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다양성의 시대…‘다름’은 어엿한 문화이자 삶이다읽음

정원식 기자

▲ 부모와 다른 아이들 1·2
앤드루 솔로몬 지음·고기탁 옮김 |열린책들 | 각권 872쪽, 760쪽 | 각권 2만2000원

“우리의 이기적인 유전자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하는 까닭에 우리들 대다수는 익숙지 않은 요구를 할 2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부모가 됨으로써 졸지에 생소한 이방인과 영속적인 관계를 맺게 되고, 그 이방인의 이질적인 부분이 크면 클수록 부정하려는 우리의 기색도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우리가 사멸하지 않을 거라는 약속을 믿는다. 그리고 그런 불사의 환상을 깨뜨리는 특별한 아이들은 우리에게 일종의 모욕감을 준다.”

아이들은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부모를 닮게 마련이지만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는 부분도 많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예외적인 특성을 지닌 아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이들은 부모에게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윤리적 딜레마를 안긴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은 결함이 아니라 차이에 불과하다. 앤드루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은 다양한 정체성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며 어떤 삶이 가치 있는지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진 왼쪽은 지난해 9월 결혼식을 올린 동성커플 김조광수·김승환씨. 오른쪽은 수화로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외국 청각 장애인 어린이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은 결함이 아니라 차이에 불과하다. 앤드루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은 다양한 정체성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며 어떤 삶이 가치 있는지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진 왼쪽은 지난해 9월 결혼식을 올린 동성커플 김조광수·김승환씨. 오른쪽은 수화로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외국 청각 장애인 어린이들

<부모와 다른 아이들>은 우울증에 관한 최고의 저술로 평가받는 <한낮의 우울>의 저자 앤드루 솔로몬이 2012년에 펴낸 책이다. 저자는 10년 동안 게이, 청각 장애, 소인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신동,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 범죄를 저지른 아이, 트랜스젠더 등 소수자 정체성을 지닌 아이들을 키우는 300여가구를 인터뷰해 책을 썼다. 각주와 참고문헌을 뺀 본문 분량만도 1200여쪽에 이른다. 책은 예외적 정체성을 지닌 아이들의 양육에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인간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비장애인들은 흔히 장애를 결핍으로 본다. 이 때문에 장애인을 기피하거나 최선의 경우에도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청각 장애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이들은 자신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저자는 “대다수 청각 장애인은 청각 장애를 청능의 부재가 아니라 청각 장애의 존재로 본다”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의 유무가 장애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저자는 청각 장애를 청능의 ‘결핍’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하나의 정체성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농문화는 하나의 어엿한 문화이자 삶이며, 언어이면서 미학적 특징이고, 신체적인 특징이자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지식이다.”

청각 장애를 지닌 한 인권 운동가는 “우리는 정상인처럼 느끼기 위해 굳이 건청인이 되길 원하거나 그럴 필요가 없다”며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와 문화, 유산을 보유한 소수집단”이라고 말한다. 자폐증 네트워크 공동설립자인 짐 싱클레어는 “자폐증은 한 개인이 가진 어떤 것이나, 사람을 그 안에 가두고 있는 껍질이 아니다. 자폐증 뒤에 숨어 있는 정상적인 아이 같은 것은 없다. 자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 방식이며 그 사람의 구석구석까지 철저하게 스며든다”고 말한다. 자폐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폐증이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 대신 ‘자폐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비장애인들은 장애가 결핍이 아니라는 인식을 쉽사리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심층 인터뷰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예외적 정체성을 지닌 이들과 그 부모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1차 세계대전 때까지 청각 장애 아동의 거의 80%는 수화 교육을 받지 못했다. 구화법(수화 대신 입술을 움직여 말하는 방법) 옹호자들은 수화 교육이 청각 장애 아동들이 영어를 익히는 데 방해가 된다고 봤다. 1990년 장애인도 일반인과 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장애인교육법(IDEA)이 시행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학교에서 수화를 사용한 학생은 체벌을 받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들은 모두 청각 장애를 ‘치료의 대상’으로, 수화를 ‘불완전한 언어’로 보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수화는 그 자체로 섬세하고 정교한 문법을 가진 언어다. 수화를 금지하면 오히려 청각 장애 아동의 언어능력이 저하된다.

[책과 삶]다양성의 시대…‘다름’은 어엿한 문화이자 삶이다

장애학 전문가 레너드 데이비스는 “수화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동작이 그들과 동떨어진 의미 없는 몸짓으로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수화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몸짓을 보고 그 안에서 아주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청각 장애인은 억지로 입을 움직여 말을 해야 했던 때의 불쾌한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 붙잡고 청각 장애인 특유의 발성으로 ‘길로틴’이라고 말해 보세요. 그 사람은 당신이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할 거예요. 심지어 맥도널드 가게에서 콜라를 주문할 때도 대체로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하려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요. 우리는 흡사 지적 장애인이 된 기분이었어요.”

저자는 예외적인 정체성을 치료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는 “치료가 가능한 상황에서도 치료가 항상 적절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한 인권운동가는 말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정규분포곡선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추세로 발전해 왔어요. 나는 정상인 상태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요? 보다 정상인 상태가 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정규분포곡선의 정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평범함이에요. 단지 차이에 불과한 어떤 것을 계속해서 질병처럼 이야기하려고 고집한다면 미국 사회는 결국 평범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거죠.” 어떤 사람이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라는 것은 그의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차이일 뿐이다. 사회의 전반적인 인권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한 이들에게는 상식이 된 이야기지만, 이 책은 그 메시지에 단단한 실체가 있다는 것을 풍부한 사례와 이야기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저자가 1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집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저자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식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부모 때문에 큰 상처를 받았다. 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은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동성결혼을 한 그는 책을 쓰는 동안 체외수정 클리닉을 통해 아버지가 되었다. 책의 마지막 장은 아이를 갖기로 결정하기까지 그가 느꼈던 불안과 아버지가 되었을 때의 희열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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