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봄의 얘기 들어본 적 있는가.. 그걸 담는 자가 소설가

손영옥 선임기자 입력 2014. 11. 14. 02:12 수정 2014. 11. 14.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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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김연수/문학동네

'소설가의 방'이 열렸다. 2000년대 한국문학의 이름이 된 작가 김연수(44)의 집필 공간이다. 그가 최근 펴낸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통해 소설가의 모든 것을 공개했다. 소설을 쓰게 된 동기서부터 1급 비밀인 창작론까지. 묵직한 주제인데도 시종 경쾌한 건 문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도둑맞은 자전거 '비토',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 등 소소해서 소중한 일상이 버무려져 상큼하게 다가와서 일 것이다. 책에서 고백한 작가의 세계를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했다. 답변은 그의 문장을 거의 날 것으로 살렸다.

-어떻게 소설가가 됐나

"(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1989년이 떠오른다. 영문과 신입생이었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막막한 시간들이었다. 너무나 할 일이 없어서 결국 중앙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앉아서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트에다가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소설가가 됐다."

-손톱만큼이라도 유명해진 건 모두 어머니가 만든 수만 그릇의 '단팥죽과 팥빙수' 덕분이라는 데 무슨 말인가.

"상점들이 즐비한 김천역전 제과점(뉴욕제과점) 아들로 자랐기 때문에 자영업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그들에게는 일의 반대가 휴식이 아니라 손해다. 그들은 어떤 희망이나 두려움도 없이, 마치 그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일했다. 스무 살의 그 시절 매일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어머니를 비롯해 동네 가게 주인들의 영향이 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썼다.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초고를 좀 보고 싶은데.

"내가 쓴 초고를 보면 내 머리통이 무슨 음식물 쓰레기통처럼 느껴진다. 그걸 보여 달라는 건 팬티를 내려달라는 부탁과 같다. 경험상 말하자면, 적어도 일주일은 이런 문장들을 쏟아내야만 소설의 문장을 얻을 수 있다."

-여행의 이미지는 늘 책으로 남아있다는 건 무슨 뜻인가

"예를 들어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한 달 반 정도 서귀포에서 쓴 소설인데, 참고할 책을 골라보니 팔십여 권에 달했다. 그걸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 페리를 타고 제주도에 들어갔다. 외국이라면 문제가 커진다. 중국 옌볜의 옌지에서 9개월 정도 머물면서 '밤은 노래한다'를 쓸 때의 일이다. 그 때 몇 번이나 한국을 오가면서 자료로 읽어야 하는 책들을 짊어지고 갔다."

-소설가로서 '황희 정승 스타일'이라고 했다.

"소설을 쓴다는 건 끊임없이 등장인물들에게 '그건 네 말도 맞아'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등장인물에 대한 감정이입 없이 소설가는 단 한 줄의 문장도 쓸 수 없다."

-소설을 쓰는 건 앞에 두 개의 상자가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는 '왜?'라는 의문사가 가득한 상자, 다른 하나는 '어떻게?'라는 의문사가 가득 든 상자다. 그 상자에서 번갈아 '왜?'와 '어떻게?'를 꺼내서 앞의 문장에 갖다 붙여서 질문을 만든다. 이 두 개 카드를 꺼내기만 하면 소설 창작의 절반을 한 셈이다."

-서재에 책이 참 많다.

"나만의 분류법이 있다. 읽은 소설, 읽은 비소설, 읽지 않은 책.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눈다. 제일 좋은 책이 맨 앞에 있고 뒤를 이어 그 다음 좋은 순서대로 꽂는다. 감탄한 소설도 막상 서가에 꽂으려면 앞쪽에 좋아하는 책들이 꽂혀서 결국 100위권 밖으로 밀린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살만 루시디의 '한밤의 아이들'이 앞쪽에 나란히 꽂혀 있다."

-끝으로 소설가 지망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말할까.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써라.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말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 세세하게 써라.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마음이 아니라 오로지 감각적인 것들뿐이니까."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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