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 몸통' 됐는데 '다행'이라는 청와대

입력 2015. 1. 7. 08:45 수정 2015. 1. 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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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검찰 수사가 면죄부? 도 넘은 청와대의 책임 회피

[오마이뉴스 이승훈 기자]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 유상범 검사가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청와대 보고서'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정국을 뒤흔들었던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 파문에 대한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가 나온 지 하루 만에 청와대 분위기가 달라졌다. 검찰 발표 당일만 해도 "공식 입장이나 반응을 내놓을 게 없다"라며 조심스러워하던 청와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전직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 각각 1명에게만 법적 책임을 물은 검찰 수사결과가 청와대에 내려진 '면죄부'나 되는 양 당당해졌다.

대통령은 침묵... 홍보수석은 "다행이다"

6일 오전 예고 없이 청와대 춘추관을 찾은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몇 사람이 개인적으로 사심을 갖고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이 밝혀졌다. 늦었지만 다행"이라며 "보도 전에 한 번의 사실 확인 과정이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윤회 문건' 파문의 원인을 오래된 습관처럼 권력욕에 사로잡힌 '개인의 일탈'로 규정하고 문건 내용을 최초로 보도한 <세계일보>에 책임을 돌린 것이다.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과 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벌인 문건을 둘러싼 진실공방, 이로 인한 국정혼란에 대한 사과는 물론 최소한의 유감 표명마저 없었다.

대신 채동욱 전 검찰총장 관련 개인정보 불법 유출 등 청와대 내부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김없이 등장했던 '개인적 일탈론'이 이번에도 반복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예 침묵했다. 이날 오전 새해 첫 국무회의를 주재했지만 '정윤회 문건' 파문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바로 전날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고 이날 국무회의는 박 대통령이 주재한 첫 공식회의였다. 하지만, 한 달여를 끌어온 검찰 수사가 박 대통령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부담됐는지 의도적인 외면을 택했다.

검찰 수사결과 '찌라시 몸통'이 된 청와대

'십상시 모임'이나 '정윤회-박지만 암투설'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검찰 수사 결과를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이번 사건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풍문을 토대로 '찌라시'를 만들어 외부로 유출한 중대한 공직기강 문란에 해당한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청와대는 '찌라시'의 생산 및 유통의 몸통이 되는 셈이다.

특히 이런 '찌라시'의 작성 배경은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상징되는 청와대 내부 권력 다툼이라는 점에서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청와대 비서실 전반의 구조적 문제라고 봐야 한다. 또 직접 소통보다는 '문고리 3인방'에 의존하는 박 대통령의 불통의 통치 스타일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이번 사태를 개인적 일탈 및 언론 탓으로 몰아가면서 내부 성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내부문건 유출을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했고 검찰 수사결과 사실로 드러났지만 청와대 내부에서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이번 문건 파문 과정에서 청와대 파견경찰 및 문화체육부 인사개입 의혹 등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심을 산 '문고리 3인방'은 검찰 수사 이후 오히려 더 큰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윤회 문건'을 보고받고도 방치했고 또 문건 유출의 최종 책임자인 김기춘 비서실장은 오히려 청와대 내부 기강을 다잡겠다고 엄포를 놨다. 김 실장은 지난 2일 청와대 비서실 시무식에서 "불충한 일들로 대통령과 국민에게 걱정을 끼쳤다"라며 "다른 마음을 품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세계일보>에 따르면 검찰 수사결과 박지만 EG그룹 회장에게 건너간 대통령기록물 17건 중 일부가 김 실장의 허락 또는 묵인 하에 전달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법정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의도적인 거짓 해명에 사과 없는 청와대

이번 파문 중에 여론의 시선을 돌리려고 청와대가 한 오락가락 해명과 거짓말도 문제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조응천 전 비서관을 위시한 '7인 모임'이 존재하고 이들을 정윤회 문건 작성과 유출의 배후로 지목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결과 이들에게서 별다른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정윤회 문건에 등장하는 '십상시 모임'에 '물타기용'으로 '7인 모임'을 언론에 흘린 것에 대해서 어떤 해명이나 사과도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또 정윤회 문건이 보도된 이후 처음에는 "감찰 사실 없다"라고 했다가 "보도된 문건과 청와대 문건은 다르다"고 했다. 결국 검찰에 유출자를 밝혀 달라며 수사를 의뢰하면서는 "보도 문건이 대통령기록물"이라고 말을 바꾼 오락가락 행보에 대해서도 속시원한 해명은 없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청와대에 있었던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전 행정관이 이전 정부 청와대에서 일한 사람들인 양 "다행이다"라는 안이한 인식만 내비치고 있다. 이제 집권 3년차에 들어선 청와대의 쇄신과 변화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이 기사를 응원하는 방법!☞ 자발적 유료 구독 [ 10만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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