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서울시는 시민위원회 전원 합의로 인권헌장을 내놓으려 했지만,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1장4조)을 둘러싼 이견으로 시민위가 파행하자 제정을 포기했다. 후폭풍은 예상보다 컸다.
무지개연대 등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이에 반발하며 서울시청 신청사 로비를 점거한 데 이어 반(反)동성애 기독교단체들도 성소수자 단체의 퇴거를 요구하며 로비를 점거했다.
서울시의 인권 정책이 농성 중인 두 진영의 20여 m 완충지대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갇혀버린 형국이다.
이번 사태는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 시장의 ‘과욕’이 원인이다. 올해 인권의날을 데드라인으로 정해 서두르다 갈등이 촉발됐다. 시위를 벌이는 두 진영 모두 서울시의 정책 고객들이고 해법은 박 시장의 용단에 있다. 헌장 파행은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단 1개 조항으로 갈등이 촉발됐다. 그렇다고 일과 노동, 교육, 지속 가능한 발전에 관한 권리 등을 담은 나머지 49개 조항까지 버리는 것은 하책이다. 아직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정책 여력이 비축되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의 인권 상황이 충분히 성숙될 때까지 헌장 4조를 비워두는 것도 방법이다.
섣부른 정책 판단으로 인해 불거진 인권 논란을 후세가 직시하고 고민하도록 공백으로 남겨둔다면 박 시장의 ‘멋진 실수’가 될 수도 있다. 서울인권헌장의 조상 격인 세계인권선언문도 1948년 유엔 가입국 만장일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선언문 공포로 세계 최초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법(국제인권규약)이 탄생했고, 대부분 국가 헌법에 그 내용이 반영됐다. 인권은 먼저 시작하는 용기가 중요하다. 몸을 사리며 논란이 잦아들기만 기다리는 건 비겁하다.
[사회부 = 김정환 기자 flam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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