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책 서문만 읽어도 달랐을 것 친정에서 쫓겨나지만 기죽지 않겠다"

2015. 1. 1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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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제 출국' 앞둔 재미동포 신은미씨

[오마이뉴스 강민수,이희훈,박정호 기자]

'종북몰이' 논란에 휩싸여, 끝내 강제퇴거 처분을 받게 된 '재미동포아줌마, 북한에 가다' 저자 신은미씨.

ⓒ 이희훈

폭발물 테러, 출국정지, 네 차례 총 45시간의 검·경 소환 조사, 우수문학 도서 선정 취소 그리고 강제퇴거(출국) 조치. 지난해 11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재미동포 신은미(54)씨에게 일어난 사건들이다. 보수언론이 시작하고 박근혜 정부가 화답한 '종북몰이' 광풍이 그를 휘감았다.

신은미씨가 지난 8일 오후 검찰이 자신을 기소유예하면서 법무부에 강제퇴거요청을 했다고 밝힌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심경을 밝혔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그는 한 시간 가량 담담하게 그간의 일을 정리했다. 그는 법무부의 강제퇴거 조치로 10일 오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기죽지 않고 남북의 벽 허무는 일 계속하겠다 "

그는 출국 심경을 '친정에서 쫓겨난 딸'에 비유했다. 미국 국적인 그가 친정인 대한민국에서 남북 화합을 바라는 마음에 했던 말들로 정부에 버림받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실연을 당했다는 비유였다.

"집 떠나서 살던 딸이 신바람이 나서 친정에 왔어요. 친정을 사랑해서 친정이 잘 되면 좋겠다하고 말을 한 거죠. 그런데 부모님이 '너는 출가 외인',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해'라고 해버린 거예요. 그러고 나서 '너는 이미 내 딸이 아니야, 왜 간섭이야, 다시는 친정에 오지마'라는 거예요. 딱 그런 심정이죠."

그럼에도 신씨는 마음만은 언제나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방북 여행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던 때처럼, 평화 통일을 위해 기죽지 않고 계속해서 남북을 오가며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제2의 신은미가 나타나지 않도록 '종복몰이'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선례가 되겠어요. 종복몰이, 마녀사냥에 밀려 비록 제 껍데기는 추방되지만 제2의 신은미가 생기지 않도록 제가 (종북몰이를) 극복하면 되잖아요. 저는 남과 북, 동포 사이의 벽을 허무는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비록 쫓겨나지만 기죽지 않고, 남과 북이 함께여야 하는 당위성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이래서 분신 자살하는구나...가슴 갈라 마음 보여주고 싶었다"

'종북몰이' 논란에 휩싸여, 끝내 강제퇴거 처분을 받게 된 '재미동포아줌마, 북한에 가다' 저자 신은미씨.

ⓒ 이희훈

광풍의 시작은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전국순회 통일토크 콘서트'였다. 종편 등 보수 언론은 이 행사에서 신씨와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북한을 찬양하는 등 '종북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단체가 두 사람을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찬양·고무 혐의로 고발하면서 수사가 본격화됐다. 이후 신씨는 경찰에서만 세 차례 총 서른 시간, 검찰에서는 한 차례 열다섯 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 과정 내내 당국의 유도 질문이 이어져 답답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나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책을 쓰고 말을 했는데 검사가 '이런 식이 아니죠'라고 하니까 속이 탔어요. 순간순간 울분이 끓어올랐어요.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지요. 너무 억울하니까 이래서 사람들이 분신자살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서 설명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 결과에 순순히 따르겠습니다."

그는 조사를 받으며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식의 수사 방법 때문이었다. 머릿속에는 'So stupid(정말 어리석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부질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보법 때문에 고문 받고, 가정이 파탄 나는 그런 얘기들을 들었죠. 하지만 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당해보니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법이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래도 부질없는 시간을 그나마 의미 있게 만들려면 최선을 다해야 했어요. 오죽하면 검사님에게 어떻게 하면 제 마음을 받아들이겠느냐 하고 하소연까지 했어요. 제 가슴을 갈라서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결국 기소유예 판결이 났다. 검찰이 죄를 인정했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점, 북한 체제와 인권 상황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점 등을 이유로 재판에 넘기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또 법무부에 강제퇴거를 요청했다. '극심한 국론분열과 사회혼란이 초래돼 사회적 위험성이 적지 않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재판에 들어갔을 경우 검찰이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을까. 이번 기소유예 결정은 유죄 판결을 확신하기 어려운 검찰의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많다.

