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왜 담배 피우냐" 했더니 '건방지다' 체포

2014. 12. 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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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찰모욕죄 남용·편파수사 '울화통'

일부서 개인 분풀이에 제도 악용

"인권침해 당했다" 진정건수 늘어

조사 않고 140만원 벌금 부과도

조아무개(60)씨는 지난 3월 경찰관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기 안양시청 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경찰관에게 "왜 여기서 피우냐"고 따졌다는 이유였다. 조씨는 "기분 나쁘게 말한 것도 아니고, 욕설도 하지 않았다. 고압적으로 나오는 경찰과 옥신각신했을 뿐인데 갑자기 경찰관 한 명이 더 오더니 '건방지다'며 모욕죄로 나를 연행했다"고 주장했다.

근처 지구대로 끌려간 조씨는 수갑이 채워진 채 의자에 앉혀졌다고 한다. 그는 "경찰 5~6명이 '담배 피우는 게 죄냐' '거기가 금연구역이냐'며 윽박질렀다. 나 혼자서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조씨는 유치장에 들어갔다가 10시간 만에 풀려났다고 한다. 석달 뒤 검찰에서 벌금 140만원을 내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조씨는 "그 전에 경찰에서 '조사받으러 나오라'는 전화가 왔지만 '경찰에게는 감정이 있어서 조사받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조사도 하지 않고 벌금이 나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경찰의 감정적 대응?

적법한 공무집행을 방해할 정도의 행패를 부리는 악성 민원인을 상대로 경찰이 적용하고 있는 '경찰관 모욕죄'가 경찰 개인의 '분풀이' 용도로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경찰이 경찰관 모욕죄를 적용해 처리한 사건은 월평균 86건에 이른다. 올해는 월평균 110건(1~7월 769건)으로 늘었다. 경찰관 모욕죄로 처벌받는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사례도 늘어서 2011년 20건, 2012년 22건에서 지난해 30건으로 늘었다.

이는 '공권력 실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처벌 기준이 애매한 모욕죄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석한 탓이 크다. 경찰청은 지난해 8월 공권력 확립 방안의 하나로 "경찰관 대상 모욕죄 입건을 적극 이행하라"는 공문을 일선 경찰서에 내려보낸 바 있다.

모욕 여부에 대해 '피해 경찰'과 '가해 시민'의 입장이 엇갈리는 일은 많다. 경찰관을 모욕한 혐의로 약식기소돼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송아무개씨는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나에게 먼저 반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1년부터 접수한 경찰관 모욕죄 관련 진정 사건(90건)을 분석해 보니,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한 모욕죄 적용 사례가 50건으로 가장 많았다. 인권위는 "경찰의 권위적 태도, 민원 처리 결과에 대한 불만족 등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욕설 등 모욕적 언동을 하게 됐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경찰이 '원인 제공'을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 모욕 혐의를 조사하는 경찰이 '피해자'의 동료인 탓에 균형 잡힌 수사가 어렵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 "현행범 체포 지양" 권고

경찰관 개인의 인권도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경찰관들이 '신원 확인 뒤 사후 처벌'이 가능한 경우에도 법원 영장이 없어도 가능한 현행범 체포를 적극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공권력 남용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인권위원회는 9일 "경찰관 모욕죄로 현행범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적법 절차 위반이나 인권침해를 호소하는 진정이 증가하고 있다"며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 인권위는 경찰관 모욕죄 적용이 경찰관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정당한 공무수행을 위해 필요하지만 '현행범 체포' 방식으로 하면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인권위가 경찰관 모욕죄 진정 사건들을 분석한 결과, 현행범 체포 요건을 갖추지 않거나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는 등 적법 절차를 위반한 사례(53.5%)가 가장 많았다. 체포 때 수갑 등이 부당하게 사용된 사례(25.9%)도 많았다. 현행범 체포 과정에서 몸을 다쳤다는 진정(8.6%)도 있었다.

인권위는 특히 모욕을 당했다는 경찰관이 '수사보고서' '현행범 체포서' '피해자 진술서'까지 작성하는 등 조사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최은숙 인권위 조사관은 "경찰이 피해자인 경우 현행범 체포를 하는데, 이럴 경우 피해 경찰이 모욕 행위자를 직접 수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경찰관의 인격권은 보호돼야 하고 모욕죄 적용도 필요하지만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경찰청은 사실상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장에서 모욕죄 적용이 필요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인권위 진정 사례 가운데는 우리 입장에서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월까지 모욕죄가 적용된 사건 700여건에 대한 모니터링을 시작했고, 과잉 대응한 부분이 있으면 이를 유형화해 직원들 교육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형법의 모욕죄가 공권력 남용으로 이어진다며 이를 폐지하자는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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