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30분 수술에 800만원..미성년자에게도 '위밴드' 권하는 의사들

윤희은 2014. 11. 8.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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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 중 1명 합병증 걸리는 위밴드수술 남용 실태 세계비만외과학회 가이드라인 당뇨병 등 동반질환 있거나 BMI 35 넘을때 수술 규정 수술 간단하지만 수익은 좋아..일부 병원 BMI 상관없이 수술 30일 이후 합병증 발생률 25%..전통 비만수술법보다 높아

[ 윤희은 기자 ] 올해 초 서울의 한 병원에서 위밴드수술을 받은 직장인 A씨(30·여)는 최근 복통과 불면에 시달리고 있다. 키 170㎝, 체중 78㎏이었던 A씨는 당시 다이어트 실패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 위밴드수술을 결심했다. A씨가 처음 찾은 곳은 한 대학병원. 그러나 의사는 "BMI(체질량지수)가 30 미만이어서 수술을 못한다"며 돌려보냈다. A씨는 포기하지 않고 여러 일반 개인병원에 들렀다. 의외로 수술해 주겠다는 병원이 많았다. 위밴드수술 후 6개월간 A씨는 약 15㎏을 감량했다. 한동안 특별한 이상이 없었고, 병원 측에서도 "수술이 잘 됐다"고 해 그런 줄 알고 지냈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복통이 찾아왔다. 병원 진단 결과 시술받은 부위에서 밴드가 미끄러졌다는 게 확인됐다.

A씨는 "밴드 미끄러짐 등과 같은 부작용에 대해 수술 전에 미리 얘기는 들었지만, 의사가 '우리 병원에선 그런 부작용이 거의 없었다'고 말해 안심했다"며 "병원에서는 재수술을 권유하는데, 같은 부작용이 또 생길 수 있는 만큼 밴드를 아예 제거해 버릴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사망한 가수 신해철 씨가 5년 전 받은 위밴드수술로 후유증에 시달렸던 사실이 알려진 뒤 이 수술의 위험성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상당수 병원은 위밴드수술의 효과를 과대포장해 다이어트로도 감량할 수 있는 보통의 비만환자는 물론 미성년자에게까지 수술을 권유하는 등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의료계에선 "전문의들의 위밴드수술 남용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더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수술법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4명 중 1명꼴로 합병증

7일 서울 강남의 한 비만전문 병원에 전화를 걸어 "BMI가 27 정도인데, 위밴드수술을 받을 수 있냐"고 묻자, 상담실장은 바로 "가능하다"고 답했다. 'BMI 27'은 키 165㎝ 성인 여성 기준으로 체중이 74㎏ 정도에 해당한다. 약간 뚱뚱하다고 느끼는 수준이다. 상담실장은 "BMI가 27 이하인 환자들 중에서도 다이어트로 스트레스를 받아 종종 수술을 받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 병원 상담 게시판엔 미성년자가 올린 글도 있었다. 수술을 문의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의 글에는 "수술을 받아도 상관없다"는 의사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세계비만대사외과학회 아시아·태평양연합이 2012년 내놓은 가이드라인에는 BMI 35 이상의 초고도비만 환자와 BMI 30~35 사이의 환자 중 당뇨병·생리장애 등 비만 동반질환이 2개 이상 있는 고도비만 환자에게만 위밴드수술을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BMI 27.5~30 사이의 일반 비만인 중에선 약물이나 인슐린 등으로 당뇨 조절이 어려운 극히 일부 환자에게만 이 수술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학회가 위밴드수술 기준을 명확하게 분류한 이유는 부작용 가능성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에선 위밴드수술 이후 30일이 지난 시점의 합병증 발생률이 25%로 집계되기도 했다. 전통적인 비만 수술법인 위우회술(12.3%), 위소매절제술(6.9%)의 합병증 발생률보다 약 2~4배 높았다. 위밴드수술 권위자로 알려진 호주의 폴 오브라이언 교수 역시 2011년 논문에서 이 수술의 장기 합병증 발생률이 18.9%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병원들이 앞다퉈 이 수술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의사들의 체력 소모가 상대적으로 적어서다. 고전적인 비만수술법인 위우회술은 수술에만 3~4시간이 걸리고 수술 과정도 복잡하고 어려운 데 반해 위밴드수술은 30분~1시간만 집중하면 된다. 위우회술 등과 비교해 수술법이 간단하고 수술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이 적은 것도 위밴드수술을 선호하는 이유다.

일부 의사들은 수술 비용이 700만~800만원에 달하는 위밴드수술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BMI 30 미만의 일반 비만인이나 미성년자에게도 이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전해명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BMI 32 미만의 환자나, 위가 아직 다 크지 않은 미성년자에겐 위밴드수술을 하지 않는 게 좋다"며 "일부 개인병원 의사들의 수술 남용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고통받는 환자들…뒤늦게 후회

병원의 말만 믿고 위밴드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오랜 기간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2009년 위밴드수술을 받은 B씨(33·여)는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B씨는 키 160㎝에 체중 80㎏으로 BMI가 31 정도인 고도비만 환자였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뚱뚱한 자신의 모습이 싫어 위밴드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2년이 지났을 때 B씨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복통에 시달렸다. 대형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보니 소장이 부분적으로 막혀 음식물이 통과하지 못하는 장폐색이었다. 위밴드 부분이 손상돼 위에 작은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으로 음식물이 새어 나와 복통을 유발한 것이다.

B씨는 "지금은 밴드도 제거했고, 상태가 많이 호전됐지만 여전히 만성적인 복통으로 괴롭다"며 "한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 것 같아 후회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의사들도 위밴드수술의 부작용 가능성을 잘 알고 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해도 훗날 밴드가 미끄러지거나, 위 점막을 손상시킬 정도로 염증을 유발해 수술을 받은 사람의 상당수가 5년 내 재수술을 받거나 아예 밴드를 제거하고 있다. 한 외과 전문의는 "위밴드수술은 수술 이후의 관리가 중요하다"며 "수술 이후에도 의사와 환자가 꾸준히 관리하는 것만이 부작용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각종 부작용 때문에 미국 프랑스 호주 등 해외에선 수년 전부터 위밴드수술 건수가 줄고, 위우회술이나 위소매절제술 등과 같은 전통적인 비만 수술이 다시 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8년 전체 비만 수술의 34.5%를 차지했던 위밴드수술이 2013년 4.6%까지 떨어졌다. 대신 위소매절제술 비중은 6%에서 67.3%로 크게 증가했다.

수술 남용이 보험 적용에 걸림돌

고도비만 수술(위밴드·위우회·위소매절제술을 통칭)의 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은 위밴드수술의 무분별한 남용이 오히려 보험 적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고도비만 환자들의 생존을 위한 고도비만 수술에 보험이 적용되도록 하려면 더 철저하게 위밴드수술 가이드라인이 지켜져야 한다는 얘기다.

김용진 순천향대 서울병원 외과교수는 "불가피하게 고도비만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들이 있는데,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와 수술에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고도비만 수술 대상을 정한 가이드라인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이 수술에 대한 세간의 오해가 풀려야 보험 적용 추진이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병원장 역시 "일부 개업 병원에서 의사 개인의 욕심에 따라 학회 권고를 무시하고 무분별하게 위밴드수술을 하는 곳이 적지 않다"며 "BMI 32 미만 환자는 가능하면 다이어트와 치료를 통해 체중을 줄이도록 유도하고, 위밴드수술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수술하는 의사의 양심과 책임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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