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몇 살입니까?"

입력 2015. 1. 12. 10:49 수정 2015. 1. 1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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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때는 개월 수를 따지다 학교 들어갈 나이쯤부터는 한국 나이를 세고, 환갑이 되면 또다시 만 나이로 살아온 기간을 따지는 한국만의 복잡한 나이 계산법.

태어나자 마자 한 살 먹고 해 바뀌면 또 한 살 얹는 식의 계산법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미 50여년 전에 없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적으로는 모두 만 나이를 기준으로 하게 되어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한국식 나이를 따릅니다.

나조차 헷갈리고 왜 이렇게 수십 년 고집해왔는지도 모르는 한국식 나이 계산법, 그 속사정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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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는 몇 개 필요하세요?) 서른 두 개.(서른 두 개요?)

서른..서른 한 개..일단 서른 두 개 주세요.

초를 60개 (6개요?) 큰 거 6개 (큰 거 6개 챙겨드릴게요)

59세니까 작은 것도 9개 주세요. (작은 거 9개 챙겨드려요?)

또 헷갈립니다.

친구의 나이를 한국 나이로 해야 할 지 만 나이로 해야 할 지, 어머니가 올해 예순인 지 쉰 아홉인지, 그래서 일단 하나 더 받아놓기 마련입니다.

◀김미화▶

일단은 하나 더 많이 가져가서 친구 의사를 물어보고 꽂으려고 32개를 받아왔어요.

제과점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풍경입니다.

◀임수연/제과점 점장▶

핸드폰으로 바로 검색을 해서 몇 년생을 찾아서 봐드리거나 아니면 년생대로 나이를 쭉 뽑아서 붙여놓고 그걸 보고 드리기도 해요.

이같은 혼동은 태어나서 첫 생일인 돌잔치부터 시작됩니다.

작년 1월에 태어난 규원이는 해가 바뀌면서 올해 두 살이 됐지만 케익에는 초가 하나만 꽂혔습니다.

◀김병국▶

한국식 나이는 의미적으로 생각을 하고 실제적인 나이는 한 살이 맞다고 생각을 하고 고민을 안 해봤던 거 같아요.

실제로 살아온 시간을 반영한 '만 나이'는 찬찬히 따져보지 않으면 바로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문소라 / 박현아▶

20살이요. (한국 나이로 20살?)

만 20살. 만 20살? 한국 나이로 21살 아니에요?

(헷갈리세요?) 네 헷갈려요..

◀최은정 / 안현정▶

((만나이) 언제쓰는 거 같으세요?)

30대 되면, 30살 되는 해에 만으로 20대다 할 거 같은데요.

30대 인 게 싫으니까. 조금 어려보이고 싶어서...

"아기 때는 실제로 산 개월 수를 따지다, 학교에 들어갈 때부터는 한국 나이를 세고, 환갑 잔치에는 또다시 만 나이를 계산하는 것.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복잡하고도 번거로운 계산법입니다.

그 때 그 때 필요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뀌는 나이.

불합리하다고 느껴보진 않으셨는지요."

올해 대학생이 되는 박건우씨.

친구들과 함께 술집에 갔지만 신분증 검사에서 입장이 거부됩니다.

97은 무조건 안 돼요. (대학교 들어가도 안 돼요?)

안 돼요. 97년생은 무조건 안 돼요.

소위 빠른 97년생인 박 씨는 한국 나이로는 열 아홉 살이지만 만으로는 생일이 안 지나 여전히 열일곱살.

만 18 세까지 청소년으로 보는 법 때문에 술집에 들어갈 수 없는 겁니다.

운전면허나 취업, 입대 등은 만 18세 이상, 선거권은 만 19세 이상 등 법적인 기준은 모두 만 나이입니다.

또 보험이나 연금처럼 기간에 맞춰 돈을 정확히 지급해야 하는 경우도 만 나이가 기준입니다.

◀박영자▶

정년퇴직하고 그러니까 연금 같은 거 탈 때 그럴 때 제대로 된 나이를 찾게 되는 거 같아요

이렇게 법을 적용할 때나 공식 문서에 한국식 '세는 나이'를 쓰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정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지 보름이 채 안 된 신생아들이 모여있는 산후조리원.

