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인데 어떻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까. 동성애가 옳고 그름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동성애처럼 비교적 낯선 것이면 좀 덜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기존에 주입된 선입견은 없으니까 말이다.

각자 편견 가지고 세상 바라봐

하지만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 쟁점이 되는 사안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여기다 자기 합리화와 편견까지 더해지면. 천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국제시장'을 놓고 벌어지는 이념 논쟁은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근대화를 이루는 도정에서 고생한 부모님 세대를 다룬 영화다. 힘겨웠던 그때 그 시절에 남녀노소가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다. 윤제균 감독은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으며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했다.

하지만 진보세력 일각에서 산업화의 당위성만 부각됐다, 역사에 대한 반성이 없다며 정치적 덧칠을 하면서 이념 논쟁이 촉발됐다. 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이 있고 이에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1960년대 반전·민권 등 미국 운동권 학생들의 영웅이었던 사회개혁가 솔 알린스키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머릿속 세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상으로 들어서 잘못된 생각들을 하나씩 버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원하는 세상'을 강조하는 것은 100% 천사가 있고 그 반대편에는 100% 악마가 있다는 식의 대결과 투쟁·혁명의 시대에 유효했던 전략이다. 자기 진영을 결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해와 공감·통합의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단정과 통념을 벗어던지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봐야 한다.

알린스키는 인간이 '원하는 세상'만 보려고 하는 것에 대해 "사물의 양면성을 분리해 파악하는 인습적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빛과 어둠, 양과 음 등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상대 개념의 짝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데 외골수적 접근만 한다는 얘기다. 우파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고생한 '국제시장' 세대가 있다면 또 다른 한 편에 젊은이의 애환을 담고 있는 '미생' 세대가 있다. 저성장·양극화로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다. 희망이 없다 보니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이른바 '3포 세대'다. 이런 터에 옛 세대들이 "나도 옛날에 맨주먹으로 시작했으니 너희도 희망을 가져라"라고 말하는 것도 '원하는 세상'만 바라보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청년 실업률은 날이 갈수록 치솟고 그나마 찾는 일자리도 비정규직이 상당수다. 노동·교육 등 사회 전반의 구조 개혁과 함께 소외층과 같이 가겠다는 공감 정책이 절실하다.

진실 보려면 다른 시각까지 고려를

현 정부가 경제 '대박'으로까지 표현하며 강조하는 남북 경제교류도 선제적 북한 핵 폐기라는 '원하는 세상'에 발목 잡혀 공언(空言)에 그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북한 핵의 존재, 미국의 대북 제재 강화와 이에 맞서는 북중·북러 협력 가속화 등 신냉전 재현의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직시하고 보다 유연하고 주동적인 대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기가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타인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오가야 다른 시각이 보이고 그래야 온전한 진실을 볼 수 있다. 사회 경제 구조 개혁을 통해 성장도 하고 남북 교류도 하려면 사회가 분열돼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서로의 관점을 존중하며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들어가는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병관 문화레저부장 yh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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