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아랍에서 바라본 프랑스 테러

정규진 기자 입력 2015. 1. 15. 09:33 수정 2015. 1. 1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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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만평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 여파가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세계 각국의 지도자를 포함해 적어도 3백만 명이 추모 행진을 벌였다는 소식을 아랍권 언론도 주요뉴스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슬람과 아랍권 모두 한 목소리로 이번 테러를 규탄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슬람의 창시자이자 예언자인 무함마드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하고 비하하는 만평에 마음 편한 무슬림은 없어 보입니다. (이슬람에선 무함마드를 포함한 모든 선지자. 심지어 사람형상을 그리거나 동상으로 제작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막기 위해섭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불만을 총과 표적 살해로 표출하는 행위는 '용서와 관용'을 중요시하는 이슬람에서조차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극단주의자'의 만행으로 단정짓고 있습니다.

▲레바논 카툰 -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대한 우리의 보복'이라는 제목

이번 테러범들이 알카에다와 IS와 연계된 부분은 워낙 많은 언론에서 다루고 있으니 저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번 테러에 관한 이런 저런 뉴스들을 접하면서 느낀 궁금증과 우려만 다루겠습니다. 미 뉴스전문채널 CNN은 파리에서 벌어진 추모 행진을 전후해 'World stand with France against Terror' 자막을 걸고 프랑스 테러소식을 거의 하루 종일 다루고 있습니다. 좋은 제목입니다. '세계가 테러에 대항해 프랑스와 함께 하다' 라고 해석하면 될 듯한데요. 이 제목에는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서방' 언론의 시각이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자유와 관용의 나라 프랑스가 이슬람 극단세력에게 테러를 당했다. 그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가 힘을 합쳤다. '자유의 나라 프랑스' '프랑스 대 테러조직', '테러조직 대 세계' '테러조직은 IS와 알카에다' 결국 '자유세계 대 IS.알카에다'라는 이런 3단 논법인데….. 뭔가 근본적인 원인은 얼렁뚱땅 은근슬쩍 흘려버리고 넘어가는 듯 개운치 않은 느낌이 계속 남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레바논의 아마르 모흐센이라는 유명 칼럼니스트가 제가 가지고 있는 의문을 한마디로 대신 표현했더군요.

'파리에서 프랑스인이 프랑스인을 공격했다.' 이 칼럼니스트는 이번 테러범들은 IS.알카에다로부터 살인 지령을 받았다는 사실 전에 이들이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프랑스에서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자국인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지경까지 왔는지에 대한 프랑스의 자성적 고찰이 필요하다는 걸 지적합니다. 프랑스에는 많은 무슬림이 살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의 11%가 무슬림 이주자 출신이고 8%인 5백만명이 넘는 이들이 이슬람을 믿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이민자와 이민자 2세 3세들입니다.(프랑스가 알제리.모로코 등을 식민 통치한 탓이 크겠죠.)

이렇게 무슬림이 많은 프랑스지만 '자유. 평등. 박애'를 주창한 혁명의 나라답지 않게 식민지 출신 무슬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유럽에서 손꼽을 수준입니다. 여성 차별을 명목으로 학교에서 히잡을 못쓰게 하더니 신원확인을 이유로 얼굴을 가리는 부르카를 강제로 벗기고 이제는 아예 베일 착용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이슬람 여성에겐 종교적 자유를 박탈한 것과 마찬가집니다. 극우주의자들의 무슬림이나 이슬람 사원에 대한 공격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극우성향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장관시절부터 이런 북아프리카계 이주자에 대한 사회적 고립에 한 몫을 해왔습니다.(사르코지도 이민자 2세더군요.). "이민자 정체성을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정작 프랑스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는 소홀히 했다"라고 단언할 정도로 불법이민자에 대해 강제 추방 등 강경정책을 일관했고 무관용 원칙으로 빈민가에서 벌어진 각종 소요 사태를 강경진압으로 대응했습니다. 2005년 빈민가에서 한 소년이 심문에 불응해 도주하다 사살된 일로 촉발된 아랍인들의 소요사태에 대한 대응이 대표적인 옙니다.

