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무서워서 제보하겠나

2015. 1. 1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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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이슈추적] 검찰, <세계일보> 기자가 제보자 밝히지 않자 통화내역 뒤지고 위치추적 한 뒤'추정'하고 압박…

"취재원이 보호되지 않는다는 것을 검찰이 공개적으로 '증명'함으로써 잠재적 취재원들도 침묵하게 하는 효과를 얻었다"

"세계일보에 보도된 청와대 문건은 최모 경위가 유출한 것으로 판단됨."

'정윤회 국정개입 보고서'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팀은 1월5일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렇게 밝혔다. "판단"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세계일보>가 청와대 문건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최 경위가 그 문건을 유출했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검찰은 왜 이렇게 결론을 내렸을까.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했음에도 내린 결론

<세계일보>는 2014년 11월28일치 1면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정윤회) 동향' 감찰 보고서를 인용해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즉각 "감찰이 아니라 동향 보고서"라며 "시중에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라고 밝혔다. 어쨌든 청와대가 작성한 문건임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 기사에 대해 이재만(48)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8명은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해당 기사를 쓴 조현일 기자 등을 고소한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세계일보>를 공격했다.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다."(12월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조금만 확인해보면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나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12월7일 새누리당 지도부 오찬)

검찰의 칼날은 조 기자와 청와대 문건을 제보한 '취재원'으로 향했다. 조 기자는 검찰에 세 차례 출석했지만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검찰은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위치추적 자료 등을 마구 뒤졌다. "(청와대 전 행정관) 박관천(48)과 조 기자는 2014년 4~11월 351회 통화. (청와대 전 공직기강비서관)조응천(53)과 조 기자가 2014년 6~11월 12회 통화 및 문자 교환." "2014년 11월28일 정윤회 문건 보도 관련 박관천과 조 기자 간의 문자메시지를 보면 조 기자가 보도 직전 박관천과 상의한 정황 발견."

검찰은 또 조 기자가 5월8일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취재원을 만났다고 '추정'했다. 그날 저녁 6시40분부터 새벽 1시까지 조 기자와 기지국 동선이 일치한 사람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정보분실 최아무개(45) 경위였다. 최 경위는 조 기자와 수년간 친분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 1년간 두 사람은 550차례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퍼즐 조각을 끼워맞춘 검찰은 최 경위를 취재원으로 지목했다. 최 경위는 12월10일 체포돼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영장을 기각했다. 최 경위는 검찰 수사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도 '정윤회 동향' 문건 유출은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론은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최 경위를 "청와대 문건 유출의 장본인"으로 보도했다.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는 실정법 위반"

지난해 12월13일 최 경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노트 14장 분량의 유서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나를 유출자로 지목해 보도한 언론사가 원망스럽다. (나는) 전해들은 이야기를 기자들에게 했을 뿐 문서를 유출한 적이 없다.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다."

조 기자가 문건 입수 경로를 밝히지 않고 검찰이 지목한 취재원이 혐의를 부인하며 자살했는데도 검찰은 애초에 그린 '문건 유출 경로'(박관천 경정→정보1분실 경찰관→<세계일보>)를 밀어붙였다. 검찰 관계자는 "유출 과정에 제3자가 개입했을 가능성은 없다. 그런 시나리오는 책임을 피하려는 사건 당사자들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스스로 속은 결과"라고 했다.

조 기자는 <한겨레21>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검찰의 수사 결과에 대해 "유감"이라고 했다. 검찰이 지목한 취재원이 청와대 문건을 제보했다는 직접적 증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위치추적 등을 토대로 조 기자와 친분이 있던 경찰을 검찰이 취재원으로 '추정'(판단)했을 뿐이다. 특히 조 기자는 개인정보를 검찰이 언론에 공개한 것은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는 실정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언론 취재에 응한 것이라고 해명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모순이다. <세계일보> 취재에 응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취재원을 재판에 넘긴 것 아닌가.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조 기자의 사법 처리 여부는 아직 결론 나지 않았다. "보도한 문건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에 대한 조사는 (허위로) 마무리됐지만 해당 문건이 진실하다고 믿고 보도할 만한 상당성이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형법상 보도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사를 작성했을 경우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검찰에 출입하는 한 기자의 말이다. "청와대 문서를 보도했기 때문에 검찰이 기소를 망설이는 것으로 보인다. 기사를 검증할 책임이 기자에게 있지만 정부의 공식 문서라는 점을 확인하면 그 신빙성은 상당히 높아진다. 오히려 공식 문건을 언론이 보도했다고 청와대 비서관들이 기자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해 언론의 자유를 상당히 위축시키고 있다." 그는 또 "취재원이 보호되지 않는다는 것을 검찰이 공개적으로 '증명'함으로써 잠재적 취재원들도 침묵하게 하는 효과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허윤 변호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언론사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맡아보면 권력자들은 기사를 제보한 취재원을 밝혀내는 데 목적이 있다. '제보자'를 발본색원해야 제2의, 제3의 제보자가 생기기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이번 수사로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에는 청와대 내부 문제를 제보하는 취재원은 없을 것이다."

직업윤리로만 존재하는 취재원 묵비권

미국·독일 등 언론의 자유가 발달한 국가에는 취재원 보호법이 있다. 미국은 건국 초기인 1896년 메릴랜드주에서 방패법(Shield law)을 처음 제정해 현재 35개 주에서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연방형사소송법과 민사소송법에 기자의 증언거부권을 명문화했다. 일본은 취재원 보호가 법률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2006년 10월 최고재판소가 <nhk> 기자에게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법정 증언을 거부한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우리나라에는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 1980년 12월에 제정된 언론기본법에 취재원 묵비권 조항(언론인은 제보자 신원에 대해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이 있었지만 1987년 이 법이 폐지되면서 사라졌다. 다만 직업윤리로 남아 있다. 신문윤리실천강령을 보면 "기자가 취재원의 신원 비보도 요청에 동의한 경우 이를 보도해서는 안 된다"(제4항), "기자는 취재원의 안전이 위태롭거나 부당한 불이익을 받을 위험이 있는 경우 그 신원을 밝혀서는 안 된다"(제5항)고 규정돼 있다. 조 기자는 "취재원 보호 원칙을 깨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형사처벌도 감수할 작정이다"라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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