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철학] 손톱깎이 - 용모단정 이상

입력 2015. 1. 16. 16:15 수정 2015. 1. 1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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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집에 하나씩은 있으나 공포영화의 감독들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 사물이 있다면 무엇일까? 바로 '손톱깎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귀신'과 '마녀'의 필수조건은 손톱이 긴 것이다. 손가락 길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손톱 길이는 문제가 된다. 세계 공통의 아이들 귀신놀이는 두 손을 얼굴 주위에 들고 상대 아이를 놀라게 하는 흉내 내기다. 이때 아이가 치켜들고 있는 것은 두 손이 아니라 실은 열 손가락 위에 길게 솟아났다고 가정하는 '손톱'이다. 공포영화를 찍는 감독들이 손톱깎이를 좋아할 리 없지 않겠는가.

손톱은 손가락의 일부지만, 말랑한 피부 표면을 덮고 있고 그 위에 돌출하여 자라나는 뼈 같다는 점에서 손가락과 분리된 듯한 신체 부위다. 살도 뼈도 아니고, 살과 뼈의 중간에 속하는 어떤 것도 같다. 잠깐만 방심하면 몰라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자라나 있다는 점에서 생장점이 집중되어 있고 표면화되어 있는 기이한 신체 부위다.

그래서인가. 한국의 민담 금기에는 밤에 손톱을 깎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밤에 깎은 손톱을 쥐가 주워 먹으면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나 손톱을 습관적으로 물어뜯는 아이들이 있는데, 어른들은 그걸 '재수없다'고 혼낸다. 현대인들은 잊고 있지만, 이것은 위생상의 문제가 아니라 손톱에 대한 원시적 금기의식이 맞물려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실시했던 초·중등학교의 용모검사에서는 손을 내밀고 손톱 길이를 선생님에게 검사받는 게 일이었다. 왜 문명은 신체 일부인 손톱 자르는 일을 '용모단정'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일까.

발을 가진 모든 짐승이 손톱(발톱)을 가지고 있으나, 손톱을 지속적으로 잘라내고 다듬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 손톱깎이는 귀신과 산 사람의 차이를 드러내려는 사물인 동시에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려는 도구다. 이 작은 사물은 '사람' 내부에 포개져 있고, 한순간만 방심하면 솟아나오는 '짐승성'과 '귀신'을 환기한다. 이 사물은 문화-문명이라는 이름의 '사람다움'이 저절로 생기거나 확고부동한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부단히 관리하고 제어해야 하는 동사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은 아닌가.

[함돈균 문학평론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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