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쿠르드족 여전사"..'여성 수비대' 그들은 왜 총을 들었나

2014. 11. 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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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리아의 쿠르드족 여성 시린(21)은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어느 날 그는 '여성수비대'(YPJ)에 가담한 친구를 찾아갔다. 터키와 접경지역인 하사카주의 라스알아인에서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현 이슬람국가)와 쿠르드족의 전투가 최고조에 이르던 때였다. 친구는 시린을 만나서 "대학에 가다니, 정말 축하해!"라고 말했다. 시린은 친구한테 '전선을 떠나 대학에 진학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꺼냈다. 친구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라스알아인을 떠나지 않을 거야. 우리는 맞서 싸워야 해!" 시린은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순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린은 바로 대학을 그만뒀다. 그리고 친구의 뒤를 이어 '여성수비대'에 들어가 총을 들었다. 여성수비대는 시리아의 쿠르드족 여성 전사들로 구성된 부대다. 그는 칼라슈니코프 소총과 기관총, 수류탄 사용법 등을 배우고 전선에 섰다. 시린의 남자 형제 2명도 '인민수비대'(YPG)에 들어가 이슬람국가와 전투를 치르고 있다. "내 형제 가운데 누군가, 아니면 내가 순교하더라도, 어머니, 울지 마세요. 당당하게 사람들 사이로 걸어나가 환호하세요." 시린은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내가 사용했던 무기는 나처럼 전투에 나서고자 하는 사람에게 건네주세요"라고도 했다.

■ 이슬람국가에 맞서 싸운다'쿠르디스탄' 독립국 깃발 걸고18~40살 여성 1만여명 전선으로"내가 순교하더라도어머니, 울지 마세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진격에 도망치기 바빴던 이라크 군경과 달리 쿠르드족은 시리아 북부 코바니에서 중무장한 이슬람국가에 맞서 두달 가까이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는 탱크와 포 등 중화기로 무장한 이슬람국가 대원 9000여명이 코바니를 포위공격했고, 여기에 쿠르드족 민병대 2000여명이 맞섰다고 전했다. 코바니의 쿠르드족 전사의 3분의 1은 여성으로 추정된다. 코바니 방어 전투에서 이들은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터키-시리아 접경지역에서 구호활동을 하는 오칼란 셰이히는 "내 친척들 가운데 대부분의 여성들이 코바니에 남아 여성수비대에 가담해 이슬람국가와 싸우고 있다. 코바니에서 이미 수십명의 여성 대원들이 숨졌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두 아이의 엄마로 '아린 미르칸'이라는 전투명을 사용하는 쿠르드족 여성 전사가 몰려오는 이슬람국가 대원들 사이로 뛰어들며 몸에 두른 수류탄들을 터뜨리는 자살 폭탄공격을 하기도 했다. 탄약이 다 떨어지고 동료들이 후퇴한 뒤 혼자 남아서 감행한 것이다. <알 모니터>는 "아린 미르칸은 동료들한테 신성함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롤모델이 됐다"고 전했다. 코바니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전사는 마이사 아브도(40)로 '나린 아프린'이라는 전투명을 사용한다. 여성 전투부대를 이끌면서 코바니 인민수비대의 부사령관도 맡고 있다. 지난달 28일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코바니에서 우리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맞서고 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지휘부는 여성이다. 전선에 선 우리는 이슬람국가가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알고 있다. 전세계 여성들이 도와주기 바란다. 우리는 여성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총과 수류탄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며 병력과 무기 지원 등을 호소했다.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에 맞서 싸우는 쿠르드족 여성 전사는 7000~1만명에 이르고, 이는 쿠르드족 전사의 30%를 차지한다. 여성 전사들의 나이는 18~40살 사이다. 이들은 5주 동안 기본훈련을 받고 전투에 나서는데, 군사훈련은 물론 정치와 역사 수업도 포함돼 있다. 여성수비대의 구호는 '하발'(쿠르드어로 우정·우애라는 뜻)이다. 서로의 이름 앞에 '하발'을 붙여 부르며, 자매처럼 대한다. 쿠르드족 여성수비대는 지난 8월 이슬람국가에 쫓겨 이라크 북부의 신자르산에 갇혀 대량학살의 위험에 처했던 수천명의 야지디족을 구출하는 데서도 큰 구실을 했다.

2012년 여름 시리아 정부군이 북부의 쿠르드족 마을들에서 철수한 뒤 쿠르드족은 자체 방어를 위해 인민수비대를 조직했다. 여성 자원병이 늘어나면서 몇달 뒤 여성수비대도 만들어졌다. 인민수비대와 여성수비대는 시리아 쿠르드민주동맹당(PYD)의 무장조직이다. 터키는 쿠르드민주동맹당이 미국 등이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연계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쿠르드노동자당은 터키에서 1980년대 초반부터 30년 동안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무장투쟁을 벌였다. 반면, 미국은 쿠르드민주동맹당은 테러조직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며 최근 코바니에서 전투 중인 이들에게 무기와 탄약을 공급했다. 터키는 이들에게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는 데 반대했다.

2013년 중반부터 이슬람국가는 쿠르드족 지역으로 눈을 돌려 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쿠르드족은 이들을 격퇴했다. 하지만 지난 6월 이슬람국가가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점령한 뒤 상황이 바뀌었다. 이슬람국가는 이라크에서 확보한 탱크 등을 시리아로 들여왔고, 화력에서 큰 차이가 나는 쿠르드족은 수세에 몰렸다.

쿠르드족 여성들은 고향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여성수비대에 가담한 로사린(19)은 "맨 처음 총을 쏠 때는 겁이 났다. 그러나 조국에 대한 사랑이 나의 두려움을 잠재웠다. 나는 두렵지 않다.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무너진 뒤 1920년 영국·프랑스 등은 '세브르 조약'에서 쿠르드족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하지만 1923년 현재의 터키 국경선이 정해지는 '로잔 조약'으로 물거품이 됐다. 서구의 배반으로 독립국가 건설이 좌절돼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 이란, 아르메니아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은 3000만명에 이른다. 이들의 가슴속엔 독립국가 '쿠르디스탄' 건설이라는 내릴 수 없는 깃발이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선에서 싸우는 여성의 모습이 중동의 많은 지역에서는 충격이겠지만, 쿠르드족 사이에서 여성 전사는 칭송을 받아왔다"고 전했다. 이라크에서는 화학무기를 사용해 쿠르드족을 학살했던 사담 후세인 정권과 싸우면서 1996년 여성만으로 이뤄진 '페슈메르가' 부대가 창설되기도 했다. 쿠르드족은 독립투쟁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 아랍 국가나 터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다. 쿠르드족 여성도 마찬가지다.

■ 가부장적 사회 향해 총구봉건적 체제 '명예살인' 여전1991~2007년 1만2000여명 희생"여성의 권리 지키기 위해오늘도 '전선'으로 향한다"

그렇지만 이슬람 수니파가 다수인 쿠르드족의 여성은 여전히 봉건적이며 가부장적인 체제에 속박돼 있다.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구실로 남성 친족이 여성을 살해하는 이른바 '명예살인'도 계속되고 있다. 1991~2007년 사이에 1만2000여명의 여성이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구실로 살해당했다. 2008년에는 명예살인도 다른 살인처럼 처벌한다는 법이 제정됐지만, 명예살인 관행은 여전하고, 은폐되거나 자살로 꾸며진다. 쿠르드족 여성 활동가들은 지도자들이 말로만 여권 향상을 얘기할 뿐 실제로 남성 지배적인 군사·정치 구조에서 여성이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쿠르드족 여성 전사들이 들고 일어선 총은 바로 이런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를 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쿠르드족 매체인 <쿠르디시 퀘스천>은 "여성수비대는 코바니를 방어하는 최전선에서 싸우면서 남성 지배 사회의 터부도 깨뜨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성수비대 전사인 데스탄은 "2년 전 여성수비대에 가담하기 전까지 내 삶은 사방이 꽉 막혀 있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도 남자들은 항상 우월적인 존재였고 나는 그것이 정상적인 것이라고 여겼다"고 회상한다. 그는 이어 "이제 이곳에서 나는 진정한 평등과 자유를 이해하게 됐다. 남성의 지배는 정상적인 삶의 일부가 아니다. 이런 인식은 나에게 커다란 해방감을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여성수비대에 가담한 사촌 형제 3명은 올해 이슬람국가와 전투를 벌이다 숨졌다. 최근에 여성수비대에 가담해 코바니에서 이슬람국가와 싸우고 있는 베르핀은 "여성수비대는 '여성은 약하고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인식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쿠르드족 여성 전사들은 이제 남성 지배 사회가 심어놓은 패배주의적인 관념도 벗어던지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쿠르드족 여성 전사들의 활약은 '유리천장'을 깨뜨릴 정도는 아닐지라도 유리천장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리아 북동부에서 여성수비대 전사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은 미국 사진작가 에린 트리브는 <마리 클레르>에 "여성들 사이에선 여성수비대 자체가 여성주의 운동이라는 공감대도 있다. 그들은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원한다. 그들이 여성수비대에 가담한 이유 중 하나가 쿠르드족 문화 풍토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슬람국가와의 전투 자체가 여성의 권리를 지키려는 전쟁이기도 하다. 한 쿠르드족 여성 전사는 "그들은 여성이 지도적 지위에 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온몸을 감싸고 그들의 요구만 충족시켜줄 가정주부들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한테는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그들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슬람국가가 장악한 지역에서 여성들한테 자행되는 가혹행위가 쿠르드족 여성 전사들로 하여금 이슬람국가에 맞서 싸울 결의를 더 다지게 한다.

코바니에서 전투 중인 유치원 교사 출신의 아프신 코바니(28)는 "이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나도 집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전통적인 쿠르드족 여성으로 살기를 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전투가 끝난 뒤 내가 그런 삶을 살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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