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헌장 사태를 계기로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시정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박 시장의 지지기반이던 시민사회단체가 박 시장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상봉 서울풀뿌리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풀시넷) 정책위원장은 19일 오후 열린 ‘박원순 시정,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2009년 말 오세훈 시장 때 무상급식 등 서울시 예산 감시를 위해 풀시넷을 만들었다. 당시 역량 있던 시민단체 환경운동연합이 중심에 서줘서 가능했다”며 “그런데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자 네트워크의 전열이 흐트러졌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이어 “‘마을 만들기’라는 새로운 의제가 만들어졌고 시민단체들이 너도 나도 참여하면서 단체의 주요 역량이 마을 만들기에 동원됐다”고 설명했다.

전 위원장은 “8월 1일 풀씨넷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박 시장의 경전철 공약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는데 박 시장의 참모들이 ‘왜 참여하느냐’고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박 시장과 우호적 관계가 있다거나 서울시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이라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 때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이 갈리면서 내부 네트워크가 약화됐다”고 밝혔다.

   
▲ 19일 오후 서울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녹색당 주최로 ‘박원순 시정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녹색당 제공
 

전 위원장은 “시민단체가 (박 시장의) 이중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민운동이 자기중심과 방향을 갖고 있지 않고, 어떻게 자립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과 기준이 없으니 서울시 사업에 동원되는 데 그쳤다”는 것.

전 위원장은 “시민운동의 기본방향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지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서울시 거버넌스에 연대할 때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현재와 같은 무원칙한 거버넌스의 이중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상철 노동당 사무처장도 시민사회 진영이 박원순 시장에 종속되는 현상을 우려했다. 서울시는 최근 ‘서울시 행정기구 설치조례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서울시장의 직속 보좌기관으로 서울혁신기획관과 시민소통기획관이 편재되어 있는데, 서울혁신기획관 내에 민관협력담당관이 신설된다. 민관협력담당관의 업무에는 △민간단체 시정참여사업 공모, 지원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업무 총괄 △비영리법인 관리시스템 운영에 관한 사항 △시민사회 육성 지원 업무 등이 포함된다.

김상철 사무처장은 “민간단체의 등록업무나 공모사업에 대한 사항을 시장 직속 보좌기관의 업무로 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점이 문제”라며 “야속하게 말하자면 서울시 민간협력담당관의 업무가 민간전문가의 주도성을 보충하기 위한 것인지 밖에서 싫은 소리하는 시민사회에 대한 효과적인 순치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나아가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 거버넌스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 처장은 “서울시와 시민사회, 민간전문가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박 시장이 공무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잘 설명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만남이 늘 ‘달래주는 자리’처럼 느껴졌다”며 “협의나 거버넌스는 ‘설명’을 요구하기 위해 만나는 자리가 아니다. 거버넌스를 ‘오해가 많으니 설득해주세요’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인권헌장 사태 이후 박원순 시장의 사과문에서 느낀 것은 억울함이었다. ‘나 그런 사람 아닌 거 알면서 왜 그렇게 공격해’라는 섭섭함과 억울함”이라고 설명했다.

   
▲ 성소수자 단체들이 농성 중인 서울시청사에 붙여진 포스터들. 사진=이하늬 기자
 

인권헌장 사태가 박원순 시장에게 남긴 또다른 것은 ‘대통령 후보자 박원순’이다. 박 시장의 우클릭 행보가 대선 행보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인권헌장이 무산된 후 서울시청을 점거했던 무지개농성단 소속 장서연 변호사(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는 “박원순의 시장의 사과 입장은 소통과 참여를 강조했던 박원순의 언어가 아니라 완연한 정치인의 언어, 양쪽 다 잃지 않겠다는 줄타기 과정에서 나온 언어였다”며 “점거농성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박원순이 이제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정치인의 잘못된 메시지를 잘못됐다고 말하기 위해 점거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대권후보가 되려면 먼저 ‘성공한 시장’이 되어야 한다. 시장으로서 잘 하는 것이 1차적인 과제”라고 평가했다.

하 위원장은 “그가 대권경쟁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만의 지지기반이 있어야 한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가 당내에서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기댈 곳은, 처음 시장이 될 때에도 그랬듯이 ‘변화를 바라는 시민’, 그리고 시민사회와 소수정당, 새정치민주연합내의 개혁적 세력”이라며 “이 사람들은 이해관계로 움직일 수 있는 층이 아니며 신뢰와 진정성 없이는 이들의 지지를 유지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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