작년 12월 31일에 태어난 아기는 태어나면서 한 살, 하루만에 해가 바뀌면서 두 살이 됐습니다.

같이 누워 있는 올 1월 2일생 아기보다 불과 사흘 먼저 태어났을 뿐이지만 한국식 '세는 나이'로 보면 한 살 언니입니다.

작년에 태어난 아기와 올해 태어난 아기는 나이차가 한 살 밖에 안 되지만, 일 수로 따지면 최소 하루에서 최대 730일까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정선화▶

엄마들 사이에서 애기 몇 개월이에요? 이렇게 묻지 몇 살이에요 이렇게 안 묻거든요. 사실 그러니까 다들 만 나이가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행동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는 지난 1962년부터 '만 나이'를 공식 나이로 쓰고 있습니다.

70년대에는 주부들이 나서서 '만 나이쓰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는데, 실제 나이보다 한 두 살씩 더 먹고는 어려서부터 가식적이고 적당주의 습성을 보인다는 이유였습니다.

공식 나이인 '만 나이'와 함께 세는 나이가 여전히 쓰이고 있는 우리와 달리 중국과 일본은 비슷한 나이 셈법을 없앴습니다.

중국에는 '허세'라고 하는 '세는 나이'가 있었는데 1960년대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만 나이'인 '주세'로 통일됐습니다.

◀류동춘 교수/서강대 중국문화학과▶

체제의 영향, 뭐든지 국가에서 획일적으로 다 고칠 수 있는 그런 체제의 힘, 그거 때문에 우리보다 빨리 바뀐 게 아닌가...

일본도 '가조에도시'라는 세는 나이가 있었지만 2차 대전 이후 '만 나이' 사용을 의무화했습니다.

◀모세종 교수/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젊은 세대들은 가조에도시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그냥 나이 물어보면 자기가 10년 됐으면 10살이고 그 다음에 생일 되면 11살이고 그렇게 답하는 것이지.. 만이라는 단어가 이제 필요가 없죠.

북한도 '만 나이'를 쓰면서 이제 '세는 나이'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일상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세는 나이가 우리 전통 문화라며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뱃속의 열 달을 한 살로 인정하는 건 우리 선조들의 태아존중 사상이 담겨져 있다는 겁니다.

◀문정희 대표/한국전통문화원▶

부모님 뱃속에서 자라는 그 과정을 우리가 태교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그 때부터 한 살로 보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임신 기간까지 나이로 따지다가 해가 바뀌면 곧바로 한 살을 또 더하는 건 기준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해가 바뀔 때 한 살을 더하는 건 농경사회에서 계절이 바뀌는 걸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나이를 세는 단위인 '살'은 한글 창제 직후 간행된 <월인석보>에 '설'로 쓰였는데, 한 해의 시작을 뜻하는 설을 살면서 몇 번 겪었는지가 나이 세는 기준이었던 겁니다.

◀최기호/외솔회 전 회장▶

한 살 더 먹었다는 것은 한 살을 다 채우고 끝냈다 하는 의미죠. (지난 한 해를 다 마무리 지었다?) 네, 그리고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단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흔히 나이가 같다는 의미로 쓰는 '동갑'은 사주팔자의 생년이 같다는 뜻인데 역술에서는 설날이 아니라 봄이 오는 입춘이 새해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올해 입춘인 2월 4일 전에 태어난 아기들은 올해 태어났어도 을미년 양띠가 아니라 갑오년 말띠가 됩니다.

◀백운산 회장/한국역술인협회▶

양력 1월 31일이면 1월 1일부터 양띠가 돼야 하는데 이게 말띠인 이유가 입춘을 못 지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의 나이 세는 기준은 원래 입춘이라는 절기를 기준으로 했다 세월을 거치며 음력 1월 1일, 설로 옮겨졌고, 지금은 양력 1월 1일이 그 기준을 대신하고 있는 겁니다.

"법적인 효력도 없고, 계산이 공정한 것도 아닌데 '세는 나이'는 우리 일상에서 여전히 쓰이고 있습니다.

