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가 보여준 힙합 대세
마니아 장르로 여겨졌던 힙합이 가요계를 점령했다. 음원 차트와 방송은 래퍼들의 무대가 됐다. 래퍼와 보컬이 짝을 이룬 노래 아니고선 웬만하면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바야흐로 힙합의 시대다.
3인조 힙합팀 에픽하이(타블로, 투컷, 미쓰라)는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지난달 이들이 내놓은 8집 앨범 <신발장>에 수록된 12곡은 주요 차트에서 고루 사랑을 받고 있다.
타이틀곡 '헤픈 엔딩'은 2주째 주간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본헤이터'는 19금 곡임에도 정상권을 달린다. 심지어 이 중 6곡은 방송 불가 판정까지 받았다. 최근 서울 합정동 YG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이들은 "이 상황이 말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어리둥절해 했다. 투컷은 "마니아층에만 어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나 싶더라"고 말했다.
▲ 타블로 - '타진요' 사건으로 한때 힘들었는데 이리 다 웃으니 다행▲ 미쓰라 - 인터뷰 내내 그는 한마디도 안 해▲ 투컷 - 마니아층에만 어필할 줄 알았는데 세상이 이렇게도 변해
'타진요 사건'으로 뒤척였던 시간과 이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그린 것이 2년 전 발표한 7집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이들이 예전의 유쾌함과 재기발랄함을 되찾고 제자리에 섰음을 알린다. 에픽하이의 오랜 팬들이 '귀환'이라고 반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랩의 가사는 뾰족뾰족하고 직설적이다. 특유의 빈정거림과 자의식이 넘치고 예술적인 경지의 '펀치라인'(일종의 언어유희로 동음이의어를 사용해 중의적으로 표현하는 가사)도 살아있다. 버벌진트, 빈지노, B.I, 바비 등 강한 캐릭터를 가진 래퍼들을 모아 함께 만든 '본헤이터'에서 타블로는 타진요를 향해 "귀엽고 딱하다"고 할 만큼 여유도 되찾았다.
타이틀곡 '롤러코스터'는 강한 '팬심' 덕에 나왔다. "저희 모두 롤러코스터 광팬이에요. 조원선씨 목소리를 무척 좋아하는데 롤러코스터 새 앨범이 오랫동안 안 나오다 보니 이참에 우리가 앨범을 만들겠다고 한 거죠. 원선 누나가 '노' 했으면 아마 못 실렸을 곡이에요."(타블로)
강한 비트와 격렬한 랩이 인상적인 '부르즈할리파'도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다. "곡 제목이 왜 '부르즈할리파'인가"라는 질문에 투컷은 "내가 지금까지 타블로와 나눈 이야기 중 가장 어이없는 상황이었다"고 대답했다. "타블로가 갑자기 부르즈할리파 어떠냐고 물어봐요. 그래서 이 노래랑 뭔 상관이냐고 했더니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잖아' 이래요. 이게 다였어요."
앨범 제목 '신발장'에 대해 작은 이별과 만남이 반복되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붙였다는 것이 투컷의 설명이다. 앨범 전체 분위기와는 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하자 타블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렇죠? 원래는 '문제작'으로 붙이려 했는데 투컷이 절대 안된대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타진요 사건'이 종결된 지는 이제 2년이 다 돼간다. 타블로는 당시 소속사였던 울림엔터테인먼트에서 나왔고 이렇다 할 보호막도 없이 혼자서 모진 싸움을 버텨내야 했다. "인피니트가 그때 막 데뷔하려던 참이었어요. 제가 인피니트 프로듀서를 맡고 있었는데 그대로 있다간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후배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 떠날 수밖에 없었죠. 당시엔 어느 누구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이렇게 다 웃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올해로 데뷔 11년째를 맞는 이들은 오는 14일부터 16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5년 만에 단독콘서트를 연다.
"11년 동안 함께하면서 징글징글한 적도, 끝장내고 싶던 적도 많았죠. 그런데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우리 중 누군가는 반드시 서로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에요. 두 명이 지쳐 있으면 한 명이 업고 뛰었고, 한 명이 나가떨어져 있으면 두 명이 다독였고. 우리가 세 명인 게 그래서 감사하고 행복해요."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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