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하지 않을 사람, 그가 누구일까"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입력 2014. 12. 25. 17:13 수정 2014. 12. 2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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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선 '정윤회 문건' 파문을 겪으면서 당·정·청 전반에 걸쳐 더욱 확고한 친정 체제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정윤회씨와 '문고리 권력' 3인방 등의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진 후 새누리당의 한 비주류 중진 의원이 기자들과 만나 한 얘기다. 그는 박 대통령이 집권 3년 차를 맞는 내년에 새누리당에 대한 장악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레임덕은 무슨…"이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게 되는 내년 후반기부터는 어떤 식으로든 레임덕 징후가 분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5년 단임제의 태생적인 한계이기도 하고, 특히 이때부터는 2016년 총선을 겨냥한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달아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11월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동료 의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박 대통령, 내년에 여당 장악력 더 키울 것"

하지만 새누리당 내부에는 이와는 다른 시각이 우세해 보인다. 박 대통령이 임기 중 국정 과제 추진은 물론 퇴임 이후까지 내다보며 새누리당에 대한 장악력을 더욱 키우려 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수직적 당·청 관계도 그만큼 더 굳어질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친박(親朴)계'와 '친이(親李)', 비주류를 가리지 않고, 이른바 소장 개혁파 내지는 쇄신파로 불리는 의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세월호 참사와 비선 실세 논란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박 대통령의 스타일로 볼 때 오히려 여권 내부를 다잡는 방식으로 위기를 추슬러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대통령이 내년에도 새누리당에 대한 장악력을 키우려 할 경우 가장 주목받는 자리가 차기 원내대표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유력 대권 주자로 부각되고 있는 김무성 대표와는 어떤 식으로든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을 테고, 실제 입법 기능을 통해 국정 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리는 원내대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정대로 새 원내대표의 임기가 내년 5월에 시작할 경우, 20대 총선 공천 때 김 대표를 비롯한 비주류를 견제하면서 친박계 몫을 챙기는 근거지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의 차기 원내대표로 누가 선출되느냐에 따라 여권의 권력지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가 적지 않게 나온다. 청와대가 원하는 '충실한 일꾼'이 선출될 경우엔 김 대표가 큰 변수가 되지 못한 채 2016년 총선 국면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지만, 경우에 따라선 당·청 관계의 긴장도가 높아질 가능성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완구 원내대표의 임기가 아직 5개월 가까이 남아 있지만, 당내에선 벌써부터 차기 원내대표를 둘러싼 하마평이 무성하다. 4선 가운데에선 정병국·원유철 의원 등 수도권 비주류 중진들이, 3선으로는 유승민·나경원 의원 등 비주류 내지는 중도파와 정우택·유기준·홍문종 의원 등 친박계 인사들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된다. 이미 장관직 사의를 표명한 4선의 이주영 해양수산부장관도 유력 후보 중 한 명이다.

현재까지는 유승민 의원이 차기 원내대표 직에 가장 적극적이다. 사실상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굳히고 동료 의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원조 친박'이었다가 지금은 '탈박(脫朴)'으로 분류되지만, 본인은 "한순간도 친박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한때 친박계 최고 브레인으로 꼽혔던 그는 박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던 몇 안 되는 측근이었는데, 결국 이 때문에 박 대통령과 소원해졌음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최근 들어 7·14 전당대회와 사무총장 인선 등을 두고 소원해졌던 김무성 대표와 화해하는 등 전 방위적으로 표밭을 일궈나가고 있다.

'범박(汎朴)'으로 분류되는 이주영 장관은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존재감이 커졌고, 그간 세 차례 원내대표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게 동료 의원들의 표심 자극에 플러스 요인일 수 있다. 올 초에도 유력한 원내대표 후보였지만 갑작스레 해수부장관으로 가는 바람에 원내대표의 꿈을 접어야 했다. 당내에선 그의 복귀 시점이 원내대표 출마 선언일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9월15일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이주영 해수부장관이 국정감사를 받기 위해 출석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유승민, 이주영, 그리고… 청와대의 선택은?

이 두 사람이 양강 구도를 형성할 것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지만, 마찬가지로 원내대표 경선을 좌우할 핵심 변수 중 하나가 청와대의 의중이라는 점 역시 분명한 현실이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청와대 입장에서야 임기 말로 가는 시점이라 당연히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 최우선 고려 사항일 수밖에 없다"며 "대다수 초선 의원이 '박근혜 키즈'라는 점을 최대한 활용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원내대표 경선이 당초 예정보다 빠른 내년 1, 2월에 치러질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연초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개각에서 이완구 원내대표가 총리를 맡게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망이다. 이 경우 당헌·당규상 이 원내대표 후임자를 일주일 안에 선출해야 한다.

물론 개각이 언제 어떤 폭으로 단행될지, 이 원내대표가 개각 대상에 포함될지 등을 단정하긴 이르다. 다만 정홍원 총리와 이주영 해수부장관 등을 포함한 개각 요인은 분명히 있는 상태이고, 이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정기국회 예산안 및 법안 처리 과정에서 '능력'을 보여준 것 또한 사실이다. 개각이 단행될 경우 '이완구 총리설'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 열려 있는 셈이다. 한 새누리당 초선 의원은 "요즘 이 원내대표가 '대통령 각하'를 연발하고 공직 기강 확립을 강조하는 건 청와대를 부쩍 의식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원내대표 경선 시기가 당겨질 경우 이주영 장관으로서는 1년여의 공백을 메울 시간이 부족한 반면, 이미 바닥 표를 훑고 있는 유승민 의원에겐 다소 유리한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주목할 대목은 청와대가 '유승민 원내대표' 카드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다. 현재로선 유 의원이 납작 엎드리는 모습을 보이는데도 청와대 주변 인사들 가운데는 고개를 갸웃하는 이가 적지 않은 상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권 내 친박 주류 입장에선 새누리당 지도부가 비주류로 채워진 만큼 '내 사람'을 차기 원내대표로 세우려는 요구가 클 수밖에 없다"며 "새누리당 의원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대해 국민들은 20대 총선에서 평가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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