통일부와 문체부의 대응..."유치하고 우습다"

'종북몰이' 논란에 휩싸여, 끝내 강제퇴거 처분을 받게 된 '재미동포아줌마, 북한에 가다' 저자 신은미씨.

ⓒ 이희훈

종북몰이는 '폭발물 테러'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달 10일, 전북 익산의 한 성당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한 고등학생이 신씨를 향해 인화물질을 던졌다. 그 학생은 폭발물을 던지기 전 신씨에게 종편의 주장처럼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발언한 것이 사실이냐"고 질문했다.

이 일로 참석자 200여 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를 물고 늘어진 경찰마저도 수사과정에서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발언은 없었다"고 인정했다.하지도 않은 발언을 지어낸 종편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이후 신씨는 소환 조사 외에는 외출을 삼갔다. 자신을 알아보는 시선이 불편해졌다.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고 택시를 타도 기사가 알은 체를 하며 "김일성 찬양한 사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또 다른 사람은 넌지시 "우리나라 문제예요. 종북이 이 나라 뒤집어놓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비슷한 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다.

"낯선 누군가가 옆으로 오면 내게 황산이라도 뿌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는 기침이 심해져서 한의원에 갔더니 화병이라고 하더라고요. 감기가 화병하고 섞여서 고질병처럼 속에 꽉 찼대요. 고질병을 고치는 침도 맞았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폭발물 사건 있고 일주일 정도는 일어나질 못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비이성적인 마녀사냥에 정부도 적극 거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일 신씨의 방북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2013년 상반기 우수문학 도서에서 취소했다.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유였다. 출간된 지 2년이 넘었고 우수문학도서로 뽑힌 지도 1년이 훌쩍 넘은 책이다. 앞서 통일부는 신씨가 출연한 통일부 'UniTV'의 동영상을 이념적 편향성이 있다며 삭제했다. 신씨는 정부의 조치가 "유치하다"고 말했다.

"경제대국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한 게 한마디로 우스웠어요. 개개인은 선진국 시민인데, 나라를 이끌어가는 분들이 왜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는지 궁금해요. 나 같은 아줌마가 보기에도 이런 조치는 유치하고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요."

면담 요구했지만 묵묵부답..."박 대통령, 책 서문만이라도 읽어달라"

신씨는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해 12월 초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청한 바 있다. 청와대는 무응답이었지만 신씨는 박 대통령의 답을 이미 얻었다고 생각했다. 박 대통령이 신씨의 토크콘서트를 '종북콘서트'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이나 인권침해 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자신들의 편향된 경험이 북한의 실상인양 왜곡 과장했다"고 말했다. '종북몰이'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면담 요청에 답은 이미 왔다고 생각해요. 박 대통령이 '종북콘서트'를 하는 저와 면담할 수 없다고 여긴 것 같아요. 하지만 2002년 박 대통령이 방북한 뒤 하신 말씀을 보면 통일에 대한 방안이 저와 다를 게 없습니다. 제 책을 읽어보지 않은 것 같아요. 서문이라도 읽어보신다면, 제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이 박 대통령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아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당분간 대한민국을 방문하지 못하게 된 사실을 안타깝게 여겼다. 향후 최장 5년간 법무부에 의해 출입이 제한될 수 있다. 그의 변호인은 재입국 거부에 대해서 행정 소송 등의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신씨는 "해외동포는 태아가 탯줄로 엄마와 연결돼 있는 것처럼 조국과 이어져 있다"며 "이렇게 강제출국을 당하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남과 북 그리고 해외 동포들을 사랑하겠다고 밝혔다.

"몸만 출국당하지 마음은 (조국으로부터) 출국 못 시켜요.(웃음) 해외동포가 됐든, 대한민국 동포가 됐든, 북한 동포가 됐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동포들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을 더욱 사랑하고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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