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최 경위가 모두 뒤집어쓰는 이상한 결론

2014. 12. 1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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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권력 암투는 없다? 청와대는 빠지고 힘없는 경찰만 덤터기

[미디어오늘 이재진 기자]

검찰이 정윤회 국정개입의혹을 담은 문건 유출 사건을 정보 경찰관들의 소행으로 결론지은 가운데 청와대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문건을 작성한 것도 추가 유출의 빌미를 제공한 것도 청와대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 문건을 반출하고 한모 경위가 문건을 복사한 것을 최모 경위가 언론사 등에 제공한 것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검찰은 최 경위가 가상의 유출 경로를 그려 넣은 것을 박관천 경정이 믿고 문건 유출 경위서를 만들었고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유출된 문건 사본과 유출경위서를 청와대에 보고, 전달한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 수사 내용은 결국 박관천, 조응천, 청와대 모두 최모 경위에 당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청와대에서 문건을 반출했다는 박관천 경정에 대해서는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를, 문건 유출에 관여한 한모 경위에 대해서는 공무상 비밀누설혐의를 적용하기로 했다. 검찰 수사 도중 자살했던 최모 경위는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질 예정이다.

이번 사건은 정윤회 대 박지만 회장의 권력암투로까지 확산되며 문건의 실체를 파헤쳐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검찰 수사는 정보 경찰관들의 일탈 행위에 따른 헤프닝으로 결론을 지어버린 모습이다.

당장 검찰이 이번 정윤회 문건을 대통령기록물로 보고 문건 유출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문건 유출을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청와대도 직무유기로 죄를 물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지만 회장은 검찰 소환조사에서 지난 5월 세계일보 기자로부터 A4용지 100여장 분량의 청와대 문건을 받고 보안 사고를 우려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전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대규모 문건 유출 사실을 인지하고도 대통령 보고나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5월 문건 유출과 관련해 조응천 전 비서관이 문건 유출을 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자작극을 벌이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는데 전혀 엉뚱한 문건 유출 경위서가 올라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일보에서 문건 사본을 확보했던 정황(유출 경위서)까지 알고 있었던 청와대가 회수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이번 사건을 방치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그래놓고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을 공개하자 부랴부랴 특별감찰을 벌이고 실체가 없다고 검찰수사 결과 결론을 내린 7인회까지 급조한 것은 직무유기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과 연결된다.

상식적으로 보면 5월 당시 민간인 신분이었던 조응천 전 비서관이 제 발로 청와대를 직접 찾아가 문건 유출을 경고했다고 하는데 조 전 비서관을 믿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문건 사본이 유출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 '비선실세'로 거론된 정윤회씨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뒤 11일 청사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청와대에 전달된 문건 유출 경위서를 보면 최모 경위가 세계일보 기자와 만나 문건을 건넨 정황이 담겨 있다. 검찰은 최모 경위가 이명박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일했던 사람을 문건 유출 경로로 꼽았지만 연루된 단서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며 최 경위가 꾸며낸 가상의 유출경로라고 밝혔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최모 경위가 자신의 유출 행위를 감추기 위해 가상의 유출 경로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세계일보가 청와대 문건을 가지고 있고 추후 문건을 보도할 수 있다고 경고까지 했는데도 청와대가 이를 무시한 건 상식 밖이다.

경위서에는 "세계일보 측에서 2차 입수한 문건이 보도될 경우 현 정부에 대한 비난여론이 BH로 집중되어 국민신뢰도 저하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으며, 도난되어 유출된 문건의 분량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제3차, 4차 세계일보 측으로 추가적인 자료제공이 지속될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경고했다.

검찰이 청와대 문건 유출 인지 여부부터 유출 경위 감찰 과정에서 청와대의 직무유기가 없었는지 조사하지 않으면 힘없는 경찰 조직에게만 문건 유출의 책임을 덮어씌우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근거없는 찌라시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이라고 밝힌 것처럼 검찰은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전직 청와대 직원과 경찰 정보관이 유출에 관여했고 실체가 없는 문건의 내용을 세계일보가 보도한 것으로 결론을 냈다.

하지만 문건 유출 이외에도 밝혀야할 내용은 많다.

검찰은 정윤회 문건의 회동을 증명하기 위한 물증을 찾지 못했다며 회동이 실체가 없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정윤회 문건 말고도 청와대 문건의 비선실세 의혹을 담은 내용에 대해서도 검증 작업을 했는지 의문이다.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한모 경위 회유 여부는 이번 사건의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회유가 사실이라면 검찰 수사 개입을 지시한 청와대 윗선과 지시 배경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박 대통령의 표현대로 '찌라시'에 놀아날 정도로 논란이 됐고 국민이 신뢰를 보내지 못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폐쇄적인 국정운영 탓이라는 지적이 일면서 향후 인사 개편을 통한 쇄신을 단행할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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