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있는가

2014. 11. 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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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일 일요일 흐림.
천국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 #130 Led Zeppelin 'Stairway to Heaven(Sunset Sound Mix)'(2014년)

[동아일보]

영국 록 밴드 레드 제플린과 새로 출시된 앨범 표지(아래 사진).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천국으로 가는 계단 없음(No Stairway to Heaven).'

철학 서적이나 종교 의식에 쓰는 구절이 아니다. 미국의 여러 기타 가게 벽에 걸려 있는 문구다. 기타를 사러 온 손님마다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을 시험용으로 쳐대니 신물이 난 사장이 '이 곡만은 제발 치지 말아 달라'며 붙여둔 거다. 이 노랜 길이도 8분 2초나 된다.

'라도미라 시미도시 도미도도 파#레라파#….' 기타 줄 사이를 계단처럼 오르내리는 이 슬픈 도입부 분산화음을 나도 스무 살 때부터 600번은 연주해 본 것 같다. '반짝이는 건 다 금이라고 믿은 여인이 있었지. 그녀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사려 했어'라고 읊조리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이 곡은 록 음악사의 금자탑이다. 이게 담긴 레드 제플린 4집(1971년)이 5집(1973년)과 함께 밴드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직접 음질을 보정한 새 버전으로 지난달 28일 세계에 동시 발매됐다. 가수 신해철이 작고한 다음 날이다.

이 음반이 배달될 때 난 서울아산병원에 있었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목적지를 헤매다 퀵 서비스로 고인의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앨범엔 '블랙 독' '록 앤드 롤'을 비롯해 몽환적이고 강렬한 명곡이 다수 수록됐는데 그 백미는 역시 '스테어웨이…'이다.

고인의 시신이 막다른 길에서 부검을 위해 '유턴'해 돌아온 지금, 이 노랜 예전과 달리 들린다. 대학 시절,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긴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조용한 도입부로 시작해 천둥처럼 몰아치는 후반부에 이르는 8분 2초는 가끔 1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굽이진 머나먼 길처럼.

새로 나온 제플린 4집엔 '스테어웨이…'의 다른 버전도 들어 있다. 연주는 같은데 악기 소리를 다른 방식으로 섞어 원곡과 미세한 차이가 있다. 원곡 도입부는 기타가 왼쪽, 리코더가 오른쪽에서 들리는데, 이 버전에선 기타가 오른쪽, 리코더가 왼쪽에서 들린다. 진혼곡처럼 흐르는 리코더 소리가 상대적으로 작고 기타가 왼쪽으로 메아리치듯 울리는 것도 다르다. 원곡이 훨씬 안정적이며 단단하지만,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낯선 울림이 이 버전을 반복해 듣게 만든다.

가끔 낯선 길에서 계단을 만난다. 그 모퉁이를 돌기 전까지 그저 겁 없이 걷고 또 걸어야만 한다. 바탕화면에 '천국으로 가는 계단 없음'이라 적어 놓고.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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