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냉동고 살인' 엄마, 고작 '징역 5년' 선고 받은 이유는?

채희선 기자 입력 2014. 11. 29. 13:15 수정 2014. 11. 2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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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후 1개월 자식을 '냉동고'에 넣은 '엽기' 부모

박 모 양은 재작년 5월 친구 소개로 남자친구 설 모 씨를 만났습니다. 일 년 넘게 연인 관계를 유지해오던 어느 날 박 양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올 1월에는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당시 박 양의 나이는 19살이었습니다. 직업도 변변치 않았던 두 사람에게 아이는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부모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온갖 비난과 질책만 돌아왔습니다.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 때문인지 둘 사이 싸움도 잦아졌습니다. 두 사람은 "차라리 아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아이를 살해하기로 합니다.

아빠 설 씨는 울고 있던 갓난아이를 부엌에 있던 냉장고의 냉동실에 넣었습니다. 그 사이 박 양은 혹여나 들킬까 밖에서 주위를 살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집 주변에서 20분 정도 술을 마신 후 집에 돌아왔지만, 냉동고 안에서 아이는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더 기다릴 수 없었던 설 씨는 아이를 냉동고에서 꺼내 목을 졸라 살해했고, 시신을 지방의 한 배수구에 버렸습니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아이는 저체온증과 경부압박으로 숨진 채 버려졌습니다.

● 아빠는 징역 12년, 엄마는 징역 5년?

두 사람의 범행은 오래지 않아 발각됐고,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평범한 연인이 불과 3년여 만에 살인과 시신 유기 혐의로 피고인이 된 것입니다. 1심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재판부는 피고들이 어렸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자식을 아주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해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최종 결정된 두 사람의 형량은 크게 달랐습니다. 설 씨는 징역 12년(1심 15년), 박 양은 징역 5년입니다. 함께 살해를 공모한 박 양의 형량은 설 씨에 비해 지나치게 낮아 보입니다. 실제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이런 살인(2유형: 보통 동기 살인)의 경우 10년에서 16년을 선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살인에 시신 유기까지 저질렀으니(경합범 가중) 선고 가능한 형량은 최대 37년입니다.

그렇다면 왜 박 양만 징역 5년만 받았을까요? 범행 당시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법원이 봐준 것일까요? 물론 참작했겠지만 결정적인 사유는 아닙니다. 법원은 더 높은 형량을 선고하고 싶어도 징역 5년형 밖에 선고 못하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 '검찰의 항소 포기+성인이 된 박 양+불이익변경금지 원칙'

1심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심 재판부는 박 양에 대해 '징역 단기 5년, 장기 9년'을 선고 했습니다. 박 양이 교도소 생활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징역 5년에서 9년까지 유동적으로 수감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범위를 정해서 선고 하는 것을 '부정기형'이라고 합니다. 성인과 달리 미성년자(소년범)의 경우 소년법(60조)에 따라 법원은 부정기형으로 선고해야 합니다. 미성년의 경우 미성숙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고, 교정당국(법무부)이 반성 정도를 판단해 유동적으로 석방시점(선고 범위 내에서)을 정하도록 한 것입니다.

박 양은 1심 선고 후 형량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다시 재판을 받겠다며 항소했습니다. 석 달여 동안 2심 재판이 진행됐고, 2심 선고 때는 박 양은 20살 성인이 돼 있었습니다. 2심 재판부는 '부정기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성인이 된 박 양에게 '정기형'을 선고해야 했습니다.

박 씨에게 징역 몇 년을 선고해야 할까. 재판부는 다시 꼼꼼히 죄를 따져봤지만 여전히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징역 5년 이상을 선고 할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피고인인 박 양만 항소하고,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제368조)은 피고인만 항소했을 경우 상급 법원은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판결을 바꾸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불이익변경금지 원칙 또는 중형변경금지 원칙이라는 건데, 피고인이 형이 늘어날까 두려워 상소를 단념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2심 재판부는 이 원칙에 따라 1심 선고형인 징역 단기 5년, 장기 9년 범위 내에서 피고에게 가장 불리하지 않은 (또는 유리한) 징역 5년 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검찰도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우선,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얼마든지 1심보다 무거운 형량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검찰은 2심 재판 심리가 종결될 때, 박 양이 성인이 됐다는 점을 고려해 새롭게 구형했겠죠. '박 양도 성인이 됐으니 공범인 남자친구인 설 씨처럼 징역 12년을 선고주세요' 아니면 '미성년자 때 저지른 범죄니 징역 5년을 선고해주세요.' 어느 쪽일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1심 선고 형량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변수를 새롭게 고려해 선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불과 8일만 '달라진 운명'

박 양의 20살 성년 생일은 *월 18일, 2심 선고일은 *월 26일이었습니다. 불과 8일 차이입니다. 법원이 선고를 8일만 빨리 했더라면 박 양은 1심처럼 미성년자 상태로 2심 선고를 받았을 것입니다. 1심 형량 그대로 받아, 최장 9년까지 수감생활을 하게 됐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검찰의 항소 포기와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 그리고 2심 재판 선고 시점에 박 양이 성인이 된 것까지, 세 가지 조건이 공교롭게 맞아 떨어지면서 '엽기 살인'을 저지른 엄마 박 양은 징역 5년으로 확정 판결을 받게 된 겁니다.

채희선 기자 hscha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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