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인 김현 “가난한 예술인 위한 경제 공동체 만들고 싶어”읽음

김여란 기자

▲ 10여년간 인권영화제 기획
지난해 마을공동체 활동하며 51편 묶은 첫 시집 펴내
“세월호 가족 위한 낭독회 참여… 올해는 소설도 써볼 계획”

‘시인의 마을’은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있었다. 정태춘의 노래도 좋지만 진짜 시인이 가꾸고 키워낸 마을 말이다. 지난해 첫 시집 <글로리홀>(문학과지성사)을 낸 시인 김현씨(35)는 지난해 서울시 마을공동체 활동가로 살았다. 마을을 기반으로 한 청년 커뮤니티가 거의 없던 이 지역에 영화 동아리·문화공간 ‘구름창작소’를 만들어 사람을 모았다. 김씨는 10년차 인권영화제 기획자이며 손수 독립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홍대 두리반, 명동 마리, 한진중공업 고공농성장,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등 연대가 필요한 현장도 찾아다녔다.

출판사를 다니다 그만두기를 몇 번 반복했던 김씨가 2013년 다시 회사를 그만두고 마을활동가로 나선 것은 ‘협동조합’에 혹해서다. 시인과 소설가처럼 가난한 예술인들을 위해 협동조합 형태의 사회적 경제조직을 만들어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올해는 시인과 소설가들이 뭉쳐서 마을을 거점으로 문학을 갖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봐야겠다 생각해요. 축제나 프로그램일 수도 있고 수입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거고요.” 기존 마을공동체가 껴안지 못하는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들의 인권과 공동체를 포개놓을 방법도 궁리 중이다. 김씨는 2006년부터 여성인권영화제 스태프와 프로그래머로 쭉 일해왔다.

김현 시인은 지난해 12월 쌍문동 일대의 버려진 시장 골목 시멘트 담벼락에 시인 40여명의 시 구절을 붙이는 ‘시 멘트’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사람들과 통하고 싶은 욕망이 크다”는 그는 지난해 첫 시집을 냈다. 올해는 소설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김현 시인은 지난해 12월 쌍문동 일대의 버려진 시장 골목 시멘트 담벼락에 시인 40여명의 시 구절을 붙이는 ‘시 멘트’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사람들과 통하고 싶은 욕망이 크다”는 그는 지난해 첫 시집을 냈다. 올해는 소설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서울시 일자리사업 계약기간이 끝난 올해부터 김씨는 백수다. 백수 시인, 언뜻 자연스럽지만 시와 문학으로만 먹고살 수 없는 이 쓸쓸한 시절에 의외로 ‘희소한’ 존재다. 김씨는 불안보다는 올해도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일자리를 말하는 건 아니다. 마을에서의 경험을 살려 올해에는 마을과 문학, 예술을 잇는 기획을 시도해볼 생각이다. 지난해 12월 그는 ‘시 멘트’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쌍문동 일대 철거 직전의 버려진 시장 골목, 청소년들이 몰래 담배를 피우고 꽁초만 버리고 가서 ‘꽁초골목’이라 불리는 곳곳 시멘트 담벼락에 시 구절을 붙이는 작업이었다. 김씨 본인의 시는 물론 강성은·진은영·심보선·박준·황인찬 등 시인 40여명에게 양해를 구해 골목 구석구석에 ‘시 멘트’ 스티커를 붙였다. 시 한 구절이 더해진 것만으로 위험해 보였던 공간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김씨가 마을과 세상 곳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건 시가 많이 읽히길 바라서라고 한다. “사람들과 통하고 싶은 욕망이 커요. 어떤 현장이건 많이 가보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연대하면, 제 시도 더 많이 읽히지 않을까요. 제 시집을 성소수자 친구들도 많이 읽는다고 들었는데 좋더라고요. 그이들과도 만나는 자리를 갖고 싶습니다.”

건전한 공동체를 원하는 활동가로서 면모와 김씨의 시는 좀 달라 보일 수도 있다. 51편을 묶은 첫 시집은 ‘비인간적인 것’으로 시작해 ‘지구’ 멸망으로 끝난다. 동성애자, 포르노그래피, SF의 문법, 팬픽, 숱한 영화와 사진 콘텍스트까지 모든 요소가 공존하는데 대체로 불길하고 괴이하다. 시는 모두 각주가 주렁주렁 달렸는데 시와 각주 사이 긴장감으로 무엇이 진실인지 불명확하다. 짧은 소설같이 길다. 그리고 정치적이다. 첫번째 시로 택한 ‘비인간적인 것’은 한진중공업 파업 현장에서 사람들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외치던 모습이 깊게 인상을 남겨 썼다. “인간의 목덜미가 납빛으로 찢어집니다. 점점 희미해지는 어린 인간이 찢어지는 인간 곁으로 와 앉습니다. 어린 인간은 자라나는 혀를 불규칙적으로 잘라내며 모처럼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발명하려고 합니다.”(‘비인간적인 것’ 중) 등단하면서 “세상에 없을 수밖에 없는 시를 쓰겠다”고 공언했던 건 크게 틀리지 않은 약속이라는 평을 받는다. 첫 시집이 5년 만에 나왔지만 두번째 시집은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만나볼 수 있다. 올해 김씨는 소설에도 도전해볼 계획이다. 대학 때는 소설도 종종 썼고 시가 산문적이라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김씨는 “올해 다이어리에 제일 먼저 적어넣은 일정은 ‘304 낭독회’였다”고 말했다. 매월 4번째 토요일에 열리는 304 낭독회는 세월호 참사에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을 위해 문인과 시민들이 각자 준비한 글을 읽는 시간으로, 김씨도 일을 거들고 있다. 작년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했지만 올해부터는 여러 지역을 돌면서 대상과 공간을 늘리려고 한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식량 부족에 항의하는 아르헨티나 시위대 일찍 벚꽃 만개한 워싱턴 DC 10주년 된 대만 해바라기 학생운동 생성형 인공지능에 관해 연설하는 젠슨 황
초록빛 글로벌 축제 성 패트릭 데이 그리스 사순절 밀가루 전쟁 축제
붉은 용암 분출하는 아이슬란드 화산 한일전에서 일본 꺾은 여자 컬링
형광 녹색으로 물드는 미국 시카고 강 아조우에 자유를 투런 홈런 친 김하성 푸틴, 5선 당선 확정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