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조사도 안했다면서 "허위다".. 직무유기한 靑

김준모 2014. 11. 2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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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해명 납득 안되는 4대 의혹

"유사한 문건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나 내용은 허위다."

세계일보가 28일 보도한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에 대한 청와대 해명은 이렇게 요약된다. 문건의 존재는 일부 인정하지만 내용은 시중에 떠도는 풍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명은 납득하기 힘든 구석이 많다. 애초 감찰 자체를 부인한 청와대가 문건의 파장을 의식해 최소 사실 관계만 인정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청와대 해명은 민간 사찰

청와대는 '감찰보고서'가 아니라 '동향보고서'라고 한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설명대로라면 보고서는 시중에 떠도는 풍문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이런 일을 할 이유는 없다. 청와대는 지난 24일 본지가 정씨 관련 의혹을 첫 보도할 당시만 해도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공직자를 감찰하는 곳"이라고 해명했다. 본인들 스스로 공직자 감찰을 하는 부서라는 입장을 내놨으면서 불과 나흘 만에 '풍문을 모아서 보고하는' 조직으로 만들었다. 조순형 전 의원은 "공직기강비서실이 무슨 찌라시를 모아서 보고하는 곳이라는 해명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해명이 진실이라면 더 큰 문제는 정윤회(59)씨가 현재 민간인 신분이라는 데 있다. 아무런 공직이 없다. 그럼에도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정씨의 동향을 파악했다면 그건 민간인 사찰에 해당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청와대 스스로 본인들 주장을 뒤엎고 있고 논리적으로 모순된 해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풍문 진위 파악 왜 안 했나

청와대는 본지가 보도한 문건이 속칭 '찌라시'를 근거로 작성한 보고서라면서 진위 파악을 위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민 대변인은 심지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면 (회동이 이뤄졌다는) 그 장소에 가서 취재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는 한 사정당국 출신 인사는 이를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오로지 감찰 때문에 존재하는 조직이고,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가 감찰"이라며 "문서 제목이 '동향 보고'라고 적시돼 있기 때문에 감찰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더욱이 '풍설'이라고 해도 민간인인 정씨가 청와대 비서관을 '비선라인'으로 활용해 청와대 비서실장을 흔들고 국정에 개입한다는, 공조직을 무력화하는 내용임에도 진위 여부와 진원지를 조사하지 않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찌라시'라고 판단한 근거

청와대가 수집한 정보의 질이 찌라시 수준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미스터리다. 민 대변인은 "(김 실장) 본인이 (보고된 문건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이 문건 보고를 받은 뒤 사실관계를 직접 따져봤을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다. 하지만 민정수석실 근무 경력이 있는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렇게 한가하냐"며 추론을 일축했다. 현재로선 김 실장과 청와대가 공식 절차를 거쳐 보고된 문서에 적시된 각종 의혹을 확인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설명처럼 김 실장 본인이 자체적으로 정씨 관련 보고서 내용을 가짜라고 결론 냈다면 김 실장은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될 만한 또 다른 비선 정보를 갖고 있었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

◆허위 보고 문책 안 한 이유

청와대 해명대로라면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은 찌라시를 모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보고했고 결과적으로 허위보고를 했는데도 문책을 하지 않았다. 지난 24일 본지 보도에서 정씨 감찰을 했던 행정관의 좌천성 인사 조치에 대해 청와대가 "통상적인 인사"였다고 한 첫 해명이 결국 앞뒤가 안 맞는 해명을 낳은 셈이다.

이 밖에도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해당 문건을 홀로 작성했다는 청와대 설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청와대 직제상 행정관이 당시 상관의 지시 또는 상의 없이 단독으로 현 정부 실세들의 동향을 문건으로 만들어 김 실장에게 구두보고 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설명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 문건은 청와대 비선라인이 국정에 개입한 내용을 담고 있는 현정부 최대 정치 스캔들로 보인다"며 "사안의 본질은 대통령 측근의 국정 농단 행위인데, 청와대는 해당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과정만을 문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여 현실 인식이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남상훈·김준모 기자 jm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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