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동 작가들, 이 시대의 ‘남성’을 말하다

도재기 선임기자

‘그만의 방-한국과 중동의 남성성’

내년 1월25일까지 아트선재센터

영상·사진·설치·회화 등 다양

“보기 드문 ‘남성 담론’ 전시회”

전시장 안에 세워진 굵직한 둥근 기둥을 둘러가며 가족사진 수백여장이 붙어있다. 다양한 장소에서 갖가지 표정을 짓고 자세를 취한 사진들이다. 눈 밝은 관람객이라면 사진들 속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분명 가족사진이고 작품 제목도 ‘아버지’인데 정작 사진 속에는 ‘집안의 기둥’이라는 아버지들이 없다는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사진을 아버지들이 찍었으니 없을 수밖에. 더 눈 밝은 관람객이라면 사진을 찍고 있는 그 아버지들의 눈으로 그 가족들을 관람 중이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작가 이동용의 설치작품은 ‘아버지의 부재’라는 이 시대의 모습을 은유한다.

‘아버지의 부재’ ‘남성의 위기’ ‘모계사회의 부활’ ‘기러기 아빠’ ‘남성 역차별’…. 남성, 아버지와 관련된 논의들이 꽤나 나돌고 있다. 여성 담론처럼 아직 남성 담론으로까지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이야기된다. 여성 담론이 여성 인권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면, 남성 관련 논의는 사회적·정치적 공간에서의 남성성에 초점이 맞춰지는 형국이다.

‘그만의 방-한국과 중동의 남성성’ 전시장 풍경.  아트선재센터 제공

‘그만의 방-한국과 중동의 남성성’ 전시장 풍경. 아트선재센터 제공

‘그만의 방-한국과 중동의 남성성’(아트선재센터)은 미술계에선 유례가 드물게 남성성을 주제로 한다. 이 시대 남성들이 어떻게 인식되고 표상되며 또 재현되고 있는지 다채롭게 보여주면서 남성 담론을 점검해 보자는 취지의 전시회다. 기획자인 이혜원 대진대 교수는 “여성 담론 관련 전시는 이어져 왔고 지금도 다양한 변주가 이뤄지고 있다”며 “남성 담론은 코미디프로그램 등을 통해 대중적으로는 많이 회자되지만 미술계에선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남성 담론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내, 여성 담론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면 의미있는 전시회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로미 아키튜브의 설치작품 ‘춤’

로미 아키튜브의 설치작품 ‘춤’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25명이 참여했다. 한국과 터키·이라크·레바논·이스라엘 등 중동지역 출신 남녀 작가들이다. 왜 하필 이들 지역 출신 작가일까. “남성중심적 사회로 알려진 중동지역 작가들의 남성 표상방식이 한국 사회의 남성 담론에 내재된 문화·정치·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 경제적 교류로 제한된 한국과 중동지역의 문화예술적 교류라는 의미도 있다.” 이 교수는 “유럽 작가들은 섹슈얼리티에 집중하는 반면 한국과 중동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젠더적 측면, 사회적 관계망에 초점을 맞춰 작업하는 것도 흥미로웠다”고 덧붙였다.

아트선재센터 2~3층을 채운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은 남성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들을 직설적으로 때론 지극히 은유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남성의 욕망, 생존경쟁의 치열함, 놀이문화, 폭력성과 그 폭력에 스스로 희생당하는 남성들, 성소수자, 세대에 따른 정체성의 차이, 화장하는 남성,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 해체 등이다. 중동 작가들은 자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작품에 녹여내는 경우도 많다.

시갈리트 란다우의 ‘남자의 훌라’, 싱글채널, 1분36초.

시갈리트 란다우의 ‘남자의 훌라’, 싱글채널, 1분36초.

총알과 남성 성기를 차용한 모양의 투구를 쓴 채 출구를 찾느라 헤매는 남자들(김지현의 ‘총알맨’), 반경 3m의 큰 훌라후프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애 쓰는 남자(시갈리트 란다우의 ‘남자의 훌라’)에게선 남성들의 불안과 혼돈, 생존경쟁이 읽혀진다.

윤수연의 ‘남자 세상’, 비디오, 6분57초.

윤수연의 ‘남자 세상’, 비디오, 6분57초.

윤수연의 ‘남자 세상’과 오인환의 ‘나의 아름다운 빨래방 사루비아’는 동성애 등 남성간 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한국 작가로는 박재영 백정기 송호준 이상윤 홍영인 등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내년 1월25일까지. 관람요금 2000~3000원. (02)739-8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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