2580은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선에서 '세는 나이'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

서울의 한 게스트 하우스.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외국인 관광객들과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대부분 한국인들이 초면에 나이부터 물어보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처음 만나서 나이 물어보나요? ) 아니요. 이건 한국 전통이잖아요. 누구를 만나든 한국 친구들은 몇 살이냐고 물어봐요.

(심지어 몇 년생이냐고 물어보죠?) 누가 연장자인지 알아야 하니까요.

처음 만난 사람과는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와 같은 가벼운 얘기를 하면서 친해지지 나이부터 묻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피피/중국▶

중국 문화에서는 나이를 물어보면 예의가 없다고 생각해요. 직접적으로 나이를 묻지 않아요.

한국에서 각각 7년과 10년을 산 알베르토와 줄리앙씨는, 초면에 나이를 물어보는 건 한국의 서열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줄리안/벨기에▶

한국은 왜 있냐면 서열문화가 있기 때문에 그 기준이 바로 알잖아요 너는 나보다 위냐 밑이냐 ,(형이냐 동생이냐?) 외국에서는 알 필요가 없어요.

서열을 알아야 이름을 부를 지, 형이나 동생으로 부를지, 존댓말을 할지 반말을 할 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줄리안/벨기에▶

나이를 알아야 그 사람한테 대할 수 있는, 어떻게 대할 수 있는지 알게 되니까 그 열쇠 없이 그 사람하고 친해지지 못하는..

◀알베르토/이탈리아▶

한국에서는 호칭 필요하니까 나이부터 물어보고

◀줄리안/벨기에▶

한국은 한두살 나이 갖고 갑자기 누가 나한테 반말했으면 기분 나빠하잖아요.

실제로 나이 문제 때문에 말다툼을 벌이다 폭행이나 방화같은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는 자주 발생하는 편입니다.

이처럼 나이로 서열을 따지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가 출생연도로 구분되는 '세는 나이'를 관행으로 굳어지게 했다는 분석입니다.

상대방의 '정확한' 나이보다는 몇 년생인지를 묻는 우리만의 독특한 질문법 역시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거라는 얘깁니다.

◀김석호 교수/서울대 사회학과▶

만 나이로 해서 우리가 개월 수를 따질 만큼 굉장히 디테일하지는 않잖아요. 이게 기존에 만들어지는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던 관행과 결합이 되면서 태어난 해 중심의 어떤 나이라는 게 계속 지속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세는 나이'와 '만 나이'를 따로 따로 생각하는 것은 불편한 일인 만큼 한 가지로 통합하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최수연씨는 지난해 3월 한 포털사이트에 만 나이로 통합하자는 청원을 올렸습니다.

최 씨는 일상에서는 한국식 세는 나이를 쓰면서 법적인 부분에서는 '만 나이'를 쓰느라 '만 나이 계산기'까지 등장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최수연▶

행정은 이미 만 나이로 계산하고 있는데 생활에서는 이 나이로 계산하고 있으면 둘이 조화가 안 되기 때문에 여기서 중간에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걸 국민들을 위해서 바꿔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외국과 활발한 교류를 하는 글로벌 시대에 한국만 국제질서에 어긋나는 '나이'를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창원 교수/한성대 행정학과▶

어느 한 쪽으로 통일이 되는 것이 좋고 그렇다면 한국 나이냐 만 나이냐 그러면 외국과의 거래를 해야 하는데 이런 것을 하기 위해서 만 나이로 통일하는 것이 맞다는 얘기죠.

저마다 태어난 날에 자신만의 나이를 가지는 것.

그래서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저마다의 살아온 기록입니다.

모두가 그러려니하며 긴 세월을 지나왔지만 하나의 인생에 두 개의 나이가 존재하고, 그래서 불편과 혼선이 생긴다면, 더구나 그게 나의 선택과 필요 때문이 아니라 그저 공동체의 관습 때문이라면, 생일 때마다 초의 갯수를 놓고 헷갈려 하는 우리의 모습에 한 번쯤은 물음표를 던져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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