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 사과했지만 인권헌장 선포는 무산…시청 농성도 유지

배문규 기자

서울시가 거부한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시민위원회가 제정을 확인하며 축하 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인권헌장은 계획된 선포일에 끝내 선포되지 못했다.

서울시의 헌장 폐기에 반발해온 시민위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세계인권선언일인 10일 행사를 열고 서울시가 당초 계획대로 인권헌장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시민위원회는 지난달 28일 표결을 통해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포함한 인권헌장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서울시는 표결은 합의로 볼 수 없다며 헌장을 사실상 폐기했다.

이에 대해 시민위원회는 “만장일치와 압도적 다수의 표결로 헌장을 확정했는데 서울시가 갑자기 미합의조항에 대해선 표결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며 전원합의를 요구했다”고 비판했다.

세계인권선언일 10일 서울시청 신청사 앞에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축하하는 시민모임’이 인권헌장 제정을 축하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ghyang.com

세계인권선언일 10일 서울시청 신청사 앞에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축하하는 시민모임’이 인권헌장 제정을 축하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ghyang.com

위원들은 “100여명의 위원들이 한 사람의 이견도 없이 만장일치를 하라는 것은 사실상 인권헌장을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라면서 “유엔(UN)이 제정한 세계인권선언도 당사국 모두의 만장일치로 의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한 명의 반대자라도 있으면 누군가의 인권이 침해되어도 상관없다는 반인권적인 처사”라고 덧붙였다.

또한 “총 50개 조항 중 45개 조항에 대한 만장일치, 미합의 5개 조항에 대한 압도적 다수결 통과가 어떻게 ‘합의 실패’인가”라면서 “서울시가 시민위원들의 헌신과 인권헌장 제정의 의지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고도 했다.

위원들은 “서울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할 때도, 성북구가 주민인권헌장을 만들 때도 인권은 늘 논란거리였는데 헌장을 준비해온 서울시가 이 정도 논란도 예상하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박 시장이 인권변호사 출신이 맞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이날 시민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자체적인 헌장 선포가 아닌 헌장 제정 축하 행사를 열었다. 올해 말 시민위원회 임기 완료 전까지 서울시가 시민헌장을 인정하고 선포하는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10일 인권헌장은 끝내 선포되지 못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오후 성소수자와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만나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인권헌장 선포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박 시장은 지난 6일부터 서울시청 1층 로비를 점거하고 면담을 요구한 성소수자 단체 관계자들을 이날 오후 집무실에서 만나 “인권헌장 제정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인해 서울시민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사과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또 “이 과정에서 성소수자인권, 시민사회단체 등의 농성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덧붙였다.

박원순 서울시장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과 글의 일부    |페이스북 ‘박원순과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캡쳐

박원순 서울시장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과 글의 일부 |페이스북 ‘박원순과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캡쳐

박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이번 일로 인해 제가 살아 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상황은 힘들고 모진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시민운동가, 인권변호사 경력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것과 현직 서울시장이라는 엄중한 현실 사이에서 밤잠을 설쳤고, 한 동안 말을 잃고 지냈다”고 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인권헌장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약속이기 때문에 합의 과정이 중요하다”면서 “서울시는 인권헌장을 선포하는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박 시장은 “현실의 갈등 앞에서 더 많은 시간과 더 깊은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선택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묵묵히 지고 가겠다”고 밝혔다. 면담에 배석한 서울시 관계자는 “헌장 제정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발언은 없었다”면서 “앞으로 헌법정신에 따라 차별적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소수자와 시민단체들은 박 시장의 사과 발표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표했다. 농성단은 “5일간의 농성을 통해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우리 사회의 인권을 실현하는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면담까지 이끌어냈다”면서 “그럼에도 한국장로교총연합회에서 박원순이 한 발언과 관련해 공식적인 사과가 없었으며, 인권 헌장에 대한 입장과 추후계획이 없는 등 과제가 너무 많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이에 “농성을 유지하고 추후 계획을 11일에 발표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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