이렇다 보니 프랑스에서 이슬람계 이름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취업과정에서 불이익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돕니다. 프랑스 대졸자의 실업률이 5%에 불과한 반면 북아프리카계 이주자 출신 대졸자의 실업률은 25%에 달하는 현실적 수치가 이를 뒷받침하죠. (이웃나라 영국에선 북아프리카계 출신의 취업률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소식과 대조적입니다.) 이런 차별 속에 북아프리카계 무슬림 이주자들은 파리 주변의 빈민가를 형성하게 됐고 이른바 '2등 시민'으로 살게 되면서 사회적 박탈감과 열등감이 이 자신도 모르게 몸에 스며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층민을 형성하는 프랑스 무슬림은 이슬람 극단주의가 자라는 토양이 되는 겁니다. 현실에서 겪은 좌절과 절망으로 빈 내재적 공간에 비뚤어진 종교적 사명감을 채우면서 글로벌 지하디스트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실직과 무직, 경제난으로 곤궁한 삶에 지친 이들에게 '이슬람적 종말론'에 심취한 칼리프시대의 힘있는 이슬람 제국 건설은 새로운 희망과 삶의 동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감옥의 수감자중 70%가 무슬림이고 이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수감생활도중 만나면서 지하디스트로 변모해 출감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만약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서방국가들이 이번 사건을 이슬람 극단세력이 자유세계에 던진 도전과 위협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아마 제 2. 제 3의 샤를리 에브도 사건은 앞으로도 반복될 게 뻔합니다. 프랑스 스스로도 테러 조직으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침해 받은 피해자라고만 생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피해자인 동시에 끔찍한 비극의 원인 제공자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됩니다. 그 동안 자신들이 무슬림 이민자들을 어떻게 방조했고 또 앞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어떻게 자국내 무슬림을 포용하고 융화시킬 지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한 땝니다.

이슬람 아랍권의 언론이 이번 사건을 통해 우려하는 또 한 가지는 유럽의 극우주의자들이 이번 사건을 무슬림 대 유럽인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가려는 현상입니다. 모로코의 칼럼니스트 하미드 지드는 "이번 살인극은 프랑스의 극우주의자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선물일 것이다. 테러범들은 언론인만 죽인 게 아니라 프랑스에 사는 수백만 명의 무슬림을 죽인 것과 다름없다. 그들은 이슬람의 이미지에 살인이란 포장을 입혔고 전세계 무슬림의 심장에 칼을 꽂았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려대롭니다. 프랑스내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은 이번 사건을 반이민정책을 밀어 부치는 동시에 극우세력을 확대하는 더 없이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슬람 혐오증을 유발시키는 소설이 이번 테러를 통해 프랑스에서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독일에선 반 이민정책과 반 이슬람을 주장하는 시위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초기엔 9백명 가량에서 시작된 극우주의 시위는 이제 수만 명이 운집하는 시민운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테러범이 유대인 식품점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유대인을 살해하면서 이스라엘 역시 극우파가 더욱 힘을 얻게 됐습니다. '유대인 기본법' 제정을 놓고 의회해산까지 가면서 궁지에 몰렸던 우파성향의 네타냐후 총리는 다가오는 3월 의회선거에서 재집권을 노립니다. 지금까지는 중도파가 우세할 것으로 점쳐졌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우파계열이 더 힘을 얻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합니다. 프랑스 테러 이후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유대인들을 언제나 환영하겠다는 네타냐후의 발언엔 그런 속내가 담겨 있을 겁니다.

위기의 시절이면 언제나 극단적인 세력이 힘을 얻게 됩니다. 위기에 봉착할 때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인간의 본성을 파고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극단 현상은 늘 양방향으로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극우세력이 득세하면 그 반대로는 이슬람 극단주의도 자연스럽게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먼저 살아야 한다'에서 배제된 이들은 그 반대편에서 또 다른 '우리'를 만들어내기 마련이죠. 극단과 극단의 대립은 더욱 사회를 어지럽고 혼란으로 몰고 가게 마련입니다. '내가 샤를리다'라는 폭력에 굴하지 않는 자유정신을 외치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한 번쯤 '왜?' 프랑스에서 프랑스인이 프랑스인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는지 한번쯤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정규진 기자 socc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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