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사진작가 민병헌의 '안개'

기자 2014. 12. 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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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 논설위원

'스토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무드를 느끼는 영화시(詩)!' 김수용 감독이 1967년 개봉한 윤정희·신성일 주연의 흑백영화 '안개'의 포스터 표현이다. 현재 8000~1만 원인 영화 관람료가 100원이던 당시, 상영 2주 만에 관객 10만 명이 몰렸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이 원작인 '안개'를 두고 영화학자 이효인은 "한국 영화 수준을 70년은 앞당겼다"고 극찬했었다. 이봉조가 작곡한 주제곡이 색소폰 연주 또는 정훈희 노래로 흐르는 가운데 안개 자욱한 영상 등이 돋보였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지금도 많다.

이처럼 안개는 현실의 존재이면서, 때로는 그 너머의 세계를 의미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리스 출신의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이 1988년 개봉한 영화로, 불후의 명작 반열에 오른 '안개 속의 풍경'도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다. 어느 소녀와 소년이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대상을 찾아가는 영화로,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이다. 세계적인 사진작가 민병헌(59)의 작품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그의 사진은 '안개 속의 풍경'처럼 현실이면서 이상(理想)을 나타내고, 아름다우면서 애잔하며, 철학적이면서 몽환적이다. 그는 대체로 안개가 자욱하거나 하늘이 흐린 날, 또는 눈·비가 내린 날에만 사진을 찍어왔다. 미술평론가 성완경은 "그의 작품에서 풍경은 광학적으로 찍혔다기보다는 부슬부슬 안개비를 맞으며 은(銀)의 공간 속으로 흘러나온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민병헌 회색'이 세계 사진예술계에서 고유명사가 되다시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흑백 필름으로만 찍는 그의 사진 속 꽃·나무·잡초·바다·폭포·돌 등은 안개에 휩싸여 환상적이면서도 더 생생하고, 그 너머의 본질 또한 생각하게 한다. 누드 사진도 마찬가지다. 남녀 간의 성교(性交) 장면을 담은 작품들도 예외가 아니다.

1984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던 그가 본격 데뷔 30주년을 맞아 경기도 파주출판도시의 미메시스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지난 9월 20일 시작해 오는 14일까지 이어간다. 사진 예술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고, 그런 작품을 추구해온 거장(巨匠)의 걸작 170여 점 앞에 서서 경험한 신비스러운 감동의 여운은 사진에 대한 깊은 이해 여부와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오래 남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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