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대통령 '각하' 발언 또 논란

주영진 기자 2014. 12. 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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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12월 7일) 점심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만났습니다. 12년 만에 새해 예산안을 법정처리시한내에 처리하는 성과를 거둔 데 대해 서로 격려하고 청와대와 여당은 한 몸이라는 걸 재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정윤회씨 문건 파문에 대해 "찌라시로 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박 대통령의 분명한 언급이 나온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당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식사를 시작하기전 서로 인삿말을 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김무성 대표에 이어 이완구 원내대표가 분위기를 띄우며 열심히 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힘들게 국정을 이끌어 오시는 대통령 각하께 의원 여러분 먼저 박수 한번 보내주시죠. (참석자들 박수, 박 대통령 묵례)…정말 꿈만 같습니다. 이런 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을 안 했는데 막상 뚫고 와보니까 보람된 일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앞으로도 해야 될 일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연금개혁 등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할 일이 많은데 함께 뜻을 같이하고 힘을 모은다면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대통령 각하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가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한다면 능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오늘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신 대통령 각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청와대와 여당이 교감을 나누는 화기애애한 자리였음을 보여주는 발언인데요, 여기서 눈에 띄는 용어가 바로 '각하'였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대통령을 호칭할 때 반드시 붙였던 '각하'라는 표현이 세 차례 등장한 거죠. 지난달 20일 있었던 청와대 회동 때는 각하라고 부르지 않았던 이완구 원내대표가 굳이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한 데 대해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완구 원내대표 보다 먼저 발언한 김무성 대표가 "당연한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저희를 격려하기 위해서 초청해 주신 대통령께 감사드립니다."면서 대통령께서 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과 비교됩니다.

각하라는 표현은 보통 사람을 자처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 취임 때부터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아, 물론 공식적으로 말이죠. 김영삼 전 대통령때까지 청와대 내부에서는 대통령을 각하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도 김 전 대통령의 측근들을 지칭하는 상도동 사람들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각하라고 부른답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는 공식, 비공식적으로 각하라는 표현 대신에 '대통령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김 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대통령님'이라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각하'라는 표현은 권부 내부에서도 희미해져 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때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님'조차도 권위적이라면서 그냥 '대통령'이라고 하자고 했답니다. 물론 대통령이니만큼 존칭 조사가 붙죠. 대통령께서는 이런 식으로 말이죠. 다만, 이런 제안이 그대로 지켜지지는 않고 청와대 사람들은 사석에서 이 전 대통령을 '각하'라고 불렀다는 뒷말이 나옵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호칭에 대해서는 별다른 원칙을 제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내정 발표가 났을 때 "대통령님의 국정철학에 부합되도록…" 이라고 했고, 정홍원 국무총리도 두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는 우여곡절 끝에 계속 총리로 일해달라는 박 대통령의 발표가 나온 뒤 "중요한 시기에 장기간의 국정 중단을 막아야 한다는 대통령님의 간곡한 당부가 계셔서…" 라고 했습니다.

규제개혁 토론회에 참석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대통령께서 규제개혁이라 쓰고 일자리 창출이라고 읽는다는 말씀에…" 라고 표현했습니다. 대통령님 혹은 그냥 대통령이라는 표현이 사용돼 왔던 거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아침마다 그 날 일정을 브리핑하면서 기자들에게 "오늘 박 대통령은…" 하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청와대의 공식 브리핑 서면자료에도 대통령이라고만 돼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 원내대표가 '각하'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이완구 원내대표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 지위가 있다. 하나는 국가원수이고 하나는 행정수반이다. 외국에서도 대통령 앞에 유어 엑설런시라며 경칭한다. 그 사람이 앞에 있을 때 그렇고 없으면 히즈 엑설런시, 마담 엑설런시라고 한다.

권위주위와 권위는 구분해야 한다. 회장님, 사장님, 대표님 등에 다 쓰이는 님 자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각하라는 말을 썼다. 국가원수에 대해서 예의를 갖춘 것 뿐이다."

이 말을 하기 전에 이완구 원내대표 나름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공식 외교자리에서는 이 원내대표 말대로 His Excellency!라는 표현이 사용됐고, 의회 연설을 위해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을 Mr. President라고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한 중 정상회담에서도 시진핑 중국 주석이 박 대통령을 각하라고 하듯이 말이죠.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각하라는 호칭 자체가 잘못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위키백과사전에는 "폐하(황제), 전하(황태자/왕/왕비/제후), 각하(고위관료), 휘하(장군), 슬하(부모), 족하(친구/손아랫사람), 귀하&좌하&안하(사무적 상대) 등등으로 달라지는데, 이는 상대의 지위를 상징하는 글자와 우러러본다는 下가 결합한 것이다."고 설명돼 있더군요.

폐하라고 할 때의 陛는 섬돌을 뜻하는데, 섬돌 밑에서나 우러러 볼 수 있는 존귀한 존재라는 거고, 각하라고 할 때의 閣은 누각을 말하는데, 예전에 정승들이 일하던 곳을 칭한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각하라는 표현은 정승같은 고위관료를 부르는 말이었다고 하니, 어쩌면 대통령 각하는 대통령을 존칭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격을 낮춰 부르는 말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랬던 각하라는 표현이 일제를 거쳐 (일본 사람들이 각하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일정 직위 이상의 문관은 물론 소장 이상의 무관에게도 각하라고 했다네요.)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나서 애용돼 왔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대통령에게만 붙는 경칭으로 사용돼 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권위주의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김대중 전 대통령때부터 사용하지 말자고 했던 것이구요. 대통령 각하라고 하지 말라는 게 법으로 돼있는 것도 아니고 사전적 의미로 봐서는 사용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 표현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말이라는 것은 소통의 수단이고 더우기 정치인의 말은 자신의 정치행위의 정당성을 유권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무기이자 신뢰의 발판이라는 점에서 아쉽다는 지적이 여당안에서도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말 한일의원연맹 총회에 참석했던 당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일본 아베 총리를 지칭하며 각하라고 불렀다가 정치권이 한바탕 시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공식적인 외교의 장에서 상대 정부의 수장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붙인 것은 당연한 외교적 관례이지만, 국내에서는 논란의 대상이 됐던 겁니다.

또 지난해 박정희 전 대통령 34주기 추도식때 새누리당 심학봉 의원이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당시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북한 부자세습 정권의 어버이 수령이라는 신격화 호칭과 닮았다."고 비판한 적도 있습니다. '각하' 호칭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현실에서 사용하게 되면 논란이 이는 이유를 정치인들은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생생영상] 이완구 대표, "대통령 각하" 언급 논란…"다른 의미" 해명 주영진 기자 bomna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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