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핫이슈

[인터뷰]이지훈 “실제 상남자, 게이 역할 부담스러웠지만”

입력 : 
2015-01-12 11:06:41
수정 : 
2015-01-12 12:46:39

글자크기 설정

“규현, 볼수록 진국…무대에 대한 진심 느껴져”
사진설명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혹독한 연습 탓에 무대에 오르기 전, 항상 지치고 진이 빠지고…심지어 (무대에)오르기 싫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계단을 밟는 순간 ‘얼마나 바보 같은 어리광이었나!’를 깨닫게 되죠. 관객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엄청난 행복이 시작되거든요. 공연 내내 주고받는 살아있는 에너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 있어요. 제가 영원히 무대에 서고 싶은 이유입니다.” 연예계 데뷔 19년차, 그리고 뮤지컬 무대는 8년이다. ‘아이돌 1세대’ ‘섹시 입술’ ‘꽃미남’ 등 많은 수식어를 지닌 그가 어느 때부턴가 이 꼬리표를 전부 떼버렸다. 고연령의 ‘베테랑’ 뮤지컬 배우들은 더러 그가 본래 뮤지컬 배우인 줄 착각하기도 하다. 그만큼 그의 태도, 생각, 열정, 계획 등 모든 건 무대로 향해 있다.

최근 ‘라카지’의 새로운 ‘앨빈’, 이지훈을 만났다. ‘앨빈’은 평소 히스테릭한 성격 탓에 주변을 긴장하게 만들긴 하지만, 폭발적이고 감성적인 가창력으로 공연마다 기립 박수를 이끌어 내는 전설의 클럽 ‘라카지오폴’의 스타다. 카리스마와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모두에게 존경 받는 클럽의 주인 조지의 아내이기도 하다.

‘앨빈’에 대한 첫인상을 묻자, 그가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사실 처음 제의를 받고 부담감 때문에 거절했어요. 남성적인 성향이 강한 내가 여성을, 그것도 모성애 가득한 엄마를 연기한다는 게 솔직히 자신 없더라고요”라고 답했다.

금실 좋은 게이 부부인 앨빈과 조지. 두 사람이 정성을 다해 키워온 아들 장미셀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결혼을 선언하며 집안은 발칵 뒤집어놓는다. 더군다나 예비 장인은 게이의 존재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극보수주의 정치인. 장미셀은 그런 장인에게 자신의 집안 환경을 알리지 않기 위해 엄마 앨빈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한다. 사회적인 통념 아래 하루 아침에 아들로부터 버림받게 된 앨빈. ‘라카지’는 성소수자들을 향한 무조건 적인 선입견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동시에,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경쾌하지만 진솔하게 이야기 한다.

“본래 성격 자체가 굉장히 남성적인 편이라, 여자의 심리‧행동을 구현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게다가 엄마라니요. 전작 ‘프리실라’에서도 여장을 하긴 했지만 남성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죠. 결국, 이지나 연출님의 무한 지지아래 도전을 결심했어요. 워낙 좋은 작품, 배우들이 있어 하면서 저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에요. 역시 잘했다는 생각 뿐이에요.”

사진설명
현재 이지훈과 함께 ‘앨빈’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는 정성화 그리고 김다현이다. 그는 “두 사람 모두 100회를 넘게 앨빈을 연기해 온 분들”이라며 “이미 완벽할 만큼 뚜렷한 색깔을 내는 두 배우 사이에 내가 어떤 새로운 색깔로 승부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결국 연습뿐이죠 뭐, 하하! 그 어떤 때보다 제 모든 시간을 공연에 할애한 것 같아요. 사실 어린 시절에는 아이돌 출신의, 바쁜 연예인의(?) 어떤 태도를 버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드라마든 방송이든 다른 것들과 병행하다보니 적응 속도가 더디었죠. 어느 순간 ‘이렇게 하면 스스로에게 손해구나. 무대라는 건 결국 노력의 정도에 따라 보상이 돌아오는구나’를 실감했어요.”

사실 그에게 찾아온 뮤지컬 배우 인생의 전환점은 이지나 연출의 영향이 컸다. 그는 이 연출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그냥, 눈엣가시죠”라고 웃으며 운을 뗐다.

“지난 2011년, 뮤지컬 ‘에비타’를 통해 이지나 선생님을 만났어요. 정말 욕도 많이 먹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죠. ‘네가 이걸 왜 하니?’, ‘얼굴만 믿고 여기 온 것 아니냐’, ‘여태껏 어떻게 버텨왔니?’, ‘섹시한 부분이 어쩜 한 군데도 없다’ 등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지적을 받았던 것 같아요. 솔직히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냥 저는 눈엣가시였거든요. 그런데 그 모든 걸 버텨니고 보니 연출님의 의도가 점점 뭔지 알겠더라고요. 막이 오르고 프리뷰 공연에서 연출님이 두 주인공을 두고도 저를 향해 ‘앞으로 주목해야 할 배우’라고 애정 어린 소개를 해주실 때, 깊은 마음의 울림이 있었어요. 그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나에 대해, 무대에 대한 많은 것들이 변화를 맞은 것 같아요. 이지나 연출은 보는 눈이 정확한 분이에요. 배우가 잘 할 수 있는 것의 최선을 뽑아내주시고, 못하는 부분은 보완해주죠. 저에겐 은인 같은 분입니다.”

부족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후배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는 “재능 많은 아이돌 후배들이 참 많은데, 결국 나처럼 느끼는 날이 올 것”이라며 “지금은 시간도 없고 가만있어도 기회가 넘쳐 모르겠지만 언젠가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았을 때,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런 면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후배는 슈퍼주니어 규현이에요. 공연을 볼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이 뿌듯하더라고요. 앞서 ‘삼총사’를 함께 공연했는데 어린 나이에도 생각이 참 깊은 친구였어요. 떠밀려서, 그냥 한 번이 아니라 본인이 정말 원해서 무대에 오르는 진심과 열정이 있었어요. 이런 자발적인 애정이 있는 친구는 분명 뭔가 다르거든요. 저는 미처 그 시절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이 친구는 일찌감치 느끼고 있다는 게 기특하고 또 부럽죠.”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무대와 깊은 사랑에 빠진 듯 했다. 그만큼 욕심도 커졌다. 매번 더 완성도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그.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는 그의 눈에서 신인 배우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강렬한 반짝임이 보였다.

“항상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 우리만의 대화를 나눈다는 것. 나의 노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함께 호흡하고 교감하는 이들이 있다는 건 늘 가슴 벅찬 일이에요. 때론 망설여지고, 두렵고 또 부담스럽지만 다시 힘든 도전을 결심하는 건 이분들 때문입니다. 여시나 무대는 힘들수록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그 마력에 아주 오랜기간 빠져 살고 싶습니다.”

한편, 이지훈이 현재 출연 중인 뮤지컬 ‘라카지’는 오는 3월 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kiki2022@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