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캠'찍는 초등학생 "야동 안 보면 잠이 안와요"

이원광 기자 2014. 11. 2.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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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여담]

[머니투데이 이원광기자][[취재여담]]

"안 보면 잠이 안와요.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아요."

새삼 책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일명 '야동'을 하루라도 안 보면 잠이 안 온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초등학생입니다.

지난달 30일 자신의 얼굴과 신체를 노출한 채 음란행위 장면을 직접촬영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게시한 미성년자 43명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습니다. 이 중 33명이 초등학생이었으며, 심지어 2006년에 태어난 초등학교 2년생도 2명이나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특별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 것을 보여주면 네 것을 보는' 식으로 노출사진을 교환했습니다. 대부분 일명 '왕따' 당하는 등 소외받은 아이들이었습니다.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하자 사이버 세계에서 주목 받고 싶은 심리가 있었던 것이죠. 성에 관심 많을 또래 아이들에게 자기과시 목적으로 음란한 대화와 음란물을 SNS에 게시하는 일명 '섹드립'을 펼친 것입니다.

이에 온라인상에는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어른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아이디 l1******는 "밥 더 먹고 좀 더 기다려라. 애인한테 해도 늦지 않는다"며 아이들의 철없음을 꼬집었습니다. 아이디 소****와 Ir***는 각각 "초등학생이라고 봐주지마라", "저런 놈들은 한겨울에 옷 벗고 다니게 만들어야 한다"며 따끔한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 불현듯 떠오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지난 2월 한 남성이 나체 사진을 보여주는 '몸캠'에 응했다 해당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에 현금 300만원을 뺏긴 일이었습니다. 그는 평소 SNS '세컨 계정'(성적인 농담과 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익명으로 만든 계정)을 통해 다른 여성과 신체 사진을 공유한 경험이 있던 터라 거부감 없이 몸캠에 응했다고 진술했고 당시 무분별한 '사이버러브'에 대한 우려섞인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아이 앞에선 찬물도 못 마신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성인들의 이같은 '섹드립'은 온라인상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색기'(성적인 매력을 뜻하는 은어) 등의 유행어가 되고,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농담이나 몸짓이 경쟁적으로 벌어지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물론 19금 방송이지만 스마트 기기로 무장한 아이들의 접근을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실제로 아이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서 접한 음란물을 모방해 유튜브 등에 게시했다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어른들은 '섹드립' 분위기를 전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동 음란물을 적극 퍼트리는 데 이르렀습니다. 손모씨(46) 등 74명이 약 10만건의 아동 음란물을 유포·소지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74명 중에 중고등학생 17명을 제외한 57명은 학생, 외국인, 대학생, 무직 등의 우리 '어른들'이었습니다. 지난 3월쯤 한 남성이 초등학생을 상대로 또래라고 속이고 은밀한 부위를 찍어 보내라고 한 뒤 부모와 친구들에 알린다고 협박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06학번'도 아닌, '06년생'의 철없음만 탓하기엔 뭔가 구차해집니다. 해외에선 이같은 행위를 '섹스팅'이라 부르며 특히 아동 음란물 소유 유포에 대해선 엄벌한다고 경찰은 전합니다. 이는 자칫 성인들의 성문화가 아이들에게 전파되고 아동들이 음란물에 노출돼 성착취, 성학대 당할 우려가 있다는 인식입니다. 어른들이 같은 행위를 '섹드립'이 아닌 '섹스팅'이라 했다면, 아이들이 이에 선뜻 나섰을지 궁금한 일입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번 정보의 바다에 휩쓸려간 노출 사진을 회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연인과 진실한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어릴 적 모습을 빼닮은 아이를 낳아도, 노출 사진은 사이버 공간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이 친구들이 실수로 올렸다고 진술했다는 점은 주목할만 합니다. 만 8세에 불과한 어린 친구가 호기심에 찍은 뒤 삭제 버튼을 눌렀는데, 스마트폰에 연결돼 동기화됐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도 아이들의 성문화에 관심 갖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달 31일 미국 국토안보부 국토안보수사국(HSI) 한국지부와 국제공조협약서를 체결해 아동음란물 유포 등 사이버 범죄와 관련한 수사정보를 수시로 제공 받기로 한 점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범죄가 그렇듯, 처벌 강화만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기사를 쓰는 지금도, 남성의 성기를 자동차 기어에 빗댄 내용을 담은 인기 예능프로그램이 온라인상에서 공유되고 있습니다. 성인 문화를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무분별한 성적 농담 '섹드립'이 자칫 사회 주류문화가 될까 우려하는 이유입니다.

머니투데이 이원광기자 